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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 그 따뜻함

입력
2023.03.23 16: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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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우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문학은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지난해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4주에 한 번씩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작품을 추천합니다.

유령의 마음으로·임선우 지음·민음사 발행·284쪽·1만3,000원. 예쁜 표지를 보고 구매하게 된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 후 수록된 모든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유령의 마음으로·임선우 지음·민음사 발행·284쪽·1만3,000원. 예쁜 표지를 보고 구매하게 된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 후 수록된 모든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어린 시절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조건 표지였다. 표지가 예뻐서 읽기 시작했다가 순식간에 내용에까지 빠져든 책들. 나는 그렇게 '꼬마흡혈귀 루디거'와 디즈니 명작 시리즈, 메르헨 전집을 만났다. 만나고 나니 모두 전집이었고, 어린 내게 돈이 있을리 없었다. 꼭 들어맞게 배열된 전집에 구멍을 내듯 한 권의 책을 뽑아 계산대로 들고 갈 때마다 ‘어른이 되면 꼭 전집을 왕창 구매하리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 그 많은 책들을 꽂아 넣을 공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어쨌든 지금도 나는 종종 예쁜 표지를 보고 책을 고르거나 같은 판형의 책을 모으는 데 열중하곤 한다. 온전한 독자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임선우의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는 이런 나의 구매 취향을 모두 충족하는 책이었다. 빛의 스펙트럼 같은 바탕에 하얗고 무해해 보이는 유령들이 떠돌고 있는 표지는 바라만 봐도 마음 한편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여주었다. 게다가 최근에 나오는 민음사의 단편집은 모두 판형이 같지 않은가. 책장에 꽂는 순간 느낄 것이 분명한, 어두운 구멍 하나가 메워지는 듯한 기분을 상상하며 펼쳐보지도 않고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 밤, 엎드린 채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표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이 책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집의 모든 소설들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표제작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임선우 작가. 민음사 제공

임선우 작가. 민음사 제공

‘나’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 ‘나’는 나에게만 보이며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거리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엄청난 추위가 느껴지는 탓에 둘은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한다. 식물인간 상태로 2년 동안 병원에 있는 ‘나’의 남자친구의 병실에도 함께 간다. ‘나’는 또 다른 ‘나’를 유령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유령은 ‘나’보다 감정에 훨씬 충실하다. 유령은 꾹꾹 눌러두고 감춰둔 ‘나’의 감정을 울고, 웃고, 화내며 표현한다.

소설은 대책 없이 따뜻하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존재 자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소설 속에서 우리는 물고기, 바퀴벌레와도 소통할 수 있다. 이런 설정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를 감히 짐작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런 ‘완전한 이해’들은 어쩌면 언어를 뛰어넘는, ‘꿈처럼 아름답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물고기처럼 유연하고 흐르는 물처럼 반짝이는’,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령의 마음으로'를 만나고 며칠 동안은 시니컬한 마음이 사라졌다. 전집이 없으면 어때, 전집을 놓을 공간이 없으면 뭐 어때, 하면서. 그래도 우리에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독서의 방식이 있지 않은가. 그런 순간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또다시 온전한 독자의 자세로 돌아가서 따뜻한 전기장판을 깔고 아무렇게나 누운 자세로 책을 들고 히죽거리며 생각해보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건 결국 ‘뭔지 몰라도 되게 따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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