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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역행 약과(藥果) 대란, 그 저력은 어디서 오는가

입력
2023.03.28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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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이주현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것도 사람, 먹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우리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음식과 음식 이야기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그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약과 디저트. 약과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얹고 다시 견과류, 초콜릿, 건과일 등을 토핑했다. ⓒ이주현

약과 디저트. 약과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얹고 다시 견과류, 초콜릿, 건과일 등을 토핑했다. ⓒ이주현

약과가 재전성기를 맞고 있다. 소문난 맛집의 약과를 구하려면 아이돌 콘서트 티켓보다 구하기 어려운 '약게팅(약과 티케팅)'을 거쳐야 한다. 과거 전통시장이나 떡집에서나 볼 수 있던 약과의 고루한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식품업계는 약과를 이용한 디저트 개발에 한창이다. 과거에 약(藥)처럼 귀하게 여기던 이 전통음식에 초콜릿이며 쿠키며 생각지도 못한 재료들이 파격적으로 더해질수록 소비자들은 열광한다. 그야말로 약과 대란이다. 도대체 약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미처 적응할 새도 없이 새로운 트렌드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런 트렌드 홍수 속에서 지친 이들이 찾은 대피처가 바로 '옛날 감성'이다. 최신 트렌드에 역행하는 옛날 감성은 '레트로(복고) 열풍'을 이끌었다. 부모님 세대를 훌쩍 넘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즐기던 문화와 음식을 현대식으로 즐기는 현상이다.

식품업계 역시 약과를 포함하여 쑥, 흑임자, 인절미 등 다양한 전통음식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할머니 댁에서 자주 보던 음식들이 신선하고 재미있는 문화 요소로 인식된 것이다. 약과의 경우 기존의 형태를 지키면서도 다양한 식감과 촉감의 수제 약과들이 각자 개성을 뽐내며 탄생하고 있다. 약과에 쿠키, 푸딩, 머핀 등을 접목시킨 퓨전 디저트도 창의적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먹을 때마다 동양과 서양의 식재료가 이렇게 사이좋게 화합이 가능한가 싶어서 매번 놀라게 된다.

약과의 주재료는 밀가루, 꿀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두 재료는 서양에서도 흔히 쓰이는 식재료이다. 약과 안에는 이미 지구 반대편의 맛이 담겨 있기에 서양식 디저트와도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전통음식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새로운 결과물에 젊은층은 물론 추억과 향수를 느끼는 기성세대까지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즐거운 문화 현상을 이끄는 주역은 단연코 mz세대이다. 이들은 먹는 것도 하나의 놀이문화로 여긴다. sns에서 '약과 맛있게 먹는 방법'이란 게시물이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다. 약과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더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메뉴를 개발하며 공유한다. 그중 하나로 맥도날드의 소프트 아이스크림 콘과 전통음식 약과를 부셔서 함께 섞어 먹는 레시피가 있다. 전혀 결이 다른 두 음식의 조합은 기발하다 못해 낯설어 보이는데, 이 요리에 공감을 보내는 하트 개수는 급속도로 올라간다. 이를 보면 결국 mz세대가 만들어낸 레트로 열풍의 핵심은 '재해석'에 있지 않을까. 복고 느낌은 살리면서도 맛, 플레이팅, 포장지 등에 현대적 요소를 한 방울 섞어 트렌디한 느낌으로 다시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알리는 mz세대에는 얼마큼 감각적으로 재해석하여 차별성을 드러내는지가 대란의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집에서 도전해볼 만한 간단한 퓨전 디저트가 있다. '아이스크림 약과'다. 약과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얹어 견과류, 초콜릿, 건과일 등 취향껏 토핑을 뿌리면 완성이다. 단단한 약과 위에 마치 봄을 담은 화사한 성을 쌓아올리는 것 같아 만드는 재미가 있다. 꾸덕꾸덕한 약과를 쪼개서 아이스크림과 함께 입 안에 쏙 넣어본다. 약과의 무게감 있는 달콤한 맛 사이로 순식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그 작은 틈 사이를 놓치지 않고 견과류와 토핑들이 폭죽처럼 팡팡 터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간차를 두고 넘어가는 이 달콤한 맛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절로 웃음이 난다.

지금 우리가 최신 트렌드라고 여기는 새로운 것들이 또 다음 세대에는 옛것이 되어 '제2의 약과'가 될지 모를 일이다. 시간이 겹겹이 쌓인 그 음식은 또 어떤 기발한 맛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지, 잠시 시간을 앞서 나가 살짝 훔쳐보고 싶다.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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