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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 모양 달라” 부인했지만… “살인 견주 맞다” 실형 선고 내막은

입력
2023.03.18 16:00
수정
2023.04.05 15:07
0 0

경찰, 사상 초유 사망 사고견 신원 입증
증거인멸 시도 개 농장주 견주로 특정
법원도 농장주 개와 사고견 "동일" 판단
1심 유죄 뒤 쌍방 항소로 다툼 계속될 듯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사고견이 경찰의 행동반경 조사에 앞서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사고견이 경찰의 행동반경 조사에 앞서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A씨의 개와 인명사고를 일으킨 개는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27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법정. 이른바 ‘살인견’ 주인으로 지목된 A씨와 변호인은 "두 개의 동일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판사를 향해 외쳤다. A씨는 2021년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사고견 견주로 특정돼 재판에 넘겨졌다. 사상 유례가 없었던 ‘개 신원 대조’ 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가 입양해 기르던 개와 사고견의 동일성이 인정된다”며, A씨의 관리 소홀 책임을 물은 것이다. 법원은 어떤 근거로 두 개가 동일하다고 판단했을까.

대형견 습격에 산책 나온 50대 여성 목숨 잃어


50대 여성이 개에 물려 숨진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야산에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이종구 기자

50대 여성이 개에 물려 숨진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야산에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이종구 기자

17일 경찰과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개 물림 사건은 2021년 5월 22일 오후 3시쯤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야산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성 B(59)씨를 발견했다. B씨는 목 뒷덜미 등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몸 곳곳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B씨는 과다출혈로 숨졌다.

백주대낮에 행인을 숨지게 한 범인은 놀랍게도 개였다. 경찰이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몸집이 큰 개 한 마리가 B씨에게 달려들어 3분가량 집요하게 목 등을 물었다. 발버둥 치던 B씨는 끝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B씨는 이날 지인이 운영하는 공장에 놀러 와 홀로 산책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마취 총을 쏴서 포획한 개는 길이 150㎝, 체중 25㎏에 달하는 성견이었다. 품종은 사모예드와 풍산개의 믹스견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누군가의 관리 소홀로 목줄이 풀린 개가 사람을 습격해 숨지게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고 견주를 찾는 데 집중했다.

거짓말탐지기도 피했던 개 농장주인 지목

경기 남양주시 야산 입구에서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개(왼쪽)와 개의 보호자를 찾는 전단지. 연합뉴스

경기 남양주시 야산 입구에서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개(왼쪽)와 개의 보호자를 찾는 전단지. 연합뉴스

한동안 진척이 없던 경찰 수사는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서야 반전을 이뤘다. 경찰은 2021년 7월 19일 A(69)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수사 초기 견주로 의심받았던 사고현장 인근 개 사육장의 주인이었다. 그는 “사고견은 내 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수차례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특이 반응이 없어 용의선상에서 비켜 있었다. 경찰은 “A씨가 1년 전에 사고를 낸 대형견과 비슷한 유기견을 분양받은 뒤 키우고 있지 않다”는 제보를 받은 뒤, 주변 CCTV 분석을 통해 A씨를 견주로 특정했다.

속도가 붙던 경찰 수사는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경찰이 A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A씨의 입양견이 사고 개라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A씨가 기르던 개와 사망사고를 일으킨 개가 동일하다고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경찰 수사 사상 유례가 없던 난제였다. 유전자 감식 등 개 신원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데다, 국립수사과학연구원도 관련 기능이 전무해 보강수사는 더뎠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 물림 사망사고’는 ‘개 신원 대조 사건’으로 불렸다.

경찰은 A씨 주변인물을 다시 조사하던 중 추가 증거를 찾아냈다. A씨가 농장 개들을 공급받던 동네 주민 C씨에게 사고견 입양 관련 증거인멸을 부탁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손에 쥔 것이다. C씨는 A씨의 증거인멸 시도를 증거로 남기기 위해 통화내용을 녹음했다. 실제로 A씨는 C씨 등을 통해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분양받은 유기견 40여 마리를 농장에서 불법 사육해 왔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사건 발생 1년 만인 지난해 5월 A씨를 업무상과실치사와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C씨도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 “두 개 동일성 인정” 실형 선고

119 대원들이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대형견을 마취총으로 쏴 포획하고 있다. 남양주소방서 제공

119 대원들이 50대 여성을 물어 숨지게 한 대형견을 마취총으로 쏴 포획하고 있다. 남양주소방서 제공

개 신원을 다투는 재판은 유례가 없는 탓에, A씨와 검찰의 공방은 뜨거웠다. A씨 변호인은 “A씨의 입양견과 사고견의 동일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A씨가 입양한 개는 코가 붉었고, 사고견은 코가 검은색이다. 안면 생김새도 달랐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법원은 그러나 검찰 손을 들어줬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1단독 정혜원 판사는 지난해 11월 10일 검찰이 제기한 업무상과실치사, 수의사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4개 혐의를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정 판사는 “A씨가 입양해 키우던 개가 농장 밖으로 나와 피해자를 물어 사망하게 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밝혔다.

실형이 선고된 데에는 증거인멸 정황이 결정적이었다. A씨는 사건발생 직후 C씨에게 연락해 “경찰 등에서 연락이 오면 그 개(입양견)는 병들어 죽었고 사체는 태워 없앴다고 진술해라, 차량의 블랙박스를 없애라”고 지시했다. 자신이 입양한 개의 흔적을 없애려는 시도였다. 실제로 C씨는 자신의 농장 내부가 찍힌 트럭차량 블랙박스 영상기록을 훼손했고, 그 대가로 A씨에게 현금 32만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견의 행동도 A씨가 주인이라고 가리켰다. CCTV 영상에서 사고견은 다른 들개들과 달리 A씨의 개 농장 주변만을 맴돌았다. 목 부위에는 최근까지 목줄을 착용한 흔적도 발견됐다. 정 판사는 “사고견은 들개라기보다는 최근까지 주인이 관리했던 개로 보인다”며 “이 사건 기록과 각 사진, 전문가 소견을 종합해보면, 분양견은 사고견과 두상, 털의 특성(직모), 귀의 길이, 윤곽선, 크기, 수염돌기의 개수와 위치, 돌출된 수염의 패턴, 코 모양 등이 매우 유사하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씨와 검사 측이 모두 항소해 이달 7일부터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수사당국 요청에 따라 남양주시가 관리 보관해 오던 사고견은 지난 3일 동물권보호단체에 인계됐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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