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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사회지도층도 '사이비종교' 못 벗어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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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사회지도층도 '사이비종교' 못 벗어난 까닭은?

입력
2023.03.19 07:00
수정
2023.03.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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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사이비종교 연구'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
"종교 무관 단체·모임서 종교 얘기 꺼내면 의심·확인해야"
"고학력·지도층, 교주 죽어도 잘못된 선택 인정 않고 죽음 미화·신격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오늘 강원대병원 예약 있어 (가는 길에) XX마트 사거리에서 법원 쪽 가는 길 우측 인도에 '신천지'라는 하늘색 띠를 맨 여자 3명이 아예 탁자 하나 갖다 놓고 아예 대놓고 포교활동하는 걸 우연히 봤어요. 이젠 감추지도 않고 버젓이 신천지 띠를 매고 있는 걸 보니 기가 막힙니다."(14일 강원 춘천시 퇴계동)

"오늘 신천지 (경남 창원시) 사파·신월·상남(동)에 심하게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 지나가니 멈춰 세워 주사위 게임도 시키고, 구호 외치고 난리도 아닙니다. 어린 자녀들한테 주의주세요."(11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온라인 중고거래 앱인 당근마켓에 최근 올라온 글이다. 흰색 상의에 파란색 띠를 두른 옷차림으로 포교활동하는 사진이 첨부되거나 "나도 봤다"는 댓글도 달렸다. 기독교복음선교회(통칭 JMS) 등 사이비종교 실태를 낱낱이 파헤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로 사회적인 경각심이 부쩍 높아진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주 이만희를 따르는 신천지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특히 신천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 신천지 신도들의 집단감염을 계기로, 수많은 신천지 피해 실태가 드러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실상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잠잠해졌을 거란 기대와 달리 오히려 대범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종교학자인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는 본보와 통화에서 "신천지가 보이지 않았다기보다는 코로나 전에는 대면 포교가 주류였고 코로나 기간 동안 온라인으로 활동하면서 '신도 통제'를 중시하다 방역조치가 사실상 해제된 지금은 두 가지가 결합한 '하이브리드'로 (포교와 교세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탁 교수는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이다. 그의 선친이 1964년 '현대종교'를 설립하고 사이비와 유사 종교 문제를 파헤친 탁명환 전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다. 그 뒤를 이어 탁 교수도 30여 년간 신천지 등 사이비종교 문제에 천착해왔다.


신천지 등 사이비종교 온·오프라인서 활개

경남 창원시에서 포교활동 중인 신천지 교인들. 당근마켓 캡처

경남 창원시에서 포교활동 중인 신천지 교인들. 당근마켓 캡처

탁 교수는 특히 "신천지가 요즘 당근마켓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채팅, 오프라인 미팅으로 이어질 수 있어, 좋은 물건을 값싸게 올리거나 무료나눔 등을 통해 접근해 우회적으로 포교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근마켓 지역 커뮤니티에서 신천지 포교활동으로 의심할 법한 사연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주민은 9일 일반 사무관리 직원 모집 공고문과 함께 올린 글에서 "카페에서 1시간 동안 면접 봤는데, 신천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족 모임 자주 갖는지, 혼자 사는지 등 이상한 질문이 몇 가지 있었다"며 "'인재개발원에서 나왔다'고 협력업체가 요구하는 인재상이랑 일치하는지 확인차 80문항 성격검사도 했는데 소속 회사도 안 알려줬다. 이거 혹시 신종 포교 방법인가요?"라고 적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아지자 누리꾼들은 신천지를 비롯한 사이비종교 대처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모바일 채팅이나 온라인에서 걷기, 등산, 독서, MBTI 성격유형검사, 보드게임 등의 친목 만남 및 모임을 통해 정보를 얻고, 친해진 다음 종교에 거부감이 없는지 슬쩍 떠보니 조심하라"는 식이다.

"취업난·경쟁 내몰린 청년층, 사이비종교 빠지기 쉬워"

사이비종교가 득세하는 이유로 탁 교수는 현 시대가 신천지를 비롯한 사이비종교에 포섭되기 딱 좋은 여건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후반, 한국전쟁, 군사정권, 코로나 시기 등 사회적으로 혼란하거나 대안이 부재한 시기에 사이비종교가 많이 생겨났다"며 "특히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 극심한 취업난과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이 사이비종교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사이비종교에 포섭당하지 않는 딱부러진 예방법은 없다"면서도 "봉사나 문화활동 등 종교와 전혀 관계없는 활동으로 친분을 쌓으며 접근한 다음에 신이 나 하나님 얘기를 시작하면 의심해야 하고, 종교와 무관한 단체임에도 종교적 얘기를 하면 반드시 온라인 검색을 통해 어떤 단체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사이비종교에 빠진 경우에는 "워낙 유혹의 기술이 탁월해 피해자(신도)에게서 원인을 찾아서는 곤란하다"며 "그건 마치 성범죄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이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필요 전혀 없다"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사이비종교, 한류 이용 해외로 진출... 제지 못 해" 우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

고학력자나 사회지도층 유력인사들마저 사이비종교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신이라고 믿었던 교주가 죽으면 '속았다'고 깨닫고 탈교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간 헌신했던 신자들로서는 교주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나의 선택이 틀렸다는 걸 의미한다"며 "이를 가족과 지인에게 시인하는 과정이 자존감 측면에서 오히려 더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기왕 믿은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고 신격화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며 "교주의 죽음은 변화의 모멘텀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탁 교수가 활동하는 부산상담소의 경우 2012년부터 2021년까지 798명을 상담해 738명(92.5%)이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최근 1년(2011년 12월~2022년 11월)에도 37명이 상담을 받아 35명이 구제됐다. 탁 교수는 "상담자의 절대 다수는 신천지 교인이었다"며 "사이비종교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1~3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최근 사이비종교는 한류를 이용해 해외에서도 현지인과 우리 교민을 대상으로 왕성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우려했다. 그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니까 한국어 교육이나 문화활동 등을 통해, 국내에서처럼 우회적으로 접근한다"며 "문화활동이라 현지에서도 딱히 제지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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