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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노는 것"…한바탕 놀이에 담긴 날카로운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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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노는 것"…한바탕 놀이에 담긴 날카로운 풍자

입력
2023.03.01 15:45
수정
2023.03.01 15:5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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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미술 거장 성능경 개인전

한국 실험미술의 원로 성능경 작가가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백아트에서 퍼포먼스(행위예술)를 펼치고 있다. 김민호 기자

한국 실험미술의 원로 성능경 작가가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백아트에서 퍼포먼스(행위예술)를 펼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이제 그만하고들 놀자! 재밌게. 그게 예술의 출발점이고. 지속해야 되는 에너지죠.”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골목에 자리 잡은 백아트 화랑. 팔순을 앞두고 있는 성능경(79) 작가가 또 한번 관람객들 앞에 섰다. 한국 실험미술의 원로는 이제는 그의 상징처럼 유명해진 퍼포먼스(행위예술)를 거침없이 펼쳐나갔다. 성 작가는 한바탕 맨손 체조를 하더니 수영복만 남을 때까지 옷을 벗어던지고는 맨몸으로 10여 분간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훌라후프를 돌리던 성 작가가 새총으로 탁구공들을 사방에 발사하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수십 명의 관람객들은 웃고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성 작가는 탁구공들을 꺼내며 미리 적어둔 경구들을 외쳤다. “예술은 소통의 불통이다!” “내 퍼포먼스는 알맹이가 없다!” “알맹이는 집어치워라 껍데기만 남았거라!”


성능경(오른쪽) 작가가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백아트 앞에서 퍼포먼스(행위예술)에 앞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을 빌고 있다. 김민호 기자

성능경(오른쪽) 작가가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백아트 앞에서 퍼포먼스(행위예술)에 앞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을 빌고 있다. 김민호 기자

강국진,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과 함께 한국 실험미술을 이끌었던 성능경의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성능경의 예술 행각’이 지난달 22일부터 4월 30일까지 백아트에서 열린다. 전시장에서는 ‘끽연’ 등 1960∼1980년대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작품들 이외에도 그가 천착해왔던 신문을 이용한 연작들을 만날 수 있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는 수년간 신문에 연재된 영어 교육 기사를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과 그림을 남긴 작품이다. 작가가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이를 디지털로 색칠한 ‘생리 미술’ 작품도 눈길을 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가 ‘품바’라고 설명한 작가의 퍼포먼스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관람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또 한편으로 희롱한다. 작가의 작품은 사회를 예리하게 풍자하면서 동시에 관람객들에게 한바탕 놀 수 있는 정서적 놀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성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업 가운데 하나인 ‘신문: 1974.6.1. 이후’가 대표적이다. 그는 197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3회 ST전’에서 그날의 신문 중 일부 기사를 오려서 청색 아크릴 박스에 담았고 나머지 부분은 흰색 아크릴 박스에 담았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전시기간 내내 진행했다. 작가는 이 행위를 하기 전에 주위에 안경 낀 남자가 있는지부터 살펴봤다고 전해진다. 이 행위 자체가 신문이라는 미리 만들어진 매체를 이용한 개념미술이면서 동시에 검열에 대한 저항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1968년 미술계에 발을 디딘 이후로 55년간 개인전을 5차례밖에 열지 않았던 작가는 올해만 총 5번의 개인전을 연다. 앞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9월), 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내년) 등에서도 전시가 예정돼 있다. 작가에게 옷을 그만 벗으라는 사람도 있지만 작가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젊은 사람의 몸만 몸이 아니고 늙은 사람의 몸도 몸이다. 부끄러울 게 없다. 늙으면 살이 늘어지는 거 아니겠는가."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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