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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총선의 추억, 민주당은 어떻게 승리했는가?

입력
2023.03.18 10: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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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자기 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2024년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있다. 지난 10일 여론조사 업체 한국갤럽 발표에 의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38%, 민주당은 32%다. 국힘의힘이 6%포인트 앞선다. 현재 기준으로 국민의힘이 더 유리하고, 민주당이 불리하다.

1987년 직선제 실시 이후, 9번의 총선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효과적인 선거 캠페인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킨 경우가 있었다. 국민의힘은 2012년 총선이, 민주당은 2016년 총선이 대표적이다. 2016년 총선, 민주당의 총선 승리 요인을 분석해보자. 2016년 총선 결과는 이후 ‘탄핵국면’으로도 연결됐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복기(復棋)해 두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다.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24일 5개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를 '옥새 파동'이라 일컫는다. 뉴시스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24일 5개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를 '옥새 파동'이라 일컫는다. 뉴시스


패색이 짙던 2016년 총선, 민주당이 승리했던 네 가지 요인

2016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뜻밖의 승리를 거둔다. 네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보수의 분열이다. 둘째, 2030세대의 투표율 급상승이다. 셋째, 2030세대의 민주당 집중 지지다. 넷째, 문재인ㆍ김종인 투톱 체제의 과감한 중도확장 전략이었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보수의 분열이다. 2016년 4월, 총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2015년부터 보수의 분열을 촉발하는 네 가지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①2015년 여름,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 사건이 터졌다. ②2015년 가을,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다. ③2016년 연초에 ‘진박(진실한 친박근혜) 감별’ 논란이 벌어진다. ④2016년 연초에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이 터진다. 네 가지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상징했다. 보수 유권자 내에서도 이탈층이 발생했다. 특히 부산ㆍ울산ㆍ경남(부울경) 지역이 그랬다.

한국 보수는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권위주의와 투쟁했던’ 보수다.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를 지지했던’ 보수다. 전자는 부울경 보수다. 후자는 대구-경북 보수다. 부울경 지역은 1990년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의 3당 합당 이전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었다.

4ㆍ19혁명의 발단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박정희 암살의 계기는 1979년 부마항쟁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한 축은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에 분노했던 부산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였다. 모두 부울경 지역과 관련됐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선수는 ‘꼬마 민주당’으로 출마했다. 부산 시의원으로 나왔다. 부산은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었기 때문이다.

①유승민 찍어내기 ②국정교과서 추진 ③진박 감별 ④김무성 옥새 파동을 겪으며 권위주의와 투쟁했던 부울경 보수가 부분적으로 이탈한다. 보수의 분열이다. 1990년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하던 ‘3당 합당 구도’의 부분적 와해가 일어났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왼쪽) 전 의원과 문재인 당시 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왼쪽) 전 의원과 문재인 당시 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12,2016년 총선 연령별 투표율 및 격차. 강준구 기자

2012,2016년 총선 연령별 투표율 및 격차. 강준구 기자


‘종이 짱돌’을 든 2030세대 - 총선의 전체 투표율을 끌어올리다

둘째, 2030세대의 투표율 급상승이다.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2030세대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2030세대의 투표율 상승으로 연결된다. 2016년 총선에서, 2030세대의 유권자 비율 합계는 34%였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 넘는 규모였다. 2030세대는 평소에는 무당파 성향을 보이지만, 이슈에 민감하고, 3분의 1이 넘는 규모였기에, 총선의 승패를 좌우하는 ‘스윙 보터’(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못한 지지자)였다. 2030세대는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며 분개했다. ‘종이 짱돌'을 들고, 투표장으로 몰려갔다.

2030세대의 투표율 급상승은 2012년 총선과 2016년 총선을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2012년 19대 총선의 전체 투표율은 54.2%, 2016년 20대 총선의 전체 투표율은 58.0%였다. 20대 총선 투표율은 이전에 비해 3.8%포인트 증가했다. 어느 세대에서 투표율 상승 폭이 가장 컸을까? '2012, 2016년 총선 연령별 투표율 및 격차' 표를 보면 ①20대 후반(11.9%) ②20대 초반(9.9%) ③30대 초반(7.1%) 순으로 투표율 상승폭이 컸다.

