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이해한다" 노부부 미담 화제
현실은 코로나 이전보다 민원 50% 늘어
"자치조직 활성화해 분쟁 해결할 필요"
“할아버지가 꼭 부탁할게. 지금처럼 조심하지 말고 신나게 놀아야 한다.”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는 1일 아래층 B씨로부터 이런 내용의 편지와 현금 5만 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사연은 이랬다. 14층에 사는 A씨는 지난달 25일 딸 2명과 조카 2명을 데리고 B씨 집을 찾아 손 편지와 롤케이크를 전달했다. 주말마다 아이들이 집 안에서 뛰어놀며 시끄럽게 하는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였다. 그러자 나흘 뒤 B씨는 다시 윗집을 찾아 답례 차원의 편지와 용돈봉투를 건넸다.
A씨의 사연은 인터넷 맘카페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눈물이 ‘왈칵’”, “코 찡했어요”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이런 감동 스토리가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면 좋으련만, 층간소음 피해자들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고개를 젓는다. A씨처럼 소음 유발자가 잘못을 인정하는 자체가 드문 데다, 소음이 벽을 타고 아래층과 옆집 등 사방으로 퍼지는 공동주택 특성상 아래층 주민만 “괜찮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 최근 4년간 층간소음 민원은 50% 이상 폭증했다. 갈등이 강력범죄로 비화하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환경공단 산하 중재 기구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지난해 4만393건으로 집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2만6,257건)보다 53.8% 증가했다. 코로나19 기간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 실내 체류가 늘어난 여파로 보인다.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해제로 2021년(4만6,596건)에 비해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4만 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죄 발생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층간소음 갈등 끝에 아래층 거주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집안에 부탄가스 570여 개를 쌓아두고 불을 지른 30대 남성이 검거됐다. 같은 해 6월 인천 부평구의 한 빌라에서는 50대 남성이 위층 이웃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층간소음이 원인이 된 살인ㆍ살인미수ㆍ폭행이 2021년 11건에서 1년 만에 27건으로 늘었다는 분석(주거문화개선연구소)도 있다.
정부도 심각성을 모르는 건 아니다.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무엇보다 대책이 주로 신축건물에 집중된 탓이 크다. 그나마 지난해 저소득층 및 유자녀 가구를 대상으로 기존 주택에 ‘소음저감매트’를 설치할 경우 최대 300만 원을 저금리로 지원하겠다는 국토교통부 발표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예산정책처는 “소음저감매트가 층간소음 주요 원인을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를 대안으로 꼽는다. 신청부터 상담까지 수개월은 족히 걸리는 공공센터 대신, 입주자들 스스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자치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부도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 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관련 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2021년 기준 위원회가 활동한 서울 아파트 단지의 민원 비중이 80% 넘게 감소했다”며 “지속가능한 활동을 보장하는 지원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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