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쓰지 만타로, 가족별장으로 사용
일제강점기 문화주택 교외 별장 형식 반영
내륙지역 별장으로 드문 형태
대전 시민들의 대표적 휴식 공간인 중구 대사동 보문산에 1930년대 일본인 기업가가 지은 별장이 시가 지정한 2호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대전시는 26일 "최근 문화재위원회 확정 심의를 거쳐 이 건물을 '대전보문산 근대식 별장'으로 명명하고, 시 등록문화재로 확정·고시했다"고 밝혔다. 옛 대전형무소 우물에 이은 2호 등록문화재다.
해당 건물은 1931년 쓰지 만타로가 너와형 기와를 얹어 지은 90여㎡(27평) 크기의 아담한 단층주택이다. 주택에는 중정 중심의 한옥과 달리, 거실 중심으로 평면 배치를 한 일제강점기 주택 형식이 반영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서양주택의 공간 구조와 외관을 따라 지어졌던 '문화주택'을 보문산 방갈로식 별장 형식에 반영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1930년대 사진을 보면 정남향에 커다란 복도를 베란다처럼 설치하고, 남향에 큰 창을 내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서양식 의자에 앉아 외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개항지나 관광지가 아닌 내륙에 조성된 별장으로는 드물 사례라는 게 대전시 설명이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미닫이문 위에 부착한 장식용 교창(交窓), 외부의 돌출창도 건물의 시대적 특징과 역사성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건물은 1945년 광복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약간 변형됐지만, 평면과 구조 그리고 원형 형태는 유지됐다.
등록문화재 현지 조사에 참여한 황민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박사는 "보문산 근대식 별장은 1920년대 문화주택의 건축적 요소와 그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건축물로, 대전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희소성이 있는 중요한 문화재"라고 설명했다.
1909년에 태어난 건축주 쓰지 만타로는 1905년 대전에 정착한 쓰지 긴노스케의 아들이다. 사업가인 아버지 뒤를 이어 지금의 동구 원동에 있던 후지추 양조공장을 전국적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조선대전발전지'(1917)나 '충남발전사'(1933) 등 일제강점기 지역 자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본인 기업가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 해당 별장은 보문사의 요사채(寮舍寨·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로 이용됐다.
쓰지 부자는 일제강점기 한국인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상일 대전대 교수는 대전세종연구원의 2015년 정책보고서에서 "쓰지 부자는 한국인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한 청주 군시제사공장의 자본가 나가노와 달리, 대전을 자신의 고향처럼 생각했다"며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중시한 친조선적 경영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후지추 양조는 초기 대전지역 기업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실제 '남선기공'과 '진미식품', '대창식품' 등 대전 향토기업의 창업주들이 후지추 양조공장 출신들이다.
박성관 대전시 문화유산과장은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하고, 인근 숲치유센터와 목재문화체험장 및 숲속공연장과 연계해 시민쉼터, 차 문화체험장, 건축전시체험관 등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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