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주 고객인 극장서 50대 티켓 구매 1위...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올콘" "피케팅" Z세대처럼 응원봉 들고 아이돌 소비
베이비부머 주축 문화, 소비 시장서 존재감 급부상
20, 30대가 주 고객인 극장에 50대 관객이 티켓 구매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지각변동의 진원지는 임영웅 공연 실황 등을 담은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멀티플렉스 체인 CGV에 따르면 1~7일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본 관객은 50대(36.4%)다. CGV 관계자는 "50대 관객이 20대 관객(10.8%)보다 세 배 이상 극장을 많이 찾았다"며 "극장에서 50대 이상 관객 비중이 이렇게 높은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간 MZ세대에 가려졌지만 탄탄한 자산으로 활기찬 인생을 즐기는 '오팔세대'(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가 문화 소비의 큰손으로 떠올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오팔세대는 50대에서 70대를 아우른다.
'영웅시대' 푸른빛으로 꽉 찬 상영관
5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CGV 6층 스크린엑스관. 적막을 깨고 상영관 중앙과 그 양옆 벽에 펼쳐진 스크린에서 '런던 보이' 무대 영상이 뜨자 객석에선 "영웅아 사랑해"란 외침이 터졌다. 하나같이 푸른색(임영웅 팬덤 상징색) 티셔츠를 차려 입은 관객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임영웅의 열창에 환호했다. 응원봉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컴컴했던 상영관을 단숨에 푸른 은하수처럼 물들였다. 일부 관객은 자리에서 아예 일어나 응원봉을 흔들며 임영웅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임 더 히어로' 응원봉 상영회는 K팝 아이돌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3만 원으로 책정된 적지 않은 푯값에도 440여 객석엔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이날 극장에서 만난 관객 상당수는 오팔세대였다. 이 영화가 개봉한 1일부터 매일 한 편씩 'n차 관람'을 한 60대 관객도 있었다. 김미애(55)씨는 "딸, 아들 등 식구 5, 6명이 예매에 뛰어들었고 결국 사위가 성공했다"며 "임영웅이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바램'을 부를 때부터 반해 '올콘'(모든 공연을 봤다는 뜻)했다"고 말했다.
오팔세대의 입에선 피가 튀길 정도로 예매가 힘들다는 뜻으로 MZ세대가 주로 쓰는 용어인 '피케팅'이란 말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임영웅 팬카페인 영웅시대에서 '보그'란 아이디로 활동하는 김모(66)씨는 "두 딸과 함께 예매했는데 완전 '피케팅'이었고 공연 때보다 더 예매하기 어려웠다"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임영웅 공연 상영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썰렁해진 극장에 영화와 담을 쌓은 관객까지 불러들였다. 1일 홍대CGV에서 만난 이인순(71)씨는 '아임 더 히어로'를 보기 위해 결혼 후 46년 만에 처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김씨는 "큰아들 나이가 마흔다섯인데 결혼 후 살기 바빠 극장에 한 번도 오지 못했다"며 "집에서 TV로 임영웅 공연을 봤는데 큰 화면에서 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오팔세대의 열정에 극장이 축제 현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감" 윤여정이 IT 광고 모델된 배경
전문가들은 산업화의 주역답게 오팔세대의 특성을 ①도전적이며 ②경제성장률 10%대 시대를 지나며 쌓은 자산으로 적극적으로 여가를 즐기고 ③밀레니얼 세대 자녀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유행에도 발빠르다고 본다. 임영웅과 송가인 등 젊은 가수를 직접 발굴해 트로트 열풍을 주도하고, '보헤미안 랩소디'(2018) 싱어롱 상영에서 발을 구르며 록밴드 퀸의 히트곡을 떼창하는 중장년들이 등장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쇼핑이 크게 늘어나면서 오팔세대의 영향력이 부쩍 커지자 패션 온라인 플랫폼(지그재그)과 IT기업(KT)은 Z세대가 아닌 윤여정(75)을 모델로 썼다. 공연계도 오팔세대를 잡기 위해 문희경(58) 등 실제 오팔세대 배우들이 수다 떨 듯 삶을 노래로 풀어내는 뮤지컬 '다시, 봄'(15일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해 심신, 이덕진(56) 등이 출연하는 콘서트 '어떤 가요'(28일 마포아트센터)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통해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를 주축으로 한 오팔세대를 '신중년'의 등장으로 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팔세대는 유튜브를 통해 세상과 쉽게 소통하며 할머니나 할아버지란 관계적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스스로를 조금 더 나이 든 3040이라 생각하며 라이프스타일도 젊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김헌식 미래학회 이사는 "오팔세대는 그들이 원하는 스타를 직접 만들어 내 즐기고 있는데 정작 방송사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 노년 세대와 달리 양적 질적 변화가 큰 만큼 '사딸라 아저씨'(김영철)처럼 젊은 세대와 소통의 물꼬를 띄워줄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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