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권도형 상대 민사소송... "증권 맞다"
한국서도 최대 쟁점, 檢 주장 입증에 도움
美 법원 판결 봐야... "국내 법원에도 영향"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테라ㆍ루나 폭락 사태’를 촉발한 핵심 인물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준사법기관인 SEC가 가상화폐의 ‘증권성’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어서 권 대표를 수사 중인 한국 검찰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미 법원마저 SEC의 판단을 받아들이면, 아직 가상화폐의 증권 성격을 용인하지 않은 국내 사법부의 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테라·루나는 증권"... SEC, 한국 검찰과 같은 판단
SEC는 앞서 16일(현지시간) 테라ㆍ루나 발행사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를 미 연방 증권거래법상 사기 및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뉴욕 연방지법에 제소했다. SEC는 고발장에서 “권 대표가 증권법이 요구하는 등록 없이 증권을 팔았다”며 피해 규모를 최소 400억 달러(약 52조 원)로 적시했다. 가상자산을 사실상 ‘미등록 증권’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SEC의 제소는 한국 검찰에 고무적 소식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도 권 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데, 테라ㆍ루나를 증권으로 봐야 이 혐의가 성립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가상화폐의 증권성이 인정받은 전례가 없다. 실제 검찰은 권 대표와 함께 테라폼랩스를 창립한 신현성(37)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의 신병 확보에도 실패했다.
검찰은 그가 사업 시작 전 발행된 루나를 보유하고 있다가 지난해 5월 폭락 직전 팔아 1,400억 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판단했다. 이에 신 전 대표에게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으나, 재판부는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핵심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SEC가 동일한 사건 및 피의자에 대해 한국 검찰의 주장과 결을 같이 하는 판단을 내린 만큼, 호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재산상 이익을 편취하면 사기죄가 성립되지만, 투자 범죄의 경우 재산상 이익을 얼마나 얻었는지, 기망 의도 등을 판단하기 어려워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를 적용하는 편이 범죄 입증에 훨씬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SEC 고발장이 한국 검찰과 다른 점은 신 전 대표를 피고발인 명단에 올리지 않은 정도다. SEC는 혐의를 조목조목 나열한 권 대표와 달리 신 전 대표에 대해선 공동창립자라고 몇 차례 언급한 게 전부다. 두 사람을 비슷한 비중의 피의자로 여기는 한국 검찰과 가장 큰 시각차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을 주도한 대표 인물 위주로 조사하는 SEC 관행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최종 열쇠는 한국 법원이 쥐고 있어"
다만 SEC의 고발이 테라ㆍ루나의 증권성을 법적으로 담보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아직 제소 단계라 법원 판결이 나와봐야 안다. 만약 재판 과정에서 미 법원도 SEC 측 주장을 수용하면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인정한 중요 판례가 되고, 한국 검찰도 재판부를 설득하는 핵심 논거가 될 수 있다.
선례가 될 만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SEC는 앞서 2020년 말 가상화폐 ‘리플(ripple)’ 발행사를 테라ㆍ루나와 같은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제소했는데, 이르면 내달 판결이 나온다. 쟁점은 역시 리플의 증권성이 있느냐, 없느냐다. 결과에 따라 가상화폐 관련 소송의 지각변동이 예상돼 금융감독원 등 국내 금융당국도 재판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테라ㆍ루나를 증권으로 본 SEC 제소는 긍정적 요인”이라면서도 “한국 내 가상자산의 성격을 판단하는 주체는 결국 우리 법원인 만큼 미 소송 추이를 살피면서 증권성 입증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과 SEC 외에 뉴욕 남부연방지검도 테라ㆍ루나 사태를 수사하고 있다. 해당 사실은 지난해 12월 “샘 뱅크먼-프리드가 이익 실현을 목적으로 테라ㆍ루나를 대량 매도해 폭락 사태를 일으켰다는 의혹을 미 연방검찰이 조사하고 있다”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알려졌다. 샘 뱅크먼-프리드는 지난해 말 파산한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전 최고경영자(CEO)다. 미 연방검찰은 얼마 전 그를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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