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동네 한 바퀴' 내레이션 맡은 강부자... '국민 어머니'의 사명
60여 년 노역 도맡았지만 MZ세대에겐 '활기찬 노년' 아이콘으로
황혼 넘어 화장품 광고까지... "리허설 없는 인생, 후회 없이"
"내 고향 남쪽 바다~." 브라질 상파울루 봉헤치로의 작은 공원에서 한국의 가곡 '가고파'가 울려 퍼졌다. 브라질로 이민 온 지 40~50여 년 된 어머니 11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이렇게 한국 노래를 부른다. 합창단 멤버인 김상금(74)씨는 "가고파라 가고파"란 후렴을 부르다 잠시 노래를 멈춘 뒤 두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1972년 경북 청도에서 브라질로 건너온 김씨는 당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렸다. 그의 베갯잇은 밤마다 흘린 눈물로 1년 내내 젖어 있었다.
"흐윽, 고향이란 두 글자는 눈물로 빚어진 걸까요". 김씨의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본 강부자(82)는 이렇게 흐느끼며 말한 뒤 '가고파'를 조용히 따라 불렀다. 최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이뤄진 교양 프로그램 '동네 한 바퀴' 해외 특집 '당신이 계신 곳이 동네입니다' 내레이션 녹음 풍경이다. 강부자가 '가고파'를 따라 부르는 건 대본에 없는 내용. 16일 본보와 만난 그는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나. '가고파'가 철철 울면서 나오지"라며 "한복 입고 '내 고향 남쪽 나라' 부를 땐 또 어떤 심정이었겠냐. 그런 걸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얼마나 고생" 눈물 흘리며 '가고파' 따라 불러
강부자는 지난 4일 방송부터 '동네 한 바퀴'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서민의 다양한 삶의 풍경을 따뜻한 목소리로 보듬어 매주 한 번씩 전달하는 게 그의 일. 10만 원짜리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1962년 KBS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직후부터 평범한 아낙을 주로 연기해 온 강부자에겐 숙명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1990년대 이후 드라마에서 주로 무서운 시어머니로 나왔던 그의 엄격한 모습은 '동네 한 바퀴'에 없다. 노배우는 자신을 "삼다(多)의 여인"이라고 소개했다. "다들 무섭다고 하는데 제가 눈물도 많고 정도 많고 겁도 많아요." 웃음이 가득한 그의 눈이 그믐달처럼 변했다.
강부자가 동네에 숨겨진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물찾기하듯 발견한다면, 최불암은 전국을 돌며 잃어버린 한국의 '손맛'(KBS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낸다. 반평생을 '국민 어머니' 혹은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들이 사명감으로 뛰어든 일이다. 동갑내기인 두 배우는 실제로도 각별하다. "최불암, 김민자 부부 결혼식 때 제가 신부 들러리를 섰어요. 우리 남편(배우 이묵원)이 동녘이(최불암 아들) 아빠 함진아비를 맡았고요. 한 번은 동녘이 아빠가 시골에서 민어를 보냈더라고요. '한국인의 밥상' 찍은 뒤에요."
또 다른 인연은 강부자에게 황혼의 설렘을 가져다줬다. 그는 3년 전 최백호로부터 노래 선물을 받았다. 2021년 1월 발표한 '나이 더 들면'이다. "어려서 식구들 다 자는데 대청마루에서 '기러기 우러예는' 같은 노래를 한없이 부르곤 했어요. 아버지가 '부자야, 이제 그만 들어가 자라. 너 그러다 나중에 커서 시어머니한테 쫓겨난다'고 할 정도였죠. 제가 노래 좋아하는 걸 아는 최백호씨가 곡을 휴대폰으로 보냈더라고요."
'축구 달인'에 가수 도전까지... 강부자의 2막
강부자는 데뷔 후 줄곧 노역을 도맡았다. 1962년 드라마 '구두창과 트위스트'에서 중매쟁이 역을 맡은 게 시작이었다. 2년 뒤 강부자는 '로맨스 가족'에서 그보다 25세 위인 배우 김동원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 그는 "데뷔 초엔 구부정하게 노인 역할을 하는 걸 엄마랑 차마 못 보겠어서 같이 TV를 보지 못했다"고 옛 얘기를 꺼냈다.
노역을 주로 맡아 완고하고 보수적이라고 여겨졌던 강부자는 팔순이 넘어 MZ세대에게 '유쾌한 노년'의 아이콘으로 새삼 조명받고 있다. 2019년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누리꾼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축구에 진심인 활기찬 노년으로 주목받은 그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품 광고 모델까지 꿰찼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즐기는 그의 모습에 젊은 세대는 환호했다. 강부자는 이 인터뷰 전날에도 20세 이하 아시안컵 축구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를 챙겨봤다고 했다. 노배우의 입에선 "오현규(셀틱)가 잘할 거다" 등의 축구 얘기가 속사포처럼 흘러나왔다.
"인생엔 리허설이 없어요. 한 번 살면 되돌릴 수 없죠. 그래서 후회 없이 살려고요. 25일부터 KBS 새 주말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를 시작하고 올 하반기까지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을 합니다. 시청자분들이 '지루해'라는 말 나오기 전까지 '동네 한 바퀴'를 잘해볼 생각입니다. 혹 청이라도 있으시면 (방송사로) 전화도 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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