흥미로운 것은 ④30대 후반(2.9% ) ⑤40대(1.7%) ⑥50대(-1.6%)는 투표율 상승폭이 평균 이하다. 심지어 50대는 투표율이 하락했다.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50대는 투표장에 덜 동원됐다. 보수 유권자들은 투표 불참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 항의했다.

2016년 총선 이틀 전 ‘지역구 정당후보’ 지지율. 강준구 기자

2016년 총선 이틀 전 ‘지역구 정당후보’ 지지율. 강준구 기자

셋째, 2030세대의 민주당 집중 지지다. 2030세대의 실제 투표 행태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다. ‘2016년 총선 이틀 전 지역구 정당후보 지지율’ 표 위의 결과는 4·13 총선 이틀 전에 실시한 4월 11일 조사다.

20대의 경우 새누리당 20%, 민주당 35%, 국민의당 5%, 정의당 3%였다. 표 위의 결과에는 ①기타 ②무소속 ③모름ㆍ무응답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①+②+③의 합계가 20대 37%, 30대는 28%다. 그런데 실제 투표에서는 이들이 분모에서 제외된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은 득표율에도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지지층 합계를 100%로 간주하고, ‘지역구 정당후보’의 득표율을 재환산하면 ‘2016년 총선 이틀 전 지역구 정당후보 지지율’ 표 아래 결과와 같다. 20대의 경우 새누리당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31.7%, 민주당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55.6%다. 민주당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새누리당에 비해 약 1.8배 수준이다. 30대의 경우 새누리당 지역구 후보는 28.8%, 민주당 지역구 후보는 54.8%다. 민주당 후보 득표율이 약 1.9배 더 많다. 2030세대는 투표율 증가폭도 가장 높았고, 민주당 집중 지지도 가장 강력했다.

넷째, 문재인ㆍ김종인 투톱 체제의 과감한 중도확장 전략이 먹혔다. 당시 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의원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탈당했다. 호남쪽 의원들이 대규모로 동반 탈당했다. 민주당은 호남 의석의 상당 부분을 잃을 상황이었다. 100석도 위태로웠다. 문 대표는 특단의 대책을 추진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도왔던 김종인을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대표는 문재인, 비대위원장은 김종인이었다. 문재인ㆍ김종인 투톱은 전체 콘셉트와 공천 모두에서 중도 확장에 성공했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총재와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전격 회동을 갖고 3당 합당과 함께 민주자유당 창당을 선언했다(위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총재와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전격 회동을 갖고 3당 합당과 함께 민주자유당 창당을 선언했다(위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문재인ㆍ김종인 투톱 체제 - 중도확장 캠페인의 정석

세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①국민경제상황실을 새로 만들어 실장과 대변인을 선임했다. 상황실장은 홍익대 경제학 교수 출신인 최운열 의원이, 대변인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맡았다. 김종인ㆍ최운열ㆍ주진형 라인 업은 모두 ‘경제통’이었다. 인물에서도 정책에서도 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②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의 상징적인 몇 명을 공천에서 컷오프했다. 이해찬, 정청래, 강기정, 전병헌 의원이 컷오프로 날아갔다. 컷오프 자체가 큰 이슈가 됐다. ③민주당의 약점 보완을 위해 ‘민주당스럽지 않은’ 사람을 공천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양향자, 박근혜 정부 비서관 출신 조응천의 공천이 가장 상징적이었다. 국정원 출신 김병기, 게임회사 사장 출신 김병관도 해당한다. 민주당의 변화와 통합 의지를 보여주는 공천이었다. 다른 한편, 전통 지지층에 화답하기 위해 ‘민주당스러운’ 공천도 병행했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TV토론 스타 이철희가 대표적이다. 한 축은 약점 보완을, 한 축은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 양 날개를 모두 챙겼다.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은 25년간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프레임이었다. 정치인 노무현이 고군분투했던 것도 3당 합당 구도와의 투쟁이었다. 2016년 총선은 3당 합당구도가 부분적으로 와해된 선거였다. 4가지 요건의 결합으로 가능했다. ①보수의 대규모 분열 ②2030세대의 높은 투표율 ③2030세대의 민주당 집중 지지 ④민주당 지도부의 과감한 중도확장이 맞물렸다. 2016년 총선 결과는 민주당 123석,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 122석이었다. 민주당은 딱 1석을 이겼다.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네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을까? 네 가지 요건 중에서 한 가지라도 충족되지 못할 경우, 민주당의 총선 승리는 요원할 것이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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