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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울진의 봄' ... 산불의 흉터는 너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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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울진의 봄' ... 산불의 흉터는 너무 깊었다

입력
2023.03.02 00:10
수정
2023.03.02 04: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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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산불 1년 경북 울진 르포]
벌채 작업 본격화…성한 나무 거의 없어
전국 송이 생산량 10% 금강송이 '전멸'
이재민 164가구, 아직 임시주택서 생활
산림 복원 최소 30년 예상·복구도 더뎌
불탄 나무, 바다로 흘러 해양생물 위협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한 야산이 1년 전 산불 피해로 벌채되면서 민둥산으로 변해 있다. 울진=김정혜 기자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한 야산이 1년 전 산불 피해로 벌채되면서 민둥산으로 변해 있다. 울진=김정혜 기자

지난달 27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들어서자, 왕복 2차선의 구불구불한 도로 사이로 검게 그을린 소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산새소리가 정적을 깨던 울진의 산야는 날카로운 전기톱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만 가득했다. 골짜기마다 대형 트럭이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잘려나간 나무를 실어 나르느라 분주했다. 두천리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동해안 산불이 시작된 곳이다.

산새소리 대신 굉음만 울리는 울진 산야

지난해 3월 4일부터 열흘간 화염과 연기로 뒤덮였던 울진. 1년이 흘렀지만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은 곳곳에 남아 처참한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로 울창했던 울진 야산은 검은 봉투를 뒤집어쓴 흉한 모습으로 외지인을 맞고 있었다. 당시 이재민이 된 주민 대부분은 아직도 임시 거주지에서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울진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화재로 소실된 산림 750㏊ 중 432㏊에 대한 긴급벌채 작업을 진행했다. 군과 산림당국은 벌채 작업이 마무리되면 올해부터 연차적으로 국유림(4,309㏊)과 사유림(8,392㏊)에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지난해 산불로 울진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서만 축구장 2만182개 면적과 맞먹는 산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1년 전 울진 산불에 타 최근 벌목된 소나무들이 경북 울진군 북면 소곡리 골짜기에 쌓여 있다. 울진=김정혜 기자

1년 전 울진 산불에 타 최근 벌목된 소나무들이 경북 울진군 북면 소곡리 골짜기에 쌓여 있다. 울진=김정혜 기자

자연이 주는 혜택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주민들 표정에선 좀처럼 희망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벌목이 한창인 북면 소곡리에서 만난 울진산불 금강송이 생산자피해보상대책위원장 장순규(81)씨는 “울진군이 조림 사업을 앞당기고 있다지만, 피해 면적이 너무 넓어 복원에 최소 30년 정도가 걸릴 것 같다"며 "조상 대대로 100년 이상 키워온 금강소나무가 잘려 나가는 걸 볼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며, 송이 재배는 기대조차 안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금강산에서 시작해 백두대간에만 자생하는 금강소나무에서 자란 울진 금강송이 버섯은 지난해 산불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울진은 산불 이전까지 전국 자연산 송이 생산량의 10분의 1을 차지했다. 장씨를 비롯해 울진의 송이농가 500여 곳이 수십 년간 키워온 송이는 흉년에도 매년 12톤 이상 수확했지만, 지난해 가을에는 2톤에 그쳤다. 울진을 대표했던 송이 축제도 취소됐다.

장순규 경북 울진산불 금강송이 생산자피해보상대책위원장이 벌목이 한창인 울진군 북면 소곡리에서 60년 넘게 가꿔 온 자신의 송이산을 가리키고 있다. 울진=김정혜 기자

장순규 경북 울진산불 금강송이 생산자피해보상대책위원장이 벌목이 한창인 울진군 북면 소곡리에서 60년 넘게 가꿔 온 자신의 송이산을 가리키고 있다. 울진=김정혜 기자


피해 면적 광범위…복구 '하세월'

이날 산불 이재민의 임시 주거단지가 마련된 울진군 북면 화성2리에서는 불에 탄 흔적만 남은 산을 등진 채 새집을 짓기 위한 터 닦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을 진입로에 설치된 소화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배관 공사도 이뤄지고 있었다. 화재 복구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정작 주민들 얼굴에는 근심만 가득했다.

울진 산불 이재민 181가구 중 13가구가 사는 경북 울진군 북면 화성2리의 임시주거단지 모습. 울진=김정혜 기자

울진 산불 이재민 181가구 중 13가구가 사는 경북 울진군 북면 화성2리의 임시주거단지 모습. 울진=김정혜 기자

화성2리에는 이재민 181가구 중 13가구가 살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새 집을 지어 나간 가구는 한 가구에 불과하다. 이곳을 포함해 울진에는 이재민 164가구가 아직도 임시조립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피해 가구가 워낙 많고, 면적도 광범위해 불에 탄 집을 치우는 작업부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지난해 2월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자재 가격도 다시 집을 지어야 하는 이재민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화성2리 주민 이봉균(58)씨는 “빨리 집을 지어 나가고 싶지만, 이제서야 불에 탄 집을 철거하고 집터를 닦는 공사가 끝나 임시주택에서 1년은 더 살아야 한다”며 “임시주택은 조립주택이라 난방과 온수 모두 전기로 작동하는데 4월부터는 전기세의 50%만 지원받게 돼 부담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어민들 “물고기 대신 불에 탄 나뭇가지만”

어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울진항 연안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은 최근 그물마다 불에 탄 나뭇가지가 잔뜩 걸려들어 고충을 겪고 있다. 울진항은 1년 전 산불 발화지점인 북면에서 동해로 흐르는 남대천이 바다와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울진항에서 만난 한 어민은 "지난해 산불이 난 뒤로 물고기는 온데간데 없고 사계절 내내 나뭇가지만 걸려든다”며 “허탕 친 것도 모자라 망가진 그물도 손봐야 해 속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지난달 18일 울진항에서 동쪽으로 2.5㎞ 떨어진 해상에서 조업 중 촬영한 영상에는 그물에 나뭇가지들이 줄줄이 달려 올라왔다.

경북 울진군 울진항 연안에서 조업하는 선박의 그물에 나뭇가지가 잔뜩 걸려 올라오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그물에 걸려 올라온 나무토막을 들어 보이고 있는 어민. 독자 제공

경북 울진군 울진항 연안에서 조업하는 선박의 그물에 나뭇가지가 잔뜩 걸려 올라오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그물에 걸려 올라온 나무토막을 들어 보이고 있는 어민. 독자 제공

또다른 어민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울진에선 어느 하천이나 시커먼 잿물이 흘러내린다”며 “미역 등 해산물 채취가 예전같지 않다”고 전했다. 울진군 관계자는 “조업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최근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며 “산불로 인한 2차 피해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진=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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