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상사로부터 연차 사용을 반려당했다. 승인된 연차를 두고 "내일 기분에 따라 결정하겠다"며 제동을 걸더니,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이다. A씨가 반발하자 상사는 안마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더 다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안마를 했지만 상사는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꼬투리를 잡았다. 상사는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며 다시 안마를 시켰는데, A씨는 수치심 때문에 결국 연차 사용을 포기했다.
수많은 직장인이 A씨처럼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차를 법으로 정해진 것보다 적게 주거나, 휴식 대신 주어지는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한가할 때 쉬자"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 근로시간 장기화로 이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휴가 갑질 제보 중 절반이 '연차휴가 제한'... 장기휴가 현실성 X"
12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휴가 관련 갑질 제보 229건 가운데 96건(41.9%)이 '연차휴가 제한'에 관한 내용이었다. 법에 보장된 연차휴가를 전부 주지 않는 식의 '위법한 연차휴가 부여'(43건·18.8%)와 '연차수당 미지급'(30건·13.1%) 관련 제보가 많았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조사도 결과는 비슷했다. 2020년 연차소진율은 71.6%였고, 연차 사용에 제약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5.7%였다. 2018년(16.5%)과 2019년(21.9%)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뚜렷했다.
직장갑질119는 지금도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근로시간 개편은 장시간 근로로 이어질 거라 우려했다. 현재 정부는 연장근로 시간(현행 1주 최대 12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바쁠 때 연장근로 시간을 늘리고, 이를 저축했다가 한가할 때 휴가로 활용하면 주 4일 근무나 장기휴가 등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119는 "한 달 휴가를 가려면 연장근로를 176시간 해야 하는데, 이 경우 하루에 12시간씩 한 달을 일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연장근로를 한다 해도) 대다수 노동자가 연차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한 달 장기휴가를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즉 일만 많이 하고 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정부안은 노동자 건강권과 일·생활 균형을 훼손해 과로사회, 야근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포괄임금제 금지와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를 통한 '공짜 야근' 근절, 근로자 대표제를 입법화해 노동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