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권력 견제 수단 사실상 사라져
'파업' 시위대 vs '마이웨이' 네타냐후
내주 '법관 임명 법안' 처리가 분수령

22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위치한 의사당 회의장에서 베냐민 네타냐후(윗줄 왼쪽 두 번째) 총리가 한 의원과 긴밀히 대화하고 있다. 예루살렘=EPA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견제 수단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이스라엘 의회에서 통과됐다.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혐의 무마용'이라는 지적을 받는 사법 개혁 추진에 대한 항의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법안 가결로 최소한 법적 측면에서 그의 권좌는 더욱 튼튼해지게 됐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더 많은 시민이 거리로 뛰쳐 나오는 등 반(反)네타냐후 시위는 한층 더 불붙고 있다. 더구나 의회가 다음 주 '사법 정비'(네타냐후 주장) 또는 '사법 무력화'(시위대 주장)로 불리는 사법개혁안 처리 여부를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어서, 이스라엘 정국 혼란도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16시간 필리버스터에도 '정부조직법' 개정안 가결

이달 15일 베냐민 네타냐후(가운데) 이스라엘 총리가 의회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예루살렘=AP 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의회는 전날 현직 총리의 직무 부적합 결정 방식 등을 제한하는 '정부조직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 처리 여부를 두고 토론을 시작했다. 개정안은 우파 여당 리쿠드당 의원들이 발의했으며, 야권은 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이어갔다. 하지만 여당의 저항은 실패했다. 결국 투표가 시작됐고, 재적 120명 의원 중 '찬성 61명, 반대 47명'으로 개정안은 의회 문턱을 넘는 데 성공했다.
이번 법안은 현직 총리의 낙마 혹은 사퇴 여부에 외부 변수의 개입을 최대한 막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우선 총리에 대한 직무 부적합성 심사는 '정신·육체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가능토록 했다. 형사 소추나 유죄 판결이 나와도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용 항목을 최소화한 셈이다. 현재 네타냐후 총리는 사기 및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부적합 결정'도 매우 힘들도록 했다. 총리의 자진 사퇴가 아니라면, 각료의 3분의 2 이상이 부적합 판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이마저도 총리가 각료 투표 결과를 거부하면 의회로 공이 넘어간다. 이때에도 전체 의원(120명)의 '3분의 2'(80명) 이상이 찬성해야만 부적합 결정이 확정된다.
심지어 기존에 있던 총리 권력 견제 수단은 아예 사라졌다. 대법원의 총리 탄핵 판결, 검찰총장의 총리 직무 부적합 결정권 등을 규정한 조항이 개정안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메라브 미카엘리 노동당 대표는 "순전히 네타냐후를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만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법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알자지라 등 외신들도 "권력으로부터 총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네타냐후 방탄법'이라는 얘기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네타냐후도 물러서지 않아

2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도심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무력화' 시도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텔아비브=AP 연합뉴스
시민들은 "이건 쿠데타"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평일임에도 수많은 시민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법무력화 반대' 시위에 나섰다. 23, 24일을 '업무중단의 날'로 선포했고,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예비군과 군수산업 종사자들은 주요 도로를 봉쇄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부모 손을 잡고 시위에 참여했다. 정부의 사법 개혁에 항의하는 시위는 12차에 접어들었고, 이번 주말 최고조에 달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물러설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오히려 그는 이날 생방송 TV연설에서 "내가 직접 개입해 '사법 정비' 입법을 책임감 있게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변의 위험 요소도 하나하나 제거하는 중이다. 전날 '사법 정비 중단 촉구' 대국민 연설을 계획했던 '반대파'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직접 만나 이를 철회시킨 게 대표적이다.
'강 대 강' 대치 속에 극한 충돌도 불가피해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 측은 사법 개혁의 핵심 요소인 '법관임명위원회 구성' 법안을 내주 의회에 제출해 표결에 나설 방침이다. 당초 내각과 여당이 법관 임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법안이 설계됐으나, 국제사회 비판을 고려해 일부 내용이 수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이런 의회 움직임에 맞춰 전국 각지에서 최대 규모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국가의 위기가 '내전' 상황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