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행사'서 '흙수저' 직장인의 치열한 몸부림 보여줘
"수많은 직장인들 등 긁어줬으면... '여태 잘 버텼다' 위로도"
도박과 술에 찌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살아남기 위해 소녀의 어머니는 가출했다. 일곱 살 때 고모 손에 자란 그는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다. 26일 종방한 JTBC 드라마 '대행사'에서 고아인(이보영)은 어려서부터 살아남기 위해 죽음 힘을 다해 자신을 몰아붙였다. 성공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버림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흙수저'에 지방대 출신으로 학벌·남성 중심 직장에서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고아인을 보며 이보영(44)은 자신의 20대를 떠올렸다. "연기 시작할 때 도망치고 싶었어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얼굴이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감독님한테 혼나는 게 겁이 났죠. 고아인을 보면서 '여태 잘 버텼고 끝까지 버텨보자'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종방 직전 서울 강남구 소재 카페에서 만난 이보영의 말이다.
'대행사'는 시청률 10%를 웃돌며 주말 안방극장을 달궜다. 고아인의 성공을 다루는 방식은 상투적이었지만, 그가 이 사회 곳곳에 뿌리 박힌 부당한 관행에 도전하며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극 중 VC 그룹 로열패밀리를 통해 악명 높았던 '땅콩 회항'사건과 출소 후 치킨을 사 먹었던 현실 속 재벌가를 풍자한 것도 소소한 볼거리였다. 고아인은 회사에서 "상무 될 스펙은 아니"라고 무시당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오너들에게 머리를 굽히는 방식은 택하지 않는다. 이보영은 "고아인이 수많은 직장인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했다.
고아인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독설을 내뱉는다. 그가 '대행사'에서 연기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자식을 버린 어머니와의 재회 에피소드였다. 이보영은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아이를 버리고 간 부모의 서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더라"며 "정작 촬영을 들어가니 눈물이 나 감정이 요동치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찍었다"고 했다.
2003년 시트콤 '논스톱3'로 연기를 시작한 이보영은 '서동요'(2005)에서 선화 공주역을 해맑게 연기해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 이후 청순가련의 배역이 그에게 주로 들어왔고 그 이미지에 갇혀 슬럼프에 빠졌다. 활동 초기, 소속사에서 드라마 작품 출연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연기를 즐기지 못했고 그 후유증에 한동안 작품 출연도 고사했다. 주저앉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적도의 남자'(2012)였다. 이보영은 "강단 있는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게 즐거웠다"며 "사람이 일이 없어야 간절해진다고 어느 순간부터 현장에서 날 찾는 게 너무 감사하더라"며 웃었다.
'대행사'를 끝낸 이보영은 스릴러 드라마 '하이드' 촬영에 나선다. 한때 연기 활동 중단까지 고민했지만 20여 년 동안 연기 활동을 꿋꿋이 이어온 그가 세상의 고아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을까. "살다 보니 중요한 건 세상의 시선이 아니라 나 더라고요. 많은 분이 고아인처럼 살고 있겠지만 끝까지 나를 잃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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