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②-2]
미디어 과노출이 부른 언어발달 지체 현상
편집자주
“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 소설 ‘피터팬’의 첫 문장입니다. 어쩌면 한국엔 여느 아이들처럼 제때 자라지 못한 ‘피터팬 세대’ 가 출현할지 모릅니다. 길었던 거리두기, 비대면 수업 탓에 정서·사회적 발달이 더뎌진 ‘코로나 키즈’ 말입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아이들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상실을 방치하면, 소중한 미래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그 회복에 필요한 어른들의 노력을 함께 짚어 봅니다.
저희 애가 말을 너무 안 해요, 자폐인가요? 어쩌죠, 선생님?
(2019년생 우주(가명) 엄마)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두 살배기 우주(가명) 엄마는 갈급한 마음으로 아동발달센터를 찾았다. 보통 아기들은 생후 12개월쯤 한 단어로 말하고, 20개월 무렵엔 50여 개 어휘를 익혀 '엄마 물'처럼 두 단어를 이어 말한다. 그러나 우주는 조용하다 못해 과묵했고, 표정도 항상 뚱한 아이였다.
우주를 만난 모경옥 언어재활사는 아이의 생활 환경부터 탐문했다. 살펴보니 이유가 보였다. 아이가 말할 필요 없이 '손짓 한번'으로 욕구가 전부 충족되고 있었다. 부모도 조부모도 그저 아끼는 마음에, 우주가 "물 줘"라고 하기도 전에 '물컵'만 가리켜도 물을 떠다 주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종이 위 글자를 찍으면 단어와 노래가 나오는 스마트펜, 손가락만 툭 대면 즐거운 노래와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유튜브 동영상에 지나치게 노출되고 있었던 것. 팬데믹 탓에 어린이집에 못 가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우주는 매일 2시간가량 미디어에 홀로 노출됐다. 맞벌이 부모가 아이와 놀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모 언어재활사는 "스마트펜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걸 활용해 말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놀아주셔야 한다"며 "스마트폰의 경우 생후 24개월 미만에게는 가급적 보여주지 않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2년간 아동발달센터에 다닌 우주는 이제 말을 곧잘 하지만, 또래관계는 아직 어려워서 '말 듣고 반응하기' '감정 표현하기'를 계속 연습 중이다. 한 번 놓쳤던 언어발달 기회를 만회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코로나 영아, 언어발달 지연이 가장 심각
하도 오래 마스크를 쓰다 보니, 초등학생 아이들도 다른 사람 기분을 파악하지 못하고, 표정 변화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게 됐죠.
(김기선 충북 충주시 두레지역아동센터장)
팬데믹 이후 영유아 연령대에서 언어발달 지연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경고음이 잇달아 울리고 있다. 아직 중앙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없었지만,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실시된 영유아 발달실태조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6일 경기 성남시는 2019년 이후 태어난 영유아 1,47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베일리 발달검사(1~42개월 대상)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언어발달이 지연된 경우는 7.4%, 경계 범위인 영유아는 9.16%로 6명 중 1명꼴(16.56%)로 언어발달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 사회·정서 등 모든 발달 영역 중에서도 언어 부문 발달지연이 가장 심각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서울시 포스트 코로나 영유아 발달실태조사에서도 0~5세 영유아 542명 중 3분의 1가량은 언어발달 지연 등 발달상 문제를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유아 언어발달은 코로나 기간 동안 있었던 '거리두기' 영향을 크게 받았다. 모두가 마스크 착용한 탓에, 아이들은 어른의 '입 모양'과 '얼굴 표정'을 보고 말을 배울 기회를 잃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시기 보육·놀이 공간 운영이 제한되면서, 다른 상호작용의 빈도와 폭까지 줄어들었고 이게 언어발달에 총체적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한다.
