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2세 오충공 다큐 감독
40년간 조선인 학살 주제 천착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 선정
“일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올해로 100년이 됐지만 해결된 건 없습니다. 일본은 물론 역대 모든 한국 정부가 진실을 외면한 탓입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재일동포 2세 오충공(68) 감독은 감정에 북받친 듯 잠시 숨을 골랐다. 그에게 100년 전 비극은 살아 있는 역사다. 20대 영화학도가 백발이 성성한 노감독이 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은 이유다. 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마주한 오 감독은 “100년이 아니라 101년, 102년이 지나도 진상 규명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감독은 재일조선인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고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올해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1970년대 유신 독재에 맞서 싸운 지학순(1921~1993) 주교를 기리기 위해 1997년 제정됐다. 매년 인권과 평화 확산에 힘쓴 활동가와 단체에 상을 수여한다.
오 감독은 25세 때 세계적 영화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아래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영화 인생 전부를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 매달렸다. 1983년 발표한 첫 영화 ‘감춰진 손톱 자국’과 1986년 두 번째 영화 ‘불하된 조선인’은 학살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아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무차별 학살된 조선인은 6,000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희생자 유족을 찾아 일본 측 명부와 기록을 재조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0여 년에 걸친 이 과정은 ‘1923 제노사이드, 100년의 침묵, 역사부정’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어져 올해 공개될 예정이다. 오 감독은 “간토 대학살은 재일조선인만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라며 “점점 흐릿해지는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행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오 감독은 “일본은 조선인 학살뿐 아니라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까지 ‘역사 수정’도 아닌 ‘역사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역사를 바로 알자는 목소리를 반일로 매도해선 안 된다”고 개탄했다.
그는 힘에 부칠 때마다 희생자 유족들을 떠올린다. “고작 영화 세 편밖에 만들지 못해 무거운 사명감을 느낍니다. 제 영화가 진실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죽을 때까지 주어진 책무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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