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①-1]
스마트폰, 친구 잃은 아이들의 빈틈을 노렸다
편집자주
“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 소설 ‘피터팬’ 첫 문장입니다. 어쩌면 한국엔 여느 세대처럼 제때 자라지 못한 ‘피터팬 세대’ 가 나올 지 모릅니다. 긴 거리두기, 비대면수업 탓에 정서·사회 발달이 더뎌진 ‘코로나 키즈’ 말입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아이들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쳤습니다. 방치하면 소중한 미래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그 회복에 필요한 어른들의 노력을 함께 짚어 봅니다.
오후 2시 44분. 오늘도 실패다. 도저히 아침엔 눈이 떠지지 않는걸. 일어나라는 엄마 잔소리를 잠결에 들은 것 같은데, 모른 척했다. 몸이 자꾸만 푹 꺼지는 기분이다. 머리는 띵하고, 속은 더부룩하다. 이제 뭐하지. 배는 딱히 안 고프고, 로블록스(게임 플랫폼)나 한판 해볼까. 엄마랑 동생은 병원 갔나보네. 혼자 있으면 무서우니까 TV부터 틀자. 눈꺼풀은 감기는데 밖에서 노는 애들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제발 조용히 했으면. 제발 좀!
(밤낮을 바꿔 사는 은솔(가명)이와의 인터뷰를 독백으로 재구성)
초등 6학년 은솔(가명)이는 밤낮을 바꿔 산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해에 이 버릇이 들었으니 벌써 3년째다. 다른 친구들이 밖에서 볕을 쬐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낮 시간, 은솔이는 컴컴한 어둠 속을 홀로 헤매며 무기력과 사투를 벌인다. 아침은커녕 점심 식사도 건너 뛴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밤을 새기 위해 체력을 비축한다. 허기가 찾아오는 오후 5시가 돼서야 슬슬 몸을 움직인다. 교회 공부방에 들러 유일한 끼니인 저녁식사를 한가득 챙겨 먹고서야 기운을 차린다.
해가 지면 은솔이의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자정 넘도록 TV 앞을 지키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새벽 1시. 엄마 잔소리에 못 이겨 침대에 누워보지만, 이불 속 손가락은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모두가 곤히 잠든 깊은 밤, 스마트폰 작은 세상에서, 은솔이는 하루 중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아주 가끔 TV도, 게임도 지겨워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냥 멍하니 앉아 아침이 오길 기다려요. 해가 떠야 제 하루가 끝나고 그제서야 잠이 오니까요.
(스마트폰 의존 증상 겪는 은솔이의 밤)
지난달 8일과 23일 두 차례 한국일보 기자들과 만난 은솔이는 인터뷰 내내 축 늘어져 있었다. 연신 하품을 하거나 한숨만 쉬었다. 점심에도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피자 한 조각을 겨우 삼켰다. 은솔이를 만난 시간은 낮 1시. 올빼미 은솔이가 깨어 있기엔 너무 이른 때였다.
코로나 3년, 올빼미가 된 은솔이
은솔이 말이죠? 말썽 한번 일으킨 적 없던 아이였어요.
은솔이가 졸업한 유치원 김모 원장의 회고
저학년 때까지 은솔이를 알던 주변 사람들은 올빼미가 된 아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아이의 일상이 무너진 건 3학년이 되던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학교 문이 닫히면서부터다. 학교를 못 가고 친구들도 만날 수 없으니 자꾸만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스마트폰 뿐이었어요." 은솔이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이혼 이후 두 아이를 혼자 돌보는 엄마 김정아(40·가명)씨는 신장 질환을 앓는 둘째 은재(가명)를 데리고 병원을 쫓아 다니느라 은솔이를 돌봐주기 어려웠다고 한다. "큰 아이를 잘 챙기지 못하고,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았어요." 엄마는 후회했다.
등교 제한이 풀리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재개됐지만, 은솔이의 뒤바뀐 밤낮은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 선생님에게 빼꼼히 얼굴만 내비치고 침대로 피신해도 출석은 인정됐다.
