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살아도 행복하지 못한 한국인
초저출산 실태야말로 불행의 모습
아이는 물론 부모도 행복한 나라여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뉴스룸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국제 행복의 날인 지난 20일 공개된 166페이지 분량의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는 아래의 한 줄로 요약된다. '북유럽 핀란드가 6년 연속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며, 대한민국은 137개국 가운데 57위에 머물렀다.' 이 문장에선 이러한 '일침'도 읽어낼 수 있겠다. 우리는 1년 넘게 국가비상사태가 이어지는 엘살바도르(50위) 국민보다 불행하고, 부정부패 이미지가 짙은 키르기스스탄(62위)의 국민보단 조금 더 행복할 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가 그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국제기구(보고서를 발간하는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의 시야에 비친 대한민국의 변변치 못한 행복 수준이다.
환율변동성 때문에 1인당 총소득(GNI) 기준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대만에 우위를 내줬지만, 우리의 경제력은 선진국의 문턱을 넘은 지 오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연간 성장률 2% 내외를 유지할 경우 윤석열 정부의 목표인 2027년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도 크게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소득기준 지니계수가 느리게나마 0을 향하고 있는 만큼, 빈부격차도 그럭저럭 좁혀지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은 무려 30년 전 일이다. 살 만큼 산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나 불행하다.
우리의 행복 수준이 엘살바도르 정도에 머물고 있음은 세계 최저 출산율(0.78명)로 선명히 증명되고 있다. 0으로 빠르게 다가가는 출산율. 2년 뒤 초고령사회 진입이나 30년 뒤 국민연금 고갈과 같은 추상적인 우려가 아니라, 지금 추세가 한두 세대만 이어지더라도 국방이 무너지고 성장이 멈추고 끝내 국가가 소멸할 수 있다는 끔찍한 공포. 그럼에도 29세 이하 국민의 60% 가까이가 자녀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사회(2022 한국사회 지표·통계청). 출산이 누구의 삶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고 믿는 행복 상위권 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2006년 출범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꽤 오랜만에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공들이고 있는 3대 개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풀어내야 할 제일 난제로 저출산 이슈가 떠오르면서다. 물론 '30세 이전 자녀 3명 출산 병역면제'나 '자녀수에 따른 증여세 차등 면제'와 같은 가다듬지 못한 제안들의 거론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7년 만에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28일 위원회 회의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목소리는 대체로 성의가 있다. 대통령이 나서 480조 원을 쓰고도 초저출산을 해소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무엇보다 '아이가 행복한 나라'라는 정책 방향을 못 박았다는 점에서다.
다만 정부와 대통령실은 '아이가 행복한 나라'가 성립되려면 '부모(혹은 부모 됨을 준비하는 사람)가 행복한 나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 달라. '부모가 행복한 나라'이면서 우리의 행복순위가 엘살바도르와 키르기스스탄 사이에 머물 일은 더는 없을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에 따르면 우리와 핀란드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의 격차는 경제력이나 건강한 노후가 아닌 주로 '사회적 지지'에서 비롯됐다. '살 만큼 살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우리 국민이 불행의 자책에서 벗어나 마침내 출산의 길에 들어서도록 이끌려면 각종 지원비 인상으로 생색내기에 머물러선 비효율일 수밖에 없다. 진정 필요한 것은 사회적 지지라는 이름의 배려라는 얘기이다. 정부가 '아이가 행복한 나라'를 위해 마련할 정책의 맨 윗자리에는, 그래서 육아친화적인 근로환경과 성평등 지향의 메시지가 적혀야 한다. 배려가 행복을 낳고, 그 행복이 아이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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