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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군항제 점령한 일본 왕벚나무... 왜 오래 살고 병충해 강한 '제주 왕벚나무'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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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군항제 점령한 일본 왕벚나무... 왜 오래 살고 병충해 강한 '제주 왕벚나무'는 없을까

입력
2023.03.27 04:30
수정
2023.03.27 06:18
2면
0 0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진해 벚꽃 명소 조사
96% '소메이요시노', 한국 특산종 제주 왕벚 '0'
제주 왕벚, 장점 많아... 자원 활용 가능성도
아직 제한적으로 도입... "인식도 높여 점차 바꿔나가야"

21일 4년 만의 군항제를 앞둔 경남 창원 진해구의 벚꽃 명소인 여좌천 일대에 소메이요시노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소메이요시노는 기둥 곳곳에서 맹아가 자라거나 꽃이 피는 것이 특징이다. 진해=오지혜 기자

21일 4년 만의 군항제를 앞둔 경남 창원 진해구의 벚꽃 명소인 여좌천 일대에 소메이요시노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소메이요시노는 기둥 곳곳에서 맹아가 자라거나 꽃이 피는 것이 특징이다. 진해=오지혜 기자

"381번째, 소메이. 382번째, 소메이. 383번째, 소메이. 384번째, 소메이... 제주 왕벚나무를 하나라도 보고 싶네요."

지난 21일 코로나19 확산 이후 4년 만의 군항제를 앞둔 경남 창원 진해구의 벚꽃 명소인 여좌천 한복판. 노란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위성항법장치(GPS) 기계, 카메라 등을 나눠 들고 벚나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조사지에 꼼꼼히 표기를 했다. 이들은 벚나무 종류 조사에 나선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조사대원들이었다.

제주 왕벚나무(왼쪽)는 겨울눈에 털이 비교적 듬성듬성 나있는 반면, 소메이요시노는 겨울눈에 털이 빼곡하게 나있는 특징이 있다.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제공

제주 왕벚나무(왼쪽)는 겨울눈에 털이 비교적 듬성듬성 나있는 반면, 소메이요시노는 겨울눈에 털이 빼곡하게 나있는 특징이 있다.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제공

이들은 벚나무의 꽃받침통이 길쭉한지 동그란지, 소화경(꽃자루, 한 개의 꽃을 달고 있는 줄기)이나 암술대에 털이 많은지 적은지, 나무 기둥에 꽃이나 새싹이 돋았는지 여부를 살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수백 그루의 벚나무가 대부분 일본에서 넘어온 왕벚 '소메이요시노(Prunus x yedoensis Matsum.)'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왕벚인 '제주 왕벚나무(Prunus x nudiflora Koidz.)'는 겨울눈의 털이 비교적 듬성한 것이 특징인데, 조사대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음에도 한 그루도 발견할 수 없었다.

진해 물들인 '소메이요시노'... 너는 누구냐

진해 유명 벚꽃 명소 벚나무류 식재 현황.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제공

진해 유명 벚꽃 명소 벚나무류 식재 현황.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제공

26일 왕벚나무프로젝트2050에 따르면 단체가 지난 21, 22일 여좌천, 경화역, 중원서로 등 진해 유명 벚꽃길의 벚나무를 전수조사한 결과 96%가 소메이요시노로 파악됐다. 장소별 비율은 △여좌천 99.7% △경화역 91.1% △중원서로 100% 등이었다. 881그루 가운데 소메이요시노(846그루) 외에 가지가 버드나무처럼 축 늘어진 처진올벚나무(일본 원산·28그루)가 있었고, 한국 자생종인 올벚나무·잔털벚나무 등은 고작 7그루였다. 반면 한국 특산종인 제주 왕벚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다. 자생종과 특산종은 모두 저절로 자라난 야생종인데, 특산종은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는 특징이 있다.

22일 경남 창원 진해구에 위치한 경화천 일대에 일본 원산의 처진올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꽃받침통이 동그란 처진올벚나무의 모습. 진해=오지혜 기자

22일 경남 창원 진해구에 위치한 경화천 일대에 일본 원산의 처진올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꽃받침통이 동그란 처진올벚나무의 모습. 진해=오지혜 기자

소메이요시노는 한국에서 '왕벚나무'로 불리는 벚나무의 한 종류로, 올벚나무(모계)와 오오시마 벚나무(부계) 사이에서 나온 잡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1900년대 초반 한 차례 유입된 뒤 해방 이후 대대적 벌목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1960년대 다시 유입돼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진해구청에 따르면 진해 벚나무들도 수령이 평균 35~40년으로 이 시기에 심긴 게 많다.

