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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호이콴 '오스카 수상'에 세계가 열광하는데… 정작 베트남은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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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호이콴 '오스카 수상'에 세계가 열광하는데… 정작 베트남은 '조용'

입력
2023.03.16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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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베트남계 수상에도 언론은 잠잠
화교 출신인 탓? 보트피플 언급 탓?

배우 키호이콴이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중 남우조연상을 받자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활짝 웃고 있다. 베벌리힐스=로이터 연합뉴스

배우 키호이콴이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중 남우조연상을 받자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활짝 웃고 있다. 베벌리힐스=로이터 연합뉴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백인 일색인 ‘화이트 오스카’를 뒤집은 두 아시아계 배우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키호이콴(51)의 고향 베트남은 조용하기만 하다. 자국 출신 배우가 국제 무대에서 트로피를 거머쥘 때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는 걸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이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중국인" 선 그어

콴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통해 “저는 오랫동안 난민캠프에 있었다. 보트를 타고 긴 여정을 거쳐 이렇게 큰 무대까지 왔다”고 했다. 자신의 뿌리(베트남)와 미국 입국 과정을 공개석상에서 밝힌 셈이다.

16일까지 닷새가 흘렀으나, 베트남 언론에 그의 이름이 오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아시아계 배우의 오스카 수상은 1985년 이후 두 번째인 데다, 베트남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을 끌 법한데 현지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대부분의 언론은 ‘콴’이라는 배우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는 짧은 기사 한두 개만 내보냈다. 특히 그가 보트피플이었다는 사실을 소개한 매체는 거의 없다. 베트남 유력 매체인 VN익스프레스는 그를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라고만 지칭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니얼 콴(맨 아래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감독과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 키호이콴, 제임스 홍, 제작자 조너선 왕, 배우 량쯔충, 스테파니 수가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7관왕에 오른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환호하고 있다. 베벌리힐스=AFP 연합뉴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니얼 콴(맨 아래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감독과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 키호이콴, 제임스 홍, 제작자 조너선 왕, 배우 량쯔충, 스테파니 수가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7관왕에 오른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환호하고 있다. 베벌리힐스=AFP 연합뉴스

그나마 콴을 소개한 보도도 화교 출신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1971년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태어난 건 맞지만, 베트남 핏줄이 아닌 중국계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일간 탄니엔은 “1971년 호찌민 중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갔다”고 전했다. 현지 신문인 뚜오이제는 “홍콩 출신 어머니와 중국 본토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정부도 별다른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그나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VN익스프레스 영어 버전만 콴의 수상 소감을 짧게 언급하며 베트남 태생(Vietnamese-born)이라고 소개했다.

여전히 불편한 '보트피플' 역사

이같은 침묵은 베트남 전쟁의 유산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1970~1980년대 베트남전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보트피플은 여전히 베트남에서는 ‘금기’다. 1975년 월맹군에 사이공이 함락된 이후 150만 명 이상이 보트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했다. ‘월남의 자본주의자 계층’으로 찍혀 사상 재교육 대상이 된 화교도 상당수였다.

목숨을 걸고 작은 보트에 몸을 실어 바다를 건너는 베트남 해상 난민 '보트피플'의 모습. 위키피디아 캡처

목숨을 걸고 작은 보트에 몸을 실어 바다를 건너는 베트남 해상 난민 '보트피플'의 모습. 위키피디아 캡처

여섯 살 때 베트남을 떠난 콴은 이후 말레이시아, 홍콩 피란민수용소를 거쳐 미국 땅을 밟았다. 이 같은 사례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작은 고무보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승선한 탓에 적게는 20만 명, 많게는 40만 명이 망망대해에서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 BBC방송은 “보트피플은 베트남의 가장 어두운 현대사 중 하나”라며 “당시 미국을 물리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주도한 (베트남) 집권 공산당으로선 잊고 싶은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베트남 입장에서 보면, 콴이 전 세계인 앞에서 이처럼 불편한 역사의 조각을 다시 들춰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베트남 사회학자인 이계선 하노이 탕롱대 한국어학과장은 “50년 가까이 지났지만 보트피플은 여전히 베트남에서 민감한 주제”라며 “북베트남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과거를 묻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트피플 출신인 응우옌반투안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대 약대 교수는 BBC에 “(지난해) 베트남계 미국인 여가수 싱기타 카우르가 그래미상을 수상했을 때 베트남 언론이 그를 ‘베트남인’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한 것과 대조적”이라며 “매체들이 콴의 보트피플 배경을 무시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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