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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강아지와 함께 봄이 눈앞에 다가왔어요

입력
2023.02.27 04: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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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차림한 몽실한 버들강아지
희귀 식물 키버들은 원예 품종으로 인기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갯버들 꽃은 강아지의 작달막한 꼬리를 닮아서 버들강아지 또는 버들개지로 불린다. 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서 봄을 부르는 전령으로 통한다. 아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갯버들 꽃은 강아지의 작달막한 꼬리를 닮아서 버들강아지 또는 버들개지로 불린다. 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서 봄을 부르는 전령으로 통한다. 아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개천가에 버들강아지가 피었다. 시골 강아지의 작달막한 꼬리를 쏙 빼닮은 갯버들의 꽃이 눈에 유독 잘 들어온다. 그 보송보송한 털 뭉치 같은 건 사실 한 송이의 꽃이 아니다. 실제 갯버들 꽃은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낱개의 꽃이 모여 피어 말미잘 비슷한 모양이다. 가늘고 연약한 그 꽃들만으로는 뭔가 엉성하고 허술하다. 혹한을 견딜 수도 없다. 그래서 꽃과 꽃들 사이 빈틈을 털로 촘촘하게 채우고 일종의 방한 차림을 한 게 우리가 보는 몽실한 버들강아지 모습이다. 그러니까 갯버들 수백 개의 꽃이 모여 핀 집합체를 털이 엄호하고 있는 ‘꽃차례’ 그 자체가 버들강아지다.

갯버들 암꽃(왼쪽 사진)과 수꽃. 갯버들은 암수딴그루로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다른 모습으로 핀다.

갯버들 암꽃(왼쪽 사진)과 수꽃. 갯버들은 암수딴그루로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다른 모습으로 핀다.

갯버들은 암수딴그루다.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다른 모습으로 핀다. 꽃이 너무 작고 가늘어서 흘깃 봐서는 그들 성(性)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갯버들 꽃핀 나무가 보이면 그래서 나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자세히 관찰한다. 암꽃인지 수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꽃밥이 마구 터져서 꽃가루가 흥건하네, 수그루구나. 근처에 암그루가 있겠네, 하고 주변을 살피는 식이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보게 된다. 오동보동한 털 뭉치 사이에 암술대를 쏙 내민 암꽃을. 그러면 호주머니에서 휴대용 루페(식물 확대경)를 꺼내 꽃 가까이 갖다 댄다. 암술은 주꾸미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끝이 벌어져 있다. 수꽃이 배출한 꽃가루를 받기 위해서다. 수꽃이 몸 밖으로 내보낸 꽃가루를 암꽃이 제 몸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한 입구와도 같은 곳. 우리가 암술머리라고 부르는 암술대의 끝은 말하자면 꽃가루가 암술대를 타고 내려가 밑씨에 닿는 것을 가장 먼저 허락하는 장소와도 같다.

그렇게 수정을 하고 잉태에 성공하면 열매가 여문다. 갯버들 잎이 무성해지는 5월 초 어름에 다 익은 열매가 쩍 하고 갈라진다. 그 안에서 하얀 털을 단 씨앗이 나온다. 목화씨를 닮은 솜털 같은 자식을 갯버들은 비로소 얻는 것이다. 더 많이 더 멀리 가닿기 위해서 바람을 타고 둥둥 온 사방에 씨앗이 번질 것이다. 추위에 맞서 털로 무장한 채 암수가 꽃을 피우고 서로에게 사랑을 구하고 DNA를 섞고 그렇게 얻은 씨앗을 정교하게 퍼뜨리는 일련의 과정은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갯버들의 숭고한 행위다.

키버들의 꽃과 열매. 이른 봄에 포유류 새끼 귀를 닮은 꽃을 피우고(위 사진), 잎이 무성해질 무렵 열매를 맺고 솜털을 단 씨앗을 퍼뜨린다(아래).

키버들의 꽃과 열매. 이른 봄에 포유류 새끼 귀를 닮은 꽃을 피우고(위 사진), 잎이 무성해질 무렵 열매를 맺고 솜털을 단 씨앗을 퍼뜨린다(아래).

갯버들 사는 자리에 종종 키버들이 섞여 산다. 형제 식물이라 그 둘은 서로 닮았다. 꼼꼼히 따져봐야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가지에 털이 수북한 갯버들과 달리 키버들은 매끈하다. 반드러운 그 가지는 탄력 있게 잘 휘어진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키버들 가지를 모아서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를 만들어 썼다. 갯버들은 가지를 가운데 두고 꽃도 잎도 삐뚤빼뚤 어긋나게 달리지만 키버들은 반듯하게 마주 보며 달린다. 그래서 이맘때 피는 키버들 꽃차례는 포유류 새끼가 양쪽 귀를 동시에 쫑긋 세운 것처럼 보인다. 갯버들은 민가 주변과 얕은 하천과 깊은 계곡을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 살지만 키버들은 인적 뜸한 곳에서 비교적 드물게 사는 편이다. 그래서 갯버들에 비해 키버들은 희귀 식물에 속한다.

정원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키버들이 좀 익숙할 수 있다. 키버들(또는 개키버들)을 개량한 원예품종이 제법 명성을 얻어서다. 꽃 지고 나서 돋아나는 키버들 잎은 기질상 가지의 맨 꼭대기 새순 몇 장이 볼그스름하다. 그 특징을 살려서 연분홍부터 진분홍까지 잎에 아롱대는 무늬가 있는 품종이 개발되었다. 버드나무처럼 삐쭉 너무 크게 자라지 않고 같은 체구의 갯버들에 비해 단정한 모양새고 잎에 꽃잎 같은 무늬가 장식처럼 박혀 있어서 정원을 돋보이게 하는 키버들의 성정. 영국 왕립원예협회로부터 ‘가든메리트상(Award of Garden Merit)’을 받으면서 권위를 세우기도 했다.

무늬가 들어간 키버들 품종(위 사진), 새순이 붉은 자생지의 키버들. 붉게 틔운 새잎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록색으로 변한다(아래).

무늬가 들어간 키버들 품종(위 사진), 새순이 붉은 자생지의 키버들. 붉게 틔운 새잎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록색으로 변한다(아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몇 해 전부터 지역 농가에 도움이 될 식물을 골라 모종을 생산하고 재배 기술을 개발해 주민들에게 안내한다. 그간에 키버들 품종을 재배하는 농가도 생겼다. 사과 과수원이 특히 많은 경북 봉화의 어느 과수원 옆에 가면 사과꽃무늬가 잎에 아롱아롱 새겨진 키버들 품종이 밭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 핀 버들강아지가 스러질 무렵 그 나무들 잎이 사과꽃처럼 피기 시작한다.

아직 몇 번의 추위를 더 통과할 테지만 그래도 버들강아지가 피었으니 봄이 거의 다 왔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허태임의 초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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