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펴낸 김희경 전 여가부 차관
“주변에서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아니면 당연히 자녀가 있다고 전제하고 ‘아이는 어느 학교 졸업했나요’라고 물어보거나요. 이런 말들이 제게 중년 솔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하도록 했죠.”
논픽션 작가 김희경(56)이 ‘에이징 솔로’를 쓴 것은 필연이다. 에이징 솔로는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 중년(40~60대)을 규정한 말. 책을 쓴 김 작가 역시 에이징 솔로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낼 만큼 능력은 출중했지만 비혼이라는 이유로 ‘비주류’ 라는 시선을 받았다. "혼자 산 지 20년 되어가는 나도 종종 불안했고 갈증에 시달렸다. 내가 참조할 에이징 솔로의 삶이 궁금했다."
자신처럼 비혼을 선택한 중년 여성 19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외로움, 돌봄, 주거 등의 문제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생계를 잘 유지하고 주변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혼자여도 충분한' 삶을 살았다. 한국일보에서 만난 김 작가는 “혼자 나이 들면 비참하고 외롭다는 말은 혼자 사는 사람의 증가를 막으려는 사회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들은 잘 살고 있었다”고 했다.
1인 가구는 비주류라는 편견부터 걷어내야 한다. 2021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33%가 1인 가구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29%) 보다 많다. 더구나 1인 가구 중 중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38%에 달한다. 그럼에도 정책은 여전히 '정상가족' 중심. 그는 “에이징 솔로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보이지 않는 존재라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혼자 나이 들면 서럽다’는 말도 거짓에 가깝다. 비혼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삶에 더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자기 주도적 삶을 살고 있다’는 대답은 40대 여성 59%에서 50대 여성 66%로 늘었다. 무슨 비장한 각오를 하거나, 어떤 결함 때문에 혼자 사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비혼을 선택했을 뿐”이다.
가족을 이룬 이들이 흔히 하는 말. “사람이 평생 해볼 수 있는 일 중 가장 깊은 경험이 결혼과 육아다.” 이런 시각에서 비혼 여성은 ‘깊은 가치’를 모르는 미성숙한 개체다. 정말일까. 김 작가는 “세상에 좋은 이야기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하나뿐인 깊은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자식을 낳아야 어른인 게 아니라, 부모에게 독립해 자기 삶을 책임지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관계를 맺을 때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1인 가구를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적 가족이 아니라도 ‘내가 지정한 1인’이 나를 대리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의 도입, 생활동반자법 제정, '가족 중심 복지'에서 '개인 중심 복지'로의 전환 등을 제안했다.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혼삶’의 증가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가 겪는 현상이며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 위기가 왔다'는 시선을 거두고 “맞벌이를 당연시하면서 돌봄 노동은 여성이 도맡고, 남녀 임금 격차는 여전한" 가부장제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비자발적으로 혼자 살거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이 연구 대상에서 빠진 것은 김 작가도 한계로 꼽았다. 비혼 중년 남성도 다루지 않았다. 김 작가는 “중년 비혼 남성들을 몇 명 만났는데 돌봄, 관계 등 혼자 살면서 겪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여성들과 매우 달랐다”며 “아쉽지만 책에 여성들과 함께 담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 작가는 전작 '이상한 정상가족'과 새 책 '에이징 솔로'를 통해 한국 사회 강고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부조리를 파헤쳤다.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삶을 살아도 된다’는 용기도 얻었다. “인터뷰한 분들이 모든 문제에 해법을 찾은 건 아니다. 여전히 불안하거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안고 있었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됐다. ‘가족이 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독자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주변과 연결되려고 한다는 점에서 1인 가족이 는다고 사회가 원자화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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