보육·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 발음이 많이 불분명해졌다"거나 "감정 어휘가 많이 줄었다"는 증언도 많이 나온다. 영유아 보육·발달 전문가인 신혜원 서경대 아동학과 교수는 "생후 36개월 미만은 한창 입 모양을 보고 따라 하며 언어를 습득할 때인데, 어린이집에서 내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다 보니 요즘에는 발음을 알아듣기 힘든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우주 사례처럼 사람의 자리를 '미디어'가 대신해야 했던 상황도 언어발달의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이정원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쓴 '가정에서의 영유아 미디어 이용 실태와 정책 과제'(2022)에 따르면, 코로나 확산 후 영유아(0~6세) 3명 중 2명은 미디어 이용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은경 한국언어재활사협회장은 “보호자들은 유튜브나 영상을 틀어주면 아이들이 말을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언어발달 핵심은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스마트폰 노출 시간 증가. 이현이 경기남부스마트쉼센터 소장은 "영유아기에 스마트폰을 보여주면 우뇌(이성·언어 담당) 발달 시기에 좌뇌(비언어 기능 담당)를 집중적으로 활성화한다"며 "이렇게 좌·우뇌가 불균형하게 발달하면 주의 집중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말이 늦게 트이는 등 언어지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어발달 부족하니 과격한 행동 앞서
영유아 시기에 언어발달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언어 수준이 각종 사회·정서 발달 과정과 학습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우진(9·가명)이는 지난해 전면 등교를 하고서부터, 학교에서 친구들과 자주 다투게 됐다고 한다. 또래와 어울리다가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처음엔 참다가 이내 "이 자식!" "가만 안 둬!" 하며 버럭 성내는 일이 반복됐다. 교실에서도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기 어려웠고, 다툼이 반복되니 친구들과도 갈수록 멀어졌다. 우진이 스스로도 어찌해야 할지,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엄마가 우진이 손을 잡고 발달센터와 병원을 찾고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언어발달 차원에서도 감정 표현이 서툴고, 스스로 감정 인지가 잘 안된다는 전문가 판단이 내려졌다. 아이의 충동성과 언어발달 문제가 팬데믹 원격수업 때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대면 수업을 시작하고서야 가시적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모경옥 언어재활사는 "보통 애들은 두 살부터 얼굴 보고 상대방 감정을 파악하기 시작한다"며 "그런데 (마스크 때문에) 그게 어렵다 보니 언어치료를 받는 아이들도 '기쁘다' '좋다' '속상하다' 같은 감정 어휘가 많이 떨어진다"고 상황을 알렸다. 이어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말로 갈등을 해결하는 게 어려우니, 그게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격수업에 적응 어려웠던 다문화 아이들
학교 폐쇄와 가정 밖 대면 접촉이 줄어든 현실은 외국인 부모를 둔 다문화 아동에게도 타격이었다. 여느 가정에 비해 한국어 노출 빈도가 적다 보니, 언어 습득 기회가 제한됐다. 이주배경 아동을 위한 공부방인 서울 용산구 '바라카 작은 도서관'은 팬데믹 시기 '한국어 기초 잡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현경 교사는 “학교에서 '줌 한국어 수업'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2년의 고군분투 덕에, 지난달 10일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집트·미얀마·수단· 필리핀 등 다채로운 배경의 아이들은 방에 모여 축구를 하면서 '오 필승 코리아'를 떼창으로 부르고 한국말도 자연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런 도움조차 받지 못한 아동은 첫발 떼기부터 어렵다. 이 교사는 최근 알게 된 한 아프가니스탄 가정을 예로 들었다. 이 가족은 한국에 오자마자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아이가 학교를 못 가게 됐는데, 엄마도 애도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줌 수업만 틀어놓은 채 아무것도 못하고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어발달 지연, 방치하면 되돌릴 수 없다
아이와 함께 주 1회 30분 만이라도 집중해서 함께 놀아 주세요. 단 이 시간 동안 '휴대폰은 절대 금지'입니다.
(신혜원 서경대 아동학과 교수의 육아 조언)
언어발달 지연 문제를 방치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격차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이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이은경 언어재활사협회장은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아이들의 언어 회복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며 ‘학교 언어재활사 배치’를 제안했다. 그는 "교육청 소속 언어재활사가 학교에 상주하면 매번 부모 동행이 필요한 사설 치료기관보다 치료 접근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언어지연 아동의 조기 선별과 난독증·ADHD 아동의 학습이나 생활 지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어재활사나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가정에서 보호자가 일상적으로 아이에게 언어자극을 주고 밀도 높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당부도 있다.
영유아 전문가 신혜원 교수는 "기본적인 부모교육을 하나씩 들으시면 제일 좋고, 집에서 최소한 주 1회 30분이라도 집중해 아이와 놀아주시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정된 방에서 아이가 노는 걸 지켜보며 호응해 주고, 같이 역할놀이를 하면서 참여하면 된다"며 "지금 부모가 아이들에게 오롯이 집중해 준 시간이 아이에게 심리적 자산과 자신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폰아일체' 우리 아이... 차라리 SNS는 PC로 접속하게 해주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0107530002810)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게재 순서
<1화: 마음도 몸도 무너진 아이들>
<2화: 느려진 아이들, 벌어진 미래>
<3화: 부모가 아프면, 아이도 아프다>
<4화: 잃어버린 세대 만들지 않으려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