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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사과가 먼저다

입력
2023.03.09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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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6일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6일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사과를 먼저 한 다음, 다른 일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6일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 강제동원 피해 배상 방안을 두고 한 말이다. 피해자들은 “한국 기업에서 배상금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한테서 사죄를 받으려 지금껏 싸웠다”며 분노했다.

‘강제동원 해법’ 후폭풍이 멎지 않고 있다. 정부는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한 대승적 결단임을 연일 강조한다. 정치권에선 “한미일 안보협력의 초석을 다졌다”는 호평과 “위안부 합의보다도 굴욕적”이라는 비난이 팽팽히 맞선다. 그러나 불행한 역사가 갈가리 찢은 당사자들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려는 ‘진심’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나라를 위해 이해해 달라는 읍소도, 억대의 배상금도 아니다. 전쟁범죄와 강제징용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딱 하나다.

양 할머니의 울분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떠올랐다. 1968년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벌어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의혹 사건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호소다. 한국 정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법원의 첫 판결 닷새 후인 지난달 12일, 퐁니 마을에서 만난 탄은 이렇게 말했다. “돈도 필요 없어요. 원하는 건 피고 대한민국의 진실 인정과 사과뿐입니다.”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강제징용과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을 동일선상에 두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의 ‘가해자’가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나라에 의해 삶이 파괴된 사람이 있는데, 사과와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강제징용 가해자(일본)가 과거 부정을 되풀이하는 사이, 한국 정부는 외교적 협력 필요성만 부각하며 피해 당사자의 상처를 후벼판다. 다른 한편(베트남 민간인 학살)에선 사법기관이 피해자 손을 들어줬는데도, 한국 정부는 "한국군의 행위라는 증거가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모든 정치 논리보다 앞서는 건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권 침해에 대한 가해자의 사과가 없다면, 모든 법적 다툼이 끝나고 배상이 이뤄진다 해도 반쪽짜리 해결에 불과하다. 범죄엔 공소시효가 있어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데엔 시효가 없다는 얘기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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