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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3·1절 기념사, 이승만과 가장 닮았다 [문지방]

입력
2023.03.12 13:00
수정
2023.03.12 18:45
0 0

역대 대통령들의 3·1절 기념사 분석
尹 대통령, 3·1정신 설명하며 '자유' 언급
이 전 대통령도 연설당 '자유' 9.4번 등장
"두 대통령의 이분법적 세계관 닮아"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1일 '제104주년 3·1절 기념사' 중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두고두고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취임 후 처음이라 의미를 잔뜩 담을 법한데도 일단 분량이 너무 적었습니다. A4용지 1장(약 1,300자)을 간신히 채울 만한 5분짜리 연설이었는데요. 윤 대통령의 지난달 27일 연세대 졸업식 축사(약 2,000자)보다도 짧았습니다.

내용도 특이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윤 대통령은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을 뿐 과거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죠.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첫해 3·1절 기념사와 뚜렷이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이후 닷새 뒤 정부는 일본 전범기업의 책임을 배제한 채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을 발표했습니다. 그 여진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한국일보는 3·1절 기념사에 주목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역대 기념사와 무엇이 다른지 정밀 분석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국정철학을 파악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이기 때문이죠. 윤 대통령의 사고를 이해하면 강제동원 해법뿐 아니라 이후 외교의 방향까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1949년 이후 역대 대통령 14 명(황교안 권한대행 포함)의 3·1절 기념사를 모두 뜯어봤습니다. 이지원 대림대 교수의 기존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본지가 추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3·1절 기념사에서 어떤 단어를 유독 강조했는지 △3·1운동의 정신을 설명하려고 언급한 표현이나 키워드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의 3·1절 연설과 가장 비슷한 패턴을 보인 건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습니다.

윤 대통령, "자유 가치 공유하는 국가와의 협력이 3·1정신"

우선,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살펴보죠. '자유'를 8번 언급했습니다. '우리'(17회), '독립'(10회) 다음으로 많았죠. 짧은 연설이었음을 감안하면 '자유'가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고 해석할 만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키워드 비교. 글씨가 클수록 기념사에 더 많이 등장한 표현이다. 그래픽=송정근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키워드 비교. 글씨가 클수록 기념사에 더 많이 등장한 표현이다. 그래픽=송정근기자

윤 대통령은 특히 3·1절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자유'를 선택했습니다.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언급한 뒤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 협력해야 한다.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그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죠. 3·1운동의 정신이란 자유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 협력하는 것이라는 말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이 연설에서 '자유'를 강조한 건 처음이 아니죠.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35번이나 언급했고, 9월 미국 뉴욕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21번 강조했습니다. 자유는 윤석열 정부의 대내외 정책 기조를 꿰뚫는 핵심어인 셈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와 비교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살펴볼까요. 그도 틈날 때마다 '자유'의 가치를 설파했죠. 집권 기간(1949~1960년) 중 총 14번의 3·1절 기념사(해외·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기념사 2건 포함)를 발표했는데 매번 연설할 때마다 ‘자유’라는 단어가 평균 9.4번 등장했습니다. 자유보다 많이 쓰인 건 우리(52.7회), 세계(13.5회), 나라(12.2회) 등 가치중립적인 단어들이었죠.

이 전 대통령은 3·1정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우리(7회), 발휘(4회) 등과 함께 자유(2회)를 썼습니다. 그 역시 3·1정신의 핵심이 자유라고 본 것이죠. 반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다른 대통령들은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3·1정신을 설명하며 자유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시민'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 것도 윤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통점입니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지난해 취임사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세계 시민이라는 표현을 수차례 썼죠. 주로 세계 시민과 연대해 자유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취지가 담겼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이 막 발발한 1950년 7월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군 병사들은 미국인으로 살았지만 세계 시민으로 그들의 생명을 바쳤다"고 했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기에 앞서 세계 시민이기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야 했다는 헌사인 셈이죠.

"국제 정세의 격변기…자유 진영 우방 챙기는 게 안전한 선택"

그러면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의 3·1절 연설은 왜 이토록 닮은 것일까요. 우선 두 사람의 세계관이 겹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세계를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죠.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두 지도자 모두 세계를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권위주의 진영으로 나눠 본다”면서 “이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윤 대통령도 북한을 공존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반공을 국시(국가정책의 기본 방침)로 내걸기는 했지만 북한과 7·4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등 민족 간 화합 노력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겁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와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1950년대와 현재가 여전히 비슷한 영향도 있습니다. 이지원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의 큰 패러다임이 광복 이후 지금껏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자유'라는 용어에 반공이라는 정치적 함의를 담아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교수는 "과거사를 잊지 말자고 하는 건 과거에 집착하자는 뜻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교훈을 찾자는 의미"라면서 '협력의 대상' 일본의 의미를 한껏 치켜세운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판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윤석열(왼쪽 사진부터)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왼쪽 사진부터)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물론 윤 대통령이 미국, 일본 등 자유 진영 국가들과 안보 협력을 강조하고 세계 시민으로서 의무를 재차 언급하는 걸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신냉전'으로 불릴 만큼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세계 정세의 격변기에서는 우리와 가까운 나라와 협력하는 게 가장 안전한 대응법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센터장도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를 우리 힘만으로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그 추세 속에서 국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외교 문제를 너무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건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정 센터장은 “향후 정세가 바뀌면 북핵 해법 등을 찾기 위해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만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멀리 내다본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마 교수는 “일제 강제동원 해법을 내놓는 과정 등을 보면 외교 사안을 세밀하고, 적절히 관리하는 데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안보 협력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중요한 외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쓰듯 너무 서두르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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