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애는 잘 지내죠?" 학대 부모에게 안부 묻는 사후대책

입력
2023.03.13 14:00
0 0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③-3]
아동학대 방지 선진국 사례에서 배울점


편집자주

“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 소설 ‘피터팬’ 첫 문장입니다. 어쩌면 한국엔 여느 세대처럼 제때 자라지 못한 ‘피터팬 세대’ 가 출현할지 모릅니다. 길었던 거리두기, 비대면 수업 탓에 정서·사회적 발달이 더뎌진 ‘코로나 키즈’ 말입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아이들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상실을 방치하면, 소중한 미래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그 회복에 필요한 어른들의 노력을 함께 짚어 봅니다.


생후 16개월 입양아(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양모의 항소심 결심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앞에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중형을 선고해달라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생후 16개월 입양아(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양모의 항소심 결심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앞에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중형을 선고해달라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과 2021년 아동학대로 83명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잇따른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동학대 발생 건수와 사망 아동 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매년 3만 건 수준이던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21년 5만 건을 넘었고, 연평균 30명 정도이던 사망자 수 역시 40명 이상으로 늘었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가장 빈번하게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장소가 다름 아닌 가정인데, 코로나로 인해 부모와 아이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학대도 함께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론이 분노할 때마다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결국 아동학대 줄이기에 실패했다. 아동학대를 중범죄로 인식하고 발생 초기부터 엄정하고 신속하게 다루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학대 신고부터 사후관리까지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미리 인식하고 일찍부터 제도화한 나라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환경에서 학대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살펴봤다.

연도별 국내 아동학대 신고 접수·사망자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연도별 국내 아동학대 신고 접수·사망자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①일단 신고가 쉬워야 한다

코로나 대유행은 아동학대 범죄가 활개 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줬다. 가정 내 학대는 일반적으로 교육·보육 기관 등 제3자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나 등교 제한 탓에 외부 감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데믹 첫해인 2020년 2~4월 교직원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2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1,283건) 82.9%나 감소했다.

코로나로 인해 아동학대가 더 '음지화'했다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뉴질랜드 역시 국가 봉쇄령과 이동제한 조치가 시행된 2020년 3월 26일부터 약 3개월간 아동학대 신고 비율이 전년 동기보다 24% 감소했다. 이에 유엔은 인권보호 지침을 통해 아동이 학대 위험에 노출될 우려를 표하며, 각 당국에 아동 보호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사례담당자 감독관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지역 아동 보호 서비스 기관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첫 화면을 살펴보고 있다. 사례담당자가 콜센터를 통해 아동학대 사례를 접수하면 상급자인 감독관이 이를 관리한다. AP 연합뉴스

사례담당자 감독관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지역 아동 보호 서비스 기관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첫 화면을 살펴보고 있다. 사례담당자가 콜센터를 통해 아동학대 사례를 접수하면 상급자인 감독관이 이를 관리한다. AP 연합뉴스

주요 국가들은 발 빠르게 아동학대 신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암수범죄(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범죄)인 아동학대 범죄의 특성상 제3자의 적극적인 신고가 피해 예방 및 대응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2020년 미국과 영국은 24시간 온라인 라이브 채팅 서비스를 확대해 가정폭력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피해자가 가해자와 가정 내에 함께 머무는 경우, 통화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채팅으로도 신고를 받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형식적인 대응 마련에만 그쳤다. 같은 해 5월 교육부는 아동학대 증가 우려에 따른 대책으로 아동학대 예방 부모교육 콘텐츠를 학부모 온누리 사이트에 탑재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학대 예방에 전혀 실효성 없는 접근이라고 꼬집었다. 정혜영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노원구지회장은 “아동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만 관심을 두고, 실제 학대 예방이 필요한 부모는 안 본다”며 “탁상공론식 대응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②비대면 기간에도 적극 모니터링으로 개입

2월 11일 오후 인천 한 장례식장에서 학대로 숨진 초등학교 5학년생 A(12)군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11일 오후 인천 한 장례식장에서 학대로 숨진 초등학교 5학년생 A(12)군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기간 중 아동학대로 접수된 사건을 대응하는 과정도 적절치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학대로 판정한 사례의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 가정에 방문해 부모와 피해 아동에게 교육과 상담을 제공한다. 그러나 코로나 감염 우려로 대다수의 가정이 방문을 꺼리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화로 상담을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적극적으로 학대 사례에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경기권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대면으로 진행해야 더욱 밀도 있는 상담이 이뤄질 텐데 전화상으로는 사실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아동학대 가해자 10명 중 8명이 부모인 현실을 감안하면, 비대면 상담은 사실상 아동학대 재발을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가 거짓 보고를 하면 상담원이 학대 징후를 포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판정을 받고 아이와 함께 사는 이소영(40·가명)씨는 “사후관리라고는 했지만 아이와 통화조차 없이 나에게만 질문했다"며 "이럴 거면 사례 관리를 왜 하는지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 전체 아동학대 중 재학대 비율은 코로나 전 11.4%(2019년)에서 14.7%(2021년)로 3.3%포인트 상승했다. 앞서 2년(2017→2019년)간 상승치인 1.7%포인트와 비교해 크게 늘었다.

미국은 비대면 시기에도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사례 개입을 시도했다. 2020년 3월 뉴욕주 아동보호기관은 화상통화 및 화상회의 등 다양한 대체기술을 활용한 원격 사정 지침을 마련했다. 코로나 감염 위험으로 사례담당자가 가정방문을 거절당한 경우에 24시간 이내에 지역부서, 가정 법원 등을 통해 추가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③교육·상담 인프라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전염병 사태와 같이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 보다 내실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비대면 시기를 보내며 아동학대가 급증한 상황에서, 국가가 학대에 취약한 아동들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극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가해자 처벌 강화에만 쏠린 경향이 있다”며 “학대부모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보호자가 될 수 있기에, 좋은 부모를 만드는 교육·상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고립이 아동학대로 이어졌던 '성현이네 사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22816360001485?did=NS&dtype=2

오세운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