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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금수저 부부에 대한 화가의 은밀한 복수

입력
2023.03.09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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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부부 초상화에 숨겨 놓은 성적 조롱

게인즈버러, '앤드루스 부부', 1750년, 캔버스에 유채, 69.8㎝ × 119.4㎝, 내셔널 갤러리, 영국 런던

게인즈버러, '앤드루스 부부', 1750년, 캔버스에 유채, 69.8㎝ × 119.4㎝, 내셔널 갤러리, 영국 런던

아름다운 참나무가 있는 전형적인 영국 시골 풍경 속에 신혼부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27년, 영국 서퍽주의 주도 입스위치 전시회에서 이 무명의 그림이 비평가, 미술사학자의 호평을 받으면서 입소문을 탔다. 그림 속 부부의 후손이 대대로 물려받아 200년간 다락방에 먼지가 쌓인 채로 보관하다가 마침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지금은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두 사람은 로버트 앤드루스와 그의 아내 프랜시스 카터다. 최근에 결혼한 젊은 금수저 부부는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기념하려고 초상화를 의뢰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그들이 얼마나 부유한지 보여주려는 듯 비옥하고 광대한 소유지가 펼쳐져 있다. 앤드루스 부부는 당시 영국 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의상을 입고 있다. 앤드루스는 18세기 영국의 젠트리 계층 지주다. 그는 사냥 복장을 하고 오른팔에는 엽총을 끼고 있다. 이 모습은 그가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유산계급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사냥은 귀족이나 부유층의 취미 활동이었다. 그의 아내는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비싸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모두 그들의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아주 특이한 점이 있다. 인물을 중앙에 배치한 전통적인 초상화와 달리, 한쪽 가장자리에 두어 풍경을 위한 공간을 넉넉히 확보한 것이다. 게다가 앤드루스 부인의 표정이 정말 이상하다. 관람자는 부인의 얼굴에서 경멸과 무례함 혹은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보다 낮은 계급인 화가를 향해 경멸의 눈빛을 던지는 걸까? 게인즈버러 역시 앤드루스 부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인은 아직 10대의 어린 소녀지만, 중년 여성같이 눈 아래에 늘어진 지방이 있는 깐깐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묘사되었다.

'앤드루스 부부' 그림의 부인 묘사 부분. 경멸하는 듯한 표정과 드레스 한복판의 갈색 얼룩이 선명하다.

'앤드루스 부부' 그림의 부인 묘사 부분. 경멸하는 듯한 표정과 드레스 한복판의 갈색 얼룩이 선명하다.

사실, 이 작품은 각자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작품을 소장한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시골 풍경 속의 젊은 부부를 그린 목가적인 그림으로 본다. 한편, 게인즈버러의 전기를 쓴 미술사학자 제임스 해밀턴은 아주 새롭고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게인즈버러가 그림 속에 앤드루스 부부에 대한 사적인 비호감과 분노를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가 앤드루스 부부로부터 초상화를 주문받았을 때, 앤드루스와 게인즈버러는 22세, 앤드루스 부인은 16세였다. 게인즈버러는 조슈아 레이놀즈 경과 함께 18세기 영국 미술계를 이끈 초상화가이지만, 이때만 해도 지방에서 활동한 무명화가였다. 반면, 앤드루스와 그의 아내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금수저였다. 게인즈버러와 앤드루스는 같은 또래였고, 서드베리 문법학교에 함께 다녔기 때문에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계층의 벽이 있었다. 게인즈버러는 파산한 양모 제조업자의 아들이었다. 앤드루스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는 런던에서 수습 화가로 훈련받고 있었다. 사실 게인즈버러는 부유한 초상화 의뢰인들을 싫어했다. 그렇다면 게인즈버러가 초상화에서 그를 얕보는 거만한 부부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일까?

게인즈버러, 로버트 앤드루스, 프랜시스 카터(왼쪽부터).

게인즈버러, 로버트 앤드루스, 프랜시스 카터(왼쪽부터).

해밀턴에 의하면, 그림 곳곳에 성적인 풍자와 낙서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로버트의 오른팔에 걸려 있는 총알 주머니는 남성의 음낭과 비슷하며 실제 성기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그의 왼손은 생식기 같은 형태의 옷자락을 만지고 있다.

한편, 앤드루스 부인의 무릎 부분은 미완성이다. 다른 곳은 완벽히 마무리되었는데 왜 이 부분만 갈색 얼룩으로 남아 있을까? 내셔널 갤러리 측은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책, 부채, 뜨개질 도구, 강아지, 꽃 같은 것이 놓였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피가 안 묻도록 드레스에 천을 깔고 남편이 사냥한 수꿩을 그 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도 있다. 부인이 한 손에 쥐고 있는 꼬리깃털 같은 형태를 보면 맞는 것도 같다. 네덜란드 풍속화에서는 여성이 수꿩을 우악스럽게 휘어잡고 있는 그림들이 많은데, 이는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장악된 남성의 성을 뜻한다. 시골 마을의 저잣거리에서 음담패설과 성풍속에 대해 듣고 자란 게인즈버러는 수꿩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앤드루스 부부의 성생활에 대한 풍자적인 은유로 그려 넣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해밀턴은 이 작품이 화가의 은밀한 복수를 위한 공간으로 이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그림은 단순히 부유하고 행복한 젊은 부부와 아름다운 영국 전원 풍경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한 미술사학자가 말한 대로 화가의 분노와 조롱이 교묘하게 숨겨진 풍자화일까? 때로, 한 점의 그림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작품은 한 시대와 사회의 기록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역사책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도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만약 해밀턴의 분석이 맞다면, 이 그림은 게인즈버러와 앤드루스 부부간의 부와 사회적 지위의 차이와 갈등, 더 많이 가진 자의 오만과 과시욕 등 18세기 영국 사회의 모습을 수백 년 후의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익숙한 이슈들이다.

앤드루스 부인의 무례한 표정이 게인즈버러를 향한 경멸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을 느끼면서도 초상화를 그려야 했다면, 화가가 느꼈을 좌절감과 분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둘러싼 앤드루스 부부와 게인즈버러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불평등은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고 자만과 분노의 원천이 된다. 이제 그림 속 인물들과 그들을 그린 화가는 사라졌지만, 예술작품은 남아 그들 모두의 생각과 감정을 조용히 전해준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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