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레시피’ 출간 간담회, 정부 정책 신랄 비판
“일할 자유 보장? 18세기적 사고방식”
“일본에 말리면 안 돼, 미중 사이 줄타기해야”
“노동 시간을 주 최대 69시간으로 늘리자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죠. 1970, 1980년대에나 나올 얘기입니다. 국민소득이 3만5,000달러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다니요.”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싶다. 신랄하고 명쾌한 화법은 여전했다. 10년 만에 새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들고 돌아온 경제학자 장하준(60) 런던대 교수 얘기다. 그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간담회에서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을 거침없이 헤집었다. “지금 정부가 펴는 정책을 보면 ‘어떻게 하면 1970년대로 되돌려볼까’ 고민하는 듯하다. 그런 사회는 오지도 않고 와서도 안 된다.”
우선 ‘주 69시간 노동제’ 얘기부터. 그는 “가난한 나라 국민이 일을 훨씬 많이 하는데 가난한 이유는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며 “결국 생산성이 문제인데,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임금을 낮춰 경쟁하려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 시간 늘리고, 싼 임금 주고, 그런 생각 말고 정공법으로 생산성 향상, 기술 개발, 창의적 사회 만들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뭐가 나쁘다는 걸까. 그는 “마치 ‘일할 자유를 주겠다’고 말하는데 그건 18세기적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노동자에게 선택권을 준 듯하지만, 사실상 자본이 착취할 권리만 강화하기 때문이다.
“왜 어떤 노동자는 일하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독극물 공장에서 일해야 할까.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정부가 독극물 사용이나 노동 시간을 규제한다. 그걸 자유라고 하는 건 경제학 개론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다.”
외교정책은 어떨까. 장 교수는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한ㆍ미ㆍ일 공조를 하자고 하는데, 절대로 말려들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50%에 이르지만, 일본은 15%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중 하나다. 일본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미ㆍ중 사이에서 한쪽을 버릴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일본에 말려들지 말고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법인세 등 각종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감세를 하면 투자가 늘어나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증거가 없다”고 받아쳤다. “세금이 낮아야 투자를 한다면 모든 기업이 법인세가 낮은 남미 파라과이에 가겠지만 가지 않는다”면서다. 국가가 제공하는 치안, 교육 등 사회 간접제도의 격차 때문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나 노동의 질이 높다면 법인세는 높을 수도 있다. 세율이 아니라 세금으로 국가가 기업에 무엇을 해 주는지, 가성비를 얘기해야 한다.”
현재 세계 경제가 처한 위기에 대해서는 “2008년 금융위기의 속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세계가 공적 자금을 대거 투입하고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떨어트렸다”며 “그 결과 엄청난 자산 거품이 끼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앞으로 경제 상황은 어떨까. “은행 상황만 보면 2008년보다 자기자본 비율이 높아 안전할 것 같은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갑작스럽게 파산한 것처럼 어디에 문제가 숨어있는지 알 수 없다. 은행이 안전하다고 2008년보다 지금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등을 통해 자본주의 문제를 파헤친 경제학자. 시장 만능주의를 배격하고 국가와 공동체의 역할을 끌어올려 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해 왔다. 새 책 ‘경제학 레시피’는 마늘, 고추, 초콜릿 등 18가지 식재료로 경제 문제를 성찰한 ‘경제학 입문서’ 격이다. 예를 들어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코코넛을 통해 개발도상국이 가난한 원인을 살피는 식이다.
“모든 게 경제 논리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느 정도 경제를 이해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학에 관심 없는 분들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음식이라는 ‘미끼’를 던진 거죠. 하여튼,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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