그렇게 3년을 방학처럼 보내고 나니 은솔이에게 "학교는 매일 가야 하는 곳이 아닌, 안 가는 게 더 익숙한 곳"이다. 지난 학기부터 은솔이네 학교도 정상 등교에 들어갔지만, 은솔이는 5학년 수업 일수(최소 190일 이상)를 다 채우지 못했다. 최대 57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현장체험학습과 가정학습을 전부 소진하고 병원 진료 기록까지 내 다행히 유급은 면했지만, 앞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 엄마는 걱정이 앞선다.
교사 67% "아이들 정상등교 힘들어 해"
밤샘 게임으로 학교를 많이 빠지는 6학년 아이가 있었어요. 그래도 일단 졸업은 시켜야 하잖아요. 자더라도 학교 와서 자라고, 담임이 아이 집까지 매일 직접 깨우러 간 일도 있어요.
(경기 북부 지역 초등학교 상담교사 )
핸드폰에 파묻혀 밤낮을 바꿔 사는 은솔이처럼, 코로나 이후 상당수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제각각의 고충 탓에, 학교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던 과거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중이다.
한국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공동으로 전국 초등교사 7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교사 513명(66.5%)이 "학교 문이 다시 열린 후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응답했다. "아이들의 결석·지각·조퇴가 잦아졌다"고 답한 교사들도 283명(36.7%)이나 됐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서울 동남권 지역의 11년차 초등교사는 "등교 제한이 풀렸더라도 (하루 걸러 학교로 가는) 퐁당퐁당 등교가 일상이 되다 보니, 매일 등교로 바뀐 이후 아이들의 피로도와 내적 저항성이 커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느슨한 출결 관리 탓에 생활지도가 문제가 되자, 일선 학교들은 올해부터 체험학습과 가정학습 일수를 연 57일에서 연19일(보통 수업일수의 10%내로 제한)로 원상회복시켰다.
학교의 빈자리 파고든 스마트폰
한국일보가 만난 은솔이 사례처럼, 학교의 빈자리, 친구와 선생님의 부재를 파고든 것은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코로나 3년은 꽤나 많은 아이들을 '스마트폰 중독'으로 이끌었다.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스마트폰 과의존실태조사(2021)를 보면 중독 단계로 볼 수 있는 청소년(만10~19세)의 과의존 위험군(고위험, 잠재위험군) 비율은 37%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유아동(만3~9세) 과의존 위험군 비율도 28.4%로, 그 뒤를 이었다. 대한민국 청소년 3명 중 1명, 유아동 4명 중 1명은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을 견뎌내지 못하는 '블랭킷증후군'(특별한 물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증상)에 빠져있다는 진단이다.
왜 더 심해졌을까. 전문가들은 '세상과 연결되고픈 소통 욕구' 에서 그 답을 찾는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이현이 경기남부스마트쉼센터 소장은 "관계 욕구가 강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히 놀이 욕구를 채워주는 애착 물건을 넘어 외로움을 채워주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며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온라인 사람들과의 관계·소통에 더 집착하면서 폰과 한 몸이 된 것"이라 설명했다.
우울증·불안장애도 급증
불규칙한 등교,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불러온 일상 붕괴는 아이들의 마음을 끝내 무너뜨리는 중이다. 코로나 기간 정신 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이 가파르게 증가했는데, 그 추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신 및 행동장애(심평원 질병코드 기준)로 진료받은 영유아 및 청소년 환자수(중복 포함)는 2019년 321만명, 2020년 333만명, 2021년 360만명, 지난해 385만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특히 우울증, 불안장애, 심한 스트레스로 적응장애를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2019년 대비 우울증은 21만여명, 불안장애는 14만여명,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 장애는 6만여명 더 늘었다. 고의적 자해 등 극단 선택을 시도한 아이들도 코로나 시기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이 좋아 학교 문만 열리면 금세 다 좋아질 것'이라는 어른들의 설익은 낙관을 무색하게 만드는 수치다. 아이들의 마음 속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깊이, 그리고 넓게 새겨지고 있다.
