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2대 국립세종수목원장 인터뷰]
글쓰기로 숲 친근하게 만든 식물학자
"정원 진흥시켜 국민생활 속 정원으로"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이 2일 수목원 연구동에서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정원식물 안내서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개최된 정원식물 전시 품평회에 출품된 식물들을 정리했다. 정민승 기자
“식물학자의 꿈은 접었죠. 대신 다른 꿈을 꿉니다.”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 ‘우리 나무 백 가지’ 등 우리에게 익숙한 글의 주인공 이유미 박사가 국립세종수목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4년 여성으로는 첫 국립수목원장(광릉)에 오른 뒤 2020년 초대 세종수목원장까지 지냈지만, 직함보다 이름 석 자로 더 알려진 이다. 2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공직에서 물러났다가 그해 말 공모를 거쳐 다시 세종수목원장에 복귀했다.
2일 수목원 연구동에서 만난 그는 식물학자와 식물수필가를 넘어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뽐냈다. 이 원장은 “다시 와서 보니 할 일이 많다”며 “나무와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2020년 10월 세종시 신도시 한복판에 문을 연 세종수목원은 국내 유일의 도심형 국립수목원이다. 여타 수목원에 비해 접근성이 뛰어난 만큼 ‘즐기는 식물’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여러 논문과 글을 통해 식물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그의 눈에도 아직 거리감은 분명하다. 이 원장은 해법을 ‘정원 산업’에서 찾았다. “숲과 수목원을 찾지 않고도 식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정원이에요. 정원산업 진흥이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K정원’으로 불리는 한국형 정원을 좀 더 한국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힘쓸 계획이다.
물론 난관은 적지 않다. 한국정원은 정원문화가 발달한 유럽 등 서구 입장에서 보면 중국ㆍ일본정원과 딱히 차별성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 원장은 한국정원의 성패로 “전통은 지키되,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고 짚었다. 200년 역사의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입상한 ‘해우소’, ‘DMZ’ 등의 국내정원 작품의 수상 실적만 봐도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과제는 또 있다. 정원에 주제와 의미를 입히는 것만큼이나 어떤 식물을 심느냐도 중요하다. 한국은 성공적인 산림녹화 역사에 비해 식물 다양성이 부족하다. 이 원장은 “외국산이 대부분인 정원ㆍ반려식물을 이용하면 한국정원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자생종을 발굴하고, 농가나 정원식물 기업의 산업화 지원이 국립수목원의 또 다른 역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미 세종수목원장이 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정원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제공
또 수목원이 공원과 다른 부분은 전시보다 연구 기능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수목원 내 모든 식물의 이력이 관리되고, 축적된 데이터는 정원 소재 개발의 바탕이 된다. 섬유, 바이오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이 시작되는 곳도 수목원이다.
그래서 그는 ‘탄소중립정원’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원장은 “수목원 자체가 탄소중립 시설이지만, 식물마다 기능이 다 다르다”며 “곁에 있는 정원을 통해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거기서 인센티브가 오가는 기준도 수목원이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생종 활용률을 높이면 수입식물 운송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식물과 정원이 하나의 산업으로 작동하려면 결국 ‘판’이 잘 짜여야 한다. 세종수목원을 포함해 국내 수목원을 관장하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K테스트베드’로 명명된 정원산업 플랫폼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정원식물을 발굴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업ㆍ농가에 전수하는 ‘선순환’ 시스템이 마련되면 한국 식물산업의 밝은 미래도 꿈꿔 봄 직하다.
“정원식물 품평회와 식물 농가 2세들의 창업 인큐베이팅 등 세종수목원이 역점을 두는 다양한 관련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한국의 정원산업도 한 단계 도약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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