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야당 대표 선영 훼손, 저주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법

입력
2023.03.23 19:00
25면
0 0
장유승
장유승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편집자주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늘 새롭게 해석된다. 고전을 잘 읽는 법은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 짓는가에 달렸다. 고전을 통해 우리 현실을 조망하고 이야기한다.

SBS 드라마 '장희빈'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장희빈'의 한 장면.


자파 결집과 정적 제거에 이용된 '저주' 무고
심대윤 "다스리지 않으면, 저주는 사라진다"
공개 보다 수사 기다리는 게 현명한 대응법

조선시대 형법 '대명률' 312조.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인형이나 부적을 만들어 저주하면 살인을 모의한 죄로 처벌한다." 비슷한 법조문이 당나라 법률에 일찌감치 보인다. 저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믿음은 동서고금 공통이다.

저주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인형을 만들어 심장을 찌르거나 눈에 못을 박거나 손발을 묶는다.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로 부적을 만들고 주문을 왼다. 죽은 사람의 뼈, 살점, 손발톱, 머리카락, 관 조각, 벼락 맞은 나무, 무덤가의 나무, 동물 사체, 하여간 온갖 혐오스런 물건을 남의 집 마당, 굴뚝, 담장, 조상 무덤에 묻어 놓는다. 그러면 저주를 받은 사람이 안 좋은 일을 당한다는 믿음이다.

법으로 금지할 만큼 저주가 횡행한 이유는 첫째, 무지했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으면 으레 귀신이 한 짓으로 치부했다. 병에 걸리면 의원보다 무당을 먼저 찾았다. 죽어가는 병자를 앞에 두고 푸닥거리를 벌였다. 귀신을 쫓아야 병이 낫는다고 믿었으니, 귀신을 부려 사람을 해치는 짓이 가능하다고 믿은 것도 당연하다.

둘째는 저주의 효력을 믿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 사회는 표면적으로 유교적 합리주의가 지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한 것은 유교 윤리가 아니라 사주, 풍수, 해몽, 택일 따위의 민간신앙이었다. 저명한 유학자들조차 기층에 굳건히 자리 잡은 민간신앙을 무시하지 못했다.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여 사면령을 내려도 저주 살인은 예외였다.

셋째는 저주를 핑계로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다. 미워하는 사람을 확실히 제거하는 방법은 그에게 저주를 거는 게 아니다. 그가 저주 행위를 벌였다고 누명을 씌우는 것이다. 일단 누명을 씌우면 상대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지금처럼 CCTV가 곳곳에 설치된 것도 아니다. 누가 무슨 의도로 흉물을 묻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진상을 밝히려면 고문과 자백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억울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역모 사건에는 으레 저주가 등장한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는 인형을 만들어 성종과 대비를 저주했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했다. 광해군이 계모 인목대비를 폐위한 여러 가지 핑계 중 하나도 저주였다. 소현세자빈 강씨는 사람 뼈와 구리 인형을 궁중에 묻고 인조를 저주했다는 죄목으로 사사당했다. 장희빈이 사약을 받은 이유도 흉물을 묻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죄목이었다.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저주 사건이 자파를 결집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굵직한 사건만 이 정도이니, 민간에서 벌어진 사건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심대윤(沈大允, 1806~1872)의 '흠서박론(欽書駁論)'은 정약용의 '흠흠신서'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시대 형사사건 판례집이다. 심대윤은 말했다. 저주 사건은 대부분 날조이며,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저주와 상관없다. 저주를 당했다는 고발은 일체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 흉물을 발견했다면 내다버리면 그만이지, 묻은 사람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무고한 피해자를 막는 방법이며, 저주라는 미신에 현혹된 백성을 깨우치는 방법이다. "저주를 다스리지 않으면 저주하는 자가 저절로 없어진다.[見蠱不治, 自無爲蠱者矣]" 심대윤의 주장이다.

야당 대표의 부모 묘소를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선영을 훼손하는 짓은 전통적 관념상 용서하기 어려운 죄다. 그렇다고 저주를 받았다며 지지자들 보란 듯이 이게 무슨 글자냐고 묻는 게 적절한 대응일까. 법이 있으니 철저히 수사하고 엄정히 처벌하면 그만이다. 저주를 없애려면 저주를 무시해야 한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