소메이요시노는 왕벚나무 원산지 논란을 일으켰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등재 당시 재배종으로 기록됐고 이후에도 접목 방식을 통해 사실상 복제품 형태로 양산돼, 원산종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초가 된 나무를 두고 '제주도에서 가져왔다' '일본 원산이다' 등 설(說)만 무성한 상황이다. 또 제주 한라산 중턱에서 야생하는 제주 왕벚나무와 비슷하게 생겨 소메이요시노가 한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조사 대원들이 21일 경남 창원 진해구에 위치한 여좌천 일대에서 벚나무 종류 조사에 한창이다. 진해=오지혜 기자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조사 대원들이 21일 경남 창원 진해구에 위치한 여좌천 일대에서 벚나무 종류 조사에 한창이다. 진해=오지혜 기자

그런데 제주 왕벚나무는 최근 연구를 통해 소메이요시노와 별개의 종이라는 근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2018년 국립수목원의 DNA 연구 결과 제주 왕벚나무는 한국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이자 올벚나무를 모계로 벚나무(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잡종으로 분석됐다. 즉 기원이 명확하지 않은 소메이요시노와 달리, 명확히 한국에서 움튼 나무라는 것이다.

"소메이요시노, 제주 왕벚으로 바꿔야"

왕벚나무프로젝트는 수명이 다한 소메이요시노를 제주 왕벚나무로 바꿔 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메이요시노의 수명은 60~80년 정도로, 1960년대에 심겨진 나무들은 교체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진해에서도 수액 주사가 여러 군데 꽂힌 나무, 나이가 들어 뚫린 구멍 사이로 해충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충전재가 채워진 나무, 버섯이 핀 나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21일 경남 창원 진해구에 위치한 여좌천 일대에 몸통에 충전재가 채워진 소메이요시노 벚나무가 서 있다. 진해구청에 따르면 수령이 오래된 나무 기둥에는 구멍이 뚫리는데, 이사이로 해충이 들어오지 못하게끔 외과수술을 한다고 한다. 진해=오지혜 기자

21일 경남 창원 진해구에 위치한 여좌천 일대에 몸통에 충전재가 채워진 소메이요시노 벚나무가 서 있다. 진해구청에 따르면 수령이 오래된 나무 기둥에는 구멍이 뚫리는데, 이사이로 해충이 들어오지 못하게끔 외과수술을 한다고 한다. 진해=오지혜 기자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은 "소메이요시노는 일본에서 하나의 종처럼 복제 생산돼 한국에도 유입된 것인 만큼 일본산으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 "꽃에는 국적이 없다는 지적도 있으나, 일본이 소메이요시노를 자국 대표 꽃이라고 선을 긋는 만큼 우리도 특산종인 제주 왕벚나무를 찾아 널리 심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특산종인 제주 왕벚나무는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해 기후변화나 병충해 등에 적응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김승철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원예종은 유전적으로 균일할 수 있어 병균 등에 적응이 어려운 반면, 자생종들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도 좋다"면서 "제주 왕벚은 수명도 원예종에 비해 훨씬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주요 벚나무 종. 송정근 기자

주요 벚나무 종. 송정근 기자

식물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최경 국립수목원 박사는 "제주 왕벚나무가 명확하게 기원이 밝혀진 한국의 특산종인 만큼 개량, 자원화가 이뤄진다면 나고야의정서에 따라 로열티를 지급받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2018년 발효된 나고야의정서는 특정 국가의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익의 일부를 공유하도록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 왕벚... "홍보가 우선"

현재 제주 왕벚나무는 제주도 등 일부 기관에서 천연기념물 159호로 지정된 제주시 봉개동 왕벚나무를 조직배양해 증식한 묘목을 제주나 타 지역 연구기관·수목원 등에 보내는 식으로 보급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식물원은 2021년 봉개동 왕벚나무 묘목 50주를 도입한 바 있다.

제주 왕벚나무(왼쪽 사진)와 경남 창원 진해구 경화역 일대에 피어 있는 소메이요시노. 꽃이 핀 모습이 매우 유사해 구별이 쉽지 않으나, DNA검사 결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제공·진해=오지혜 기자

제주 왕벚나무(왼쪽 사진)와 경남 창원 진해구 경화역 일대에 피어 있는 소메이요시노. 꽃이 핀 모습이 매우 유사해 구별이 쉽지 않으나, DNA검사 결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왕벚나무프로젝트2050 제공·진해=오지혜 기자

왕벚나무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국내 명소의 벚나무를 조사해 식재 현황을 파악하고, 관련 책자를 만들어 제주 왕벚나무의 존재를 널리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제주 왕벚나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아져야 기존 벚나무 교체 시기 때 제주 왕벚나무의 식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프로젝트의 현진오 사무총장(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대표)은 "정부에서도 적극 개입해 제주 왕벚나무 농사를 지원하고, 가로수로도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해=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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