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앞두고 전운
헌정 사상 최초 제1야당 대표 구속영장

이재명(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 국회 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조정식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엔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게 된 데 대해 민주당은 당내 압도적인 ‘부결’ 기류를 자신하면서 의원들의 자율 투표에 맡기기로 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이 형식적으로 ‘자율 투표’라지만 사실상 부결 지시를 그럴듯하게 포장했다”며 체포동의안 가결 주장으로 맞섰다.
현재로선 민주당 우위의 의석 구조상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예상외로 민주당 내 이탈표가 커 가결되는 경우의 수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 정치적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결되더라도 여야 간 정치적 공방은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법치 탈을 쓴 사법 사냥"이라는 야권과 "방탄쇼"라는 여권의 대국민 여론전은 내년 총선 국면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헌정 사상 첫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이에 따른 체포동의안 표결이 중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당장 정국을 뒤흔드는 변곡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처럼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들이 최근 수년 사이 잇따라 터져 나와 한국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는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정치적 후폭풍이 가장 컸던 사건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것이었다.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청구인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을 읽자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갖고 사저로 떠나게 됐다.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헌정 사상 첫 ‘부녀 대통령’이자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도 했던 박 전 대통령은 임기 4년 차인 2016년 이른바 ‘비선실세’로 불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에 휩싸여 궁지에 몰렸다.
국회는 같은 해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탄핵이 인용된 후 검찰은 이듬해 4월 17일 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대법원은 2021년 1월 국정농단 관련 혐의 및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등에 대한 징역 20년 형을 확정했다.
이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만 오명을 썼던 것은 아니다. 보수의 상징이 무너지면서 보수 진영이 분열을 넘어 사실상 궤멸 상태에 빠졌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한국의 유권자 지형이 전통적으로 보수 우위였으나 탄핵 이후에는 진보 우위로 바뀌었다는 진단도 적지 않았다.
검찰의 헌정 사상 최초 법무부 장관 수사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대통령 선거일이 변경돼 2017년 5월 9일 치러졌고,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튿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취임했다.
정권을 잡은 더불어민주당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이해찬 당시 의원은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거나 “적어도 네 번 다섯 번 집권을 해야 정책이 뿌리를 내린다”는 등 ‘20년 집권론’을 공공연히 주장하며 기세등등했다. 추미애 당시 당대표 역시 “최소 20년 이상 연속 집권을 목표로 하는 100만 권리당원이 함께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당당히 밝혔다.
민주당이 발목을 잡힌 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부터였다.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부터 자녀 입시비리 특혜 및 사모펀드 관련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검찰은 청문회를 앞둔 2019년 8월 27일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 수사는 조 전 장관이 장관으로 임명된 후에도 지속돼 같은 해 9월 23일 검찰은 헌정 사상 최초로 상급기관인 법무부 수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시 여당의 강성 지지자들은 검찰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기 시작했지만,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관여 의혹은 ‘진보 엘리트’로 불리던 조 전 장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논란으로 이어져 일부 지지층이 이탈하는 사태를 낳았다.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여권 지지층이 분열하는 계기였다. 당시 야권이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구심점을 잃었지만, 여권이 스스로 내파하면서 장기 집권론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文정권의 일격···사상 초유 검찰총장 징계 청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020년 12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관련 언론 브리핑에서 발표하고 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브리핑 후 청와대에 들어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제청해 재가를 받은 뒤,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취임 35일 만에 사퇴한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등 압박을 가하다가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추 당시 장관은 2020년 11월 24일 윤 당시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고 총장 직무를 정지했다. 앞서 △언론사주 면담 △라임사건 검사 비위 은폐 △야당 정치인 사건 처리 △옵티머스 관련 무혐의 경위 등 의혹에 대해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추 전 장관이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청구까지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윤 당시 총장에겐 ‘반격의 계기’였다. 앞서 특수통 등 측근 위주 인사로 윤석열 총장에게 적개심까지 드러냈던 검찰 내부 민심은 “해도 너무 한다”며 동정론으로 돌아섰고, 사회 각계에서도 민주당 정권의 일방적인 몰아치기에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윤 당시 총장은 2021년 3월 4일 “검찰에서의 제 역할은 지금 이제까지입니다”라며 총장직을 사퇴하고 검찰을 떠났다.
이 사건은 결국 헌정 사상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농단 수사팀장으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지만 와해된 보수 진영을 재건하는 ‘구원투수’로 등판해 '0선 정치인'으로서 정권 교체에 성공한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한국 정치사가 만든 아이러니한 ‘이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압도적 여소야대 속 극한 대립 지속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압도적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과 야당은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5일 직접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을 때는 야당인 민주당이 아예 입장조차 하지 않으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또 '이태원 참사’ 후 책임 소재를 따지는 과정에서 법적 책임을 물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입장에 맞서 민주당은 이달 8일 헌정사 최초로 현직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은 총투표수 293표 중 찬성 179표, 반대 109표, 무효 5표로 가결됐다.
이처럼 최근 수년간 잇따른 헌정사 최초의 사건들은 여야 간 정치적 갈등이 격렬해진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정치를 통해 타협점을 찾기보다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정국을 돌파하려다 보니 '헌정사 최초의 수단'까지 동원하는 경우가 잦아진 것이다.
이를 통해 지지층이 분열하거나 거꾸로 결집해 정치 지형도 자체를 뒤흔드는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보수를 분열시킨 반면, 문 정부의 검찰총장 징계 청구는 보수를 결집시키는 상반된 효과를 낳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여부는 내년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야권 지지층이 분열할지 아니면 결집하는 계기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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