소아청소년 심리 전문가들은 "이제부터가 마음 재난의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아동청소년 트라우마 전문가인 방수영 노원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든든한 울타리였던 학교, 사회, 부모의 혼란을 경험했다"며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겪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호받고 있던 안정된 세계와 일상의 루틴이 깨지는 건 어른들에게도 정신건강에 상당한 타격을 안기는데, 아이들은 오죽했겠어요." 방수영 교수는 아이들의 심리적 타격을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해요” C세대 트라우마
코로나로 얻은 거요? 슬픔이요.
저는 걱정이요.
전 불행이랑 불쾌를 얻었죠.
(휘봉초 4학년 황OO, 구로초 4학년 최OO, 휘봉초 4학년 서OO)
코로나로 잃은 건, 행복, 자유, 건강이요.
시간을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저는 단짝 친구를 잃었어요.
(휘봉초 4학년 조OO, 구로초 4학년 류OO, 휘봉초 4학년 황OO)
본보가 취재 중 만난 많은 초등학생들은 또렷하고 정확한 목소리로 '코로나 탓에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나열할 수 있었다. 당연히 누렸어야 할 많은 것들을 빼앗긴 것에 속상해 했다. 코로나 첫 해인 2020년 유치원 졸업 공연에 부모님이 오지 못해 너무 슬펐다는 주하(가명·휘봉초4)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저희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나이도 어린데 계속 마스크 써야 하고, 하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못하니까 억울하죠."
방수영 교수는 "①감염으로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와 불안 ②또래와 만나지 못하고 학교도 가지 못하는 일상 붕괴에 대한 억울함과 우울, 분노가 코로나를 겪은 아이들의 주된 정서"라며 "C세대(COVID Generation)의 정신 건강 위기는 어른이 돼서도 상당한 트라우마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면밀히 들여다보려는 정부와 교육당국의 노력은 충분치 않다. 정부는 '코로나19 회복 지원사업'에 2025년까지 연평균 4,600억원 남짓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아이들 마음을 보듬기보다는 주로 학력 격차를 줄이는 데 쏠려 있다.
외국은 반대다. 미국의 경우, 대면 교육 환경으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는 '복귀 로드맵'(Return Roadmap)을 실시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상담 및 전문가 투자가 핵심이다. 방 교수는 "학생의 사회적·정서적·정신적 건강 지원이 먼저고, 이를 바탕으로 학업 성취 기반을 끌어 올리겠다는 게 미국 정부의 취지"라며 "이에 비해 한국 교육부가 낸 코로나 대응 보고서 중 정신건강 분야는 전체 150쪽 중 한 쪽을 넘기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은솔아, 이제 학교에 갈 수 있겠니?"
"은솔이처럼 밤새 게임하느라 학교 못 가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해줄 말 있을까?"(김현수 교수)
"음... 도움 되는 거 없고, 재미는 있긴 한데 좋은 거는 아니라고..."(은솔이)
"은솔이 그럼 3월부터 학교 잘 갈 수 있겠어?"(김현수 교수)
"(좀 뜸들이다) 네, 바로 한번에 줄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조금씩 해볼게요."(은솔이)
밤낮을 바꿔 사는 아이 은솔이는, 지난달 23일 한국일보의 의뢰로 김현수 일산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상담을 받았다. 김 교수는 "은솔이는 홀로 방치되는 시간이 많아 외로움이 많은 아이인데, 코로나로 학교마저 가지 못하니 게임을 통해 관계를 맺는데 중독 되면서 현실의 일상은 포기하게 된 경우"라고 진단했다.
코로나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보라는 말을 듣자 은솔이는 갈색 건물 하나를 덩그러니 그리고 말았다. 거기에 사람은 없었다.
학교에요.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못 갔으니까. 가고 싶었어요.
스마트폰만 쥐고 살며 학교엔 관심도 없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은솔이는 사실 속으로 누구보다 학교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외로움 피해 스마트폰으로 도망간 은솔이... 김현수 교수의 처방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22516510005383)
▶코로나 키즈 스트레스 진단, 우리 아이 마음 상태 그림 검사로 읽어보세요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COVIDKids/)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