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연맹, 제보 악용 사례 공개
공무원 A씨는 국세청 부동산거래관리과 재직 당시 B씨로부터 C씨와의 토지 매매 분쟁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결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탈세 제보가 좋은 방법이지만, 직접 할 수는 없었다. 내연녀를 시켜 자신이 작성한 제보서를 대신 내게 했다. A씨가 소속된 과에 접수된 이 제보서는 일선 지방청으로 내려갔고, C씨는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D 회사 전무와 부장은 돈을 뜯어낼 의도로 공모해 허위 탈세 제보를 한 뒤 대표를 협박했다. 대표는 자신을 음해했다며 전무ㆍ부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법원은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이후 전무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법원 판결문과 조세심판원 결정문 등에서 찾아 27일 소개한 탈세 제보 악용 사례다. 이뿐 아니다. △해고 △동업자 간 수익 배분 다툼 △이혼 △패소 △상속 분쟁 등이 탈세 제보의 배경이 된 경우도 사례에 포함됐다. 연맹은 “사적 이해관계나 원한, 앙심에 의해 계획된 악의적이고 일방적인 음해성 허위 제보가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연맹에 따르면, 한국의 탈세 제보는 기형적으로 많다. 2019년 기준 미국의 연간 탈세 제보 건수가 1만1,394건인데, 한국은 2배가량인 2만2,444건에 이른다. 협박ㆍ보복용 제보가 남발된 결과다.
연맹이 꼽은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일단 허위 제보도 무고로 형사처벌하기가 어렵다. 제보자 정보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도 크지 않다. 미국은 탈세 제보 신고서에 ‘허위일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문구가 있지만 한국은 없다.
다른 하나는 포상금이라는 유혹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상당수 선진국의 경우 탈세 제보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포상금을 주진 않는다는 게 연맹 얘기다. 전직 공무원이 A씨처럼 자기가 쓴 탈세 제보서를 다른 사람을 통해 보내고 ‘포상금 나눠먹기’를 한 사례도 파악됐다고 한다.
김선택 연맹 회장은 “탈세 제보자 개인 정보는 지워도 조사받는 기업과의 관계나 제보 목적 정도는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감시에 의한 성실 납세 독려라는 이익보다 불신 조장 등 폐해가 큰 탈세 포상금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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