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노동량과 불안한 지위
극단적 선택 시도 비율 과도하게 높아
"플랫폼 역할과 정부 개입 필요"
"우리들 사이에서는 '웹툰 작가 10명 중 4명은 암환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일주일에 70컷을 그려야 하고, 그마저도 하나만 연재하면 생활 영위가 어려워 2, 3개 작품을 돌려가며 연재하는 작가가 많아요. 휴식권이 필요합니다."
웹툰 작가 A씨
"한 웹툰 작가가 에이전시에 결혼 소식을 전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연재하는 동안은 임신하지 말아달라'였습니다. 임신할 경우 장기 휴재를 보장하기 어렵고 작품에서 작가를 교체할 수도 있다고요. 그 작가는 커리어 단절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고 아이를 포기한다고 합니다."
웹툰 작가 B씨
비약적 성장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대표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웹툰 시장이 병들고 있다. 복잡한 계약구조 안에서 웹툰 작가들은 엄청난 노동량과 불안한 지위를 견디다 과로로 쓰러지기도 한다. 이들은 '평균 연봉 1억 원'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그늘에 놓인 예술노동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지희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임의는 7일 국회 토론회에서 "웹툰 작가들은 과도한 노동량과 높은 업무 강도,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수 작가들이 수면 부족 및 장애를 호소하고 있으며, 우울증과 근골격계 질환, 안과질환 등이 흔하게 관찰됐다"며 "특히 댓글 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심리적인 영향을 크게 받아 자살 시도율(4%)과 계획(8.5%) 모두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토론회는 민 전임의를 비롯해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등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진이 웹툰 작가 320명 대상 온라인 설문, 15명 대상 심층 면접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민 전임의는 "관행을 없앨 수는 없으나 기본적인 업무 강도부터 낮춰야 한다"면서 "플랫폼의 책임 있는 역할과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회당 45~50컷이던 웹툰 길이는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 평균 70컷까지 늘어났는데, 웹툰 작가들은 "사실상 일주일에 불가능한 분량"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수경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지회장은 "컷 수 상한제가 필요하다"며 "흐름상 컷 수가 초과되면 고료를 더 지급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웹툰 작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업무 자율성이 높아야 정상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설문조사에서 47.1%가 "원할 때 휴재가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며, "연재 주기 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응답도 67.4%나 됐다. 월 최대 소득은 200만~400만 원(51.5%)이 가장 많았고 최소 소득이 50만~100만 원(41%)이거나 50만 원 미만(22.5%)이라는 답변도 60%를 넘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하신아 웹툰작가노조위원장은 "프로모션을 받지 못하면 거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데, 프로모션은 플랫폼 말을 잘 듣는 작가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자율성은 거의 없다"며 "최소한 만화진흥법 안에서라도 근로자성을 인정해주고, 휴식권·휴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유경 민변 변호사는 "유급 휴재권 등 필요한 내용을 직접 법률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웹툰특별법 또는 만화진흥법 개정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웹툰 작가의 휴재권 보장을 명문화할 계획이다. 안미란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새 표준계약서 초안에 50회당 2회씩 반드시 휴재하도록 했다"며 "작가가 휴재 의무를 따르지 않으면, 서비스 제공업자가 휴재를 권고하고, 해당 기간 만큼 연재를 중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작가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무분별한 댓글을 중재할 시스템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민 전임의는 "플랫폼은 단순 게시를 넘어 작품 성공 여부에 영향력을 빌휘하고 있다"며 "플랫폼의 선의에만 기대면 금세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제도적 정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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