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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여성 탄압으로 버티는 정권...맞서 싸우는 청년들이 이란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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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여성 탄압으로 버티는 정권...맞서 싸우는 청년들이 이란의 미래다"

입력
2023.03.16 04:30
수정
2023.03.16 05:09
17면
0 0

이란 반정부 시위, 17일로 6개월
재스민 램지 이란인권센터 부국장 인터뷰
"히잡 거부 젊은 여성들, 정권의 가장 큰 위협
목숨 걸고 싸우는 '이란 미래' 여성들과 연대를"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한 지 40일째 되는 지난해 10월 26일 반정부 시위대가 아미니의 고향인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케즈=AFP 연합뉴스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한 지 40일째 되는 지난해 10월 26일 반정부 시위대가 아미니의 고향인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케즈=AFP 연합뉴스

여성은 만 9세가 되면 상반신을 '히잡'으로 덮어 가려야 한다. 히잡을 벗거나 제대로 쓰지 않으면 경찰에 체포된다. 사적 복수를 당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슬람공화국 이란의 현주소다.

지난해 9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머리카락이 보이게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 의문사했다. 기득권 세력의 배만 불리는 억압적 신정 독재에 대한 이란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남성들도 가세했다. 정부의 유혈 진압으로 최소 530명이 숨졌다.

반정부 시위가 17일(현지시간)로 6개월을 맞는다. 잔혹한 탄압으로 기세는 다소 꺾였지만, 시위는 한 번도 멈춘 적 없다. 한국일보는 재스민 램지 이란인권센터(CHRI) 부국장을 이메일로 만났다. 그는 "히잡이 상징하는 여성 억압은 이슬람 정권을 지탱하는 기둥이기에 정부가 이번 시위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이번 시위를 여기서 끝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란은 인구의 60% 이상이 30세 미만인 나라로, 그는 "깨우치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국가의 미래"라고도 했다.


재스민 램지 이란인권센터 부국장. 본인 제공

재스민 램지 이란인권센터 부국장. 본인 제공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규모 시위… "현재진행형"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센터는 2008년 출범한 비영리 시민사회단체로, 이란 내 인권활동가들과 연대해 이란의 인권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린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때 이란에서 태어난 램지 부국장은 뉴욕에서 이란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그는 "이란에 가족이 있고, 나는 그들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면서 "정부가 해외의 이란 활동가들을 공격하고 있어 개인정보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시위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들어선 이슬람공화국이 맞닥뜨린 최대 위기다. 체포된 시위자들에게 자행된 성폭력·고문에도 시위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정부가 강요된 자백을 명분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시위 참여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4명을 처형하면서 시위가 다소 움츠러들었다.

램지 부국장은 "시위와 사회운동은 (조수처럼) 밀려 왔다 밀려 갔다 하는 법"이라며 "이란 시민사회는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단 한 명의 당국자도 책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위를 멈출 수 없다는 게 이란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 최근 거리에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수도 테헤란에선 밤마다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시위 구호가 울려 퍼진다.


지난해 10월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과 이란 국기를 내건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이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는 연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지난해 10월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과 이란 국기를 내건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이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는 연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히잡이 왜? "이슬람 독재정권 지탱하는 기둥"

이슬람공화국은 1983년 샤리아(이슬람율법)를 근거로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다. 이란 인권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는 히잡을 '베를린 장벽'에 비유한 바 있다. 히잡이라는 장벽을 허물면 (동·서독의 분단이 종식됐듯) 이슬람공화국도 무너질 것이란 얘기다. 램지 부국장은 "이슬람공화국은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버리면 '독립'을 얻게 될 것을 너무 잘 안다"며 "권력을 잡은 여성은 '늙은 남성'이 지배하는 이슬람 정권에 심각한 도전"이라고 했다.

이란에서 여성은 '2등 국민'이다. 여성은 최고지도자는 물론 대통령, 판사가 될 수 없다. 기혼 여성은 남편 허락 없이 해외여행을 할 수 없고, 상속도 남자 형제의 절반만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차별적 시스템의 수혜자는 독재정권과 소수의 기득권 남성들로, 이들은 동등한 권리를 달라는 여성들의 요구에 폭력으로 반응했다. 이번 시위를 둘러싼 시민과 정부의 충돌은 폭력적 억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요즘 젊은 여성들은 이란 독재정권의 최대 위협이다. 신정 정치를 가장 강력히 비판하고 사회 개혁을 가장 뜨겁게 열망한다. 목숨을 걸고 반정부 시위 최전선에 선 것도 이들이다. 램지 부국장은 "이란 여성들은 중동에서도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독가스 테러'가 여학생들을 노리는 건 그래서다. 램지 부국장은 "여성의 독립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여성의 교육 접근권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란 인권단체 '이란인권운동가들(HRAI)'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부터 이란 학교 290여 곳에서 여학생 7,000여 명이 독극물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의 목숨과 인권은 결국 국제사회에 달렸다. 램지 부국장은 "독재정권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란의 미래를 좌우할 여성, 청년들과 연대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는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는 정부를 원한다는 우리의 당연한 요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하면서 "이란 여성들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날을 위해, 나를 포함한 이란인들도 함께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교실에서 히잡을 벗고 이슬람 지도자의 초상화에 손가락 욕을 하고 있는 이란 여고생들. 트위터 캡처

교실에서 히잡을 벗고 이슬람 지도자의 초상화에 손가락 욕을 하고 있는 이란 여고생들. 트위터 캡처


램지 부국장은 누구?

재스민 램지 이란인권센터 부국장은 이란의 개혁을 위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중 한 명이다. 그의 부모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성공의 주역인 이른바 '혁명 1세대'로, 공산당(투데당) 당원이었다. 이슬람혁명은 이슬람주의자들뿐 아니라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자, 대학생, 지식인까지 왕정 철폐 기치 아래 함께 이뤄낸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허울뿐인 혁명이었음이 드러났다. 자유를 꿈꿨던 램지 부국장의 부모는 미완의 혁명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램지 부국장은 "어머니는 이슬람혁명 4년 만에 히잡 착용이 강제된 이후 벌어진 첫 시위를 조직했다"며 "우리 가족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쳐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이 지금의 램지 부국장을 만들었다. 워싱턴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한 데 이어 2008년 뉴욕에 설립된 이란인권센터에서 이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최근 이란인권센터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39곳과 이란인 5만6,000여 명이 이름을 올린 국제 청원을 조직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에 보냈다. 유럽 각국 정부가 이란 대사를 초치해 여성 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청원의 골자다.
여학생 대상 '독가스 테러'를 이란 정부가 석 달 넘게 방치하자, 각국 인권변호사 20명은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 유니세프, 적십자에 해당 사건의 조사를 촉구하는 긴급 서한을 보냈다. 독가스 테러를 제일 먼저 국제사회에 알린 게 이란인권센터였다. 램지 부국장은 "(정권에 장악된) 이란 국영언론은 여학생들이 공격 받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오히려 이 소식을 전한 이란인권센터에 분노했다"고 전했다.
램지 부국장은 "이란인권센터와 내가 하는 일은 이란 내 목소리와 행동을 크게 키우고, 이란인들이 당하는 인권 유린을 기록하고 항의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이란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램지 부국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화폐 25센트에 얼굴이 새겨진 인권운동가 마야 안젤루가 쓴 문구가 내걸려 있다. "진실은, 모두가 자유로울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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