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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뼈대 속 다양한 표정… 손열음이 사랑한 모차르트의 매력

입력
2023.03.20 11: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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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14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연주하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14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연주하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모차르트는 상식에 가까운 인물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1985년 작품이지만 유쾌하고 변화무쌍한 '음악 천재'의 매력을 잘 살려내 지금도 모차르트를 소개하는 영상물로 자주 언급되며 작곡가를 더 친숙하게 만들었다. '신동' 신화와 더불어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마케팅 부산물은 모차르트 음악을 엄마 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라게 만들었다. 어렵게 쓴 곡이 아니라 연주하기도 좋고 자주 들은 선율은 흥얼거리기에도 좋은데, 진입 장벽이 낮은 이 음악은 생명력까지 길어 언제 들어도 반갑다.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지만 누구와도 다르게 연주해야 하는 피아니스트들은 반대로 괴롭다. 특히 기술적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뺀 모차르트의 음악이 그만의 위트와 유희, 맑음과 자유로움을 유지한 채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려면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연주'의 형태가 아닌 다른 영성에 의지해야 하는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를 가리켜 "인간의 목소리에 내재한 선율을 완성하고 절대적으로 이상화한 인물"이라면서 "모차르트의 선율은 세속의 그 어떤 형체에도 머물지 않는 물자체(物自體)며 천상과 지상 사이를, 필멸과 불멸 사이를 떠다닌다"고 했다. 눈으로 인식할 수 없고 지성으로 포착할 수 없으며 지극히 신적인 것으로, 느낌으로만 어렴풋이 예감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발매했다. 세계적 거장 지휘자 네빌 마리너(1924~2016)는 "손열음은 모차르트를 연주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라며 함께 앨범을 남겼고, 손열음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차르트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의 어떤 점을 사랑하는 것일까.

"모차르트의 음악은 무(無)에 가까울 만큼 단순하지만 그 속에 수없이 다양한 표정과 놀라움, 변덕을 갖고 있어요.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것들이 이 사람의 음악을 어렵게 만들 수 있죠. 저는 모차르트 음악의 완벽함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엄청난 노력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인 걸 알지만 인간의 것이 아닌, 신이 만들어놓고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열심히 옷을 만들었는데 옷을 보니 봉제선이 없는, 완벽한 틀 안에 완성된 음악이지만 틀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죠. 모차르트의 종교 음악들도 좋아하는데, 다른 위대한 작곡가들의 종교 음악은 세속적이다 여겨질 정도로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14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연주하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14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연주하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연주자가 음반 내지에 직접 쓴 글을 보면서 모차르트에 대한 생각을 더 알 수 있고 6장에 담긴 음악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감정을 건드린다. 맑아지고 편안해지는가 하면 뜬금없이 묵직한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가 가벼워지기도 한다. 감상은 각자 달라질 수 있겠지만 가장 유명한 소나타 16번 K.545를 들을 때면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알던 그 곡과는 다른, 피아니스트가 자율적으로 꾸밈음과 음표를 넣고 리듬을 변형한 부분들이 들린다. 모차르트를 칠 때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이번 녹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였어요. 모차르트는 뼈대만 써놓은 작품도 많아요. 협주곡 악보에서는 더 자주 볼 수 있죠. 그 사이를 어떻게, 얼마나 채워 넣어야 하나 싶은데 로버트 레빈 같은 모차르트 연구가들은 악보대로 치는 것보다는 잘 못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매번 달리 표현해야한다고 해요. 제가 즉흥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녹음에서는 조금 덜했고 무대 위에서는 최대한 더 표현하려고 해요." 양념이 과하면 좋은 재료의 맛이 가려질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손열음의 자유 덕분에 소나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더 즐기게 됐다.

"모차르트 음악은 뭘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베토벤이나 슈만 같은 작품은 뭔가 전달하고 싶은 걸 표현해야 한다고 할 때 모차르트는 의지를 내려놓아야 해요. 그게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고, 또 저도 어릴 땐 어려웠지만 언제부턴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했을 때 저의 음악성과 맞아 들어가는 지점이 생긴 것 같아요."

이번 앨범 녹음에 참여한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은 "초기 소나타는 처음 연주해 보는 것이라는 손열음이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 앞에 앉자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모차르트가 들렸다"고 했다. 쉽지만 어렵고, 어렵지만 쉬운 모차르트 음악의 비밀을 전곡 '몰아듣기'를 통해 확인해보고 싶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도 전편 '몰아보기'를 해야 긴장감을 갖고 몰입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연진아, 이번 주말엔 음악 들어야 하니 방해하지 말아 줄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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