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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비용은? '썸'만?... 연애 예능이 보여주지 않는 청춘들의 연애

입력
2023.02.25 04:30
수정
2023.02.25 10:4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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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실루엣으로 처리되는 돈과 성문화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는 연애와 미디어 산업,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지난해 전파를 탄 연애 예능 '나는솔로'의 방송 화면. 파트너를 최종 선택한 후 출연자들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ENA 플레이·SBS 플러스 캡처

지난해 전파를 탄 연애 예능 '나는솔로'의 방송 화면. 파트너를 최종 선택한 후 출연자들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ENA 플레이·SBS 플러스 캡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청춘들의 연애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는데, 최근에는 그 자리를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차지한 것 같다. 요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 드라마는 장르를 표방해도 결국 남녀 간 로맨스로 끝난다는 지탄을 받았던 것이 언제 적 소리인가 싶게 아득하게 느껴진다. 대신 재작년 '나는SOLO', '환승연애'와 같은 연애 리얼리티 쇼가 예상 밖의 인기를 끌자 비슷비슷한 포맷의 쇼들이 우후죽순으로 기획, 방영되면서 이제는 연예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연애가 우리의 시야를 장악했다.

궁금해졌다. 누가, 무엇에 재미를 느끼면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볼까. 한국의 청춘들은 연애를 할 여유가 없다고, 혹은 연애에 흥미를 잃었다고 한 지가 10년을 훌쩍 넘었다. 여유 없는 청춘들이 연애에 뒤이어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그리고 희망 순으로 포기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3포, 5포, 7포 세대라는 용어는 2010년대 내내 언론과 학술장을 망라한 한국의 담론장을 떠돌았었다. 한편 2010년대 중반 이후 미투운동과 더불어 젊은 여성들이 주도한 ‘4B 운동’도 청춘과 연애 사이 자연스럽게 여겨져 온 연결에 의문을 제기했다. 4B란 4非의 다른 표기로, 연애와 섹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남성들과 다르지 않게 교육받고 격려받으며 자라온 젊은 여성들이 가부장적 논리가 남아있는 친밀성 제도에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말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누가, 어떤 재미를 맛보면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일까. 프로그램에 나오는 인물들 누가 누구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이어지고, 혹은 안 이어지는 상황이 왜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것일까. 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우선 이 프로그램들은 현재 청춘들의 연애 경험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민주화, 자유화된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MZ 세대는 연애 문화에 익숙하다. 지금 연애를 ‘포기’ 혹은 ‘거부’하는 이들도 초등학교 때부터 연애가 장려되며, 사귐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러니 고등학생 정도 되면 다들 나름의 연애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연애를 ‘안’ 하거나 ‘못’ 한 경우도 고백, 거절, 자신에 대한 의심 같은 개인사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성과의 연애뿐 아니라 동성에 대한 두근거림과 관계도 포함된다. 이런 문화는 옛날 옛적 ‘남녀칠세부동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함께 관계에서의 불확실성 경험을 동시에 선사한다. 감정은 구속할 수 없기에 어제 좋아 죽다가도 내일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연애관계인 것이다. 그러니 주위의 많은 가능성을 주의 깊게 살피고, 관리하며, 헤어짐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지혜로 떠오른다. ‘썸’을 타고, 어장 ‘관리’를 하며, ‘쿨’하게 헤어지는 것은 이 세대의 유행어를 넘어서 연애 생활의 윤리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이들에게 지금은 헤어진 커플들이 한 집에서 지내며 재회와 새로운 관계 가능성을 모두 탐색하는 '환승연애', 그리고 이성과의 짝짓기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 동성에게도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은 더할 나위 없는 정서적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3년 넘게 사귀며 징글징글한 서사를 쌓아온 보현과 호민의 재회와 새로운 관계의 풋풋한 설레임이 전달되는 보현과 재민의 시작을 둘러싼 논쟁(?)과 스민장미 커플에 대한 응원이 그토록 뜨거웠던 이유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온 청춘들의 자기 경험을 떠올리게 했기에 그랬던 것이다.

연애 예능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에서 여성 출연자가 다른 여성 출연자를 향해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있다. 웨이브 유튜브 캡쳐

연애 예능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에서 여성 출연자가 다른 여성 출연자를 향해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있다. 웨이브 유튜브 캡쳐

그런데 연애를 장려한 것은 민주화, 자유화된 사회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연애의 가장 강력한 우군은 소비문화라 해야 할 것이다. 요즘 청춘들이 소비 상품이 빠진 데이트를 상상할 수 있을까? 관계에서 매력적인 외모를 가꾸기 위한 각종 미용, 화장, 운동, 패션 산업, 데이트와 관계 유지를 위한 상품, 식음료 포함 외식, 문화산업의 규모는 굳이 숫자를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환승연애'에서 출연자들이 함께 지내는 멋지고 쾌적한 단독주택은 지금 가장 핫한 소비의 거리인 한남동에 위치한다. 이들의 데이트는 모두 잘 꾸며진 상업적 공간에서 이뤄지며 상호와 함께 제시된다.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의 무대는 호텔이고 말이다. 그나마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나는SOLO'가 평범한 펜션에서 벌어지는 짝짓기를 다루고 있지만 상업적 공간이 아닌 곳에서 이뤄지는 데이트는 없다. 또한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요즘엔 차 없는 사람은 데이트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연애에는 ‘돈이 든다’.

게다가 현재 사정은 이 정도에서 훨씬 더 나아간다.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며 그 나름의 인지도를 얻은 이들(microcelebrity)이다. 이들은 주목을 받는 것이 경제적가치 창출의 중요한 부분이 된 오늘날의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ics) 회로 속에서 자신의 연애와 사생활,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함으로써 주목을 끌고자 한다. 이것은 출연자들이 ‘관종’이라는 비난이 아니다. SNS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와 이를 기반으로 변화한 매체 환경이 인간의 모든 활동을 경제적가치 창출의 요소로 통합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런 환경에서는 SNS를 이용하는 한 누구나 조금씩은 ‘관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SNS와 이를 통해 가능해지는 유형, 무형의 경제적가치 창출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프로그램에서 행동하는 게 가능할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출연자들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시간 내내 복잡한 짝짓기의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연출해야 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점점 더 자신을 연기해야 하는 직업적, 매체적 환경에 놓이기에 이들의 자기연출은 예외적 개인들의 특이한 행동이 아니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연애 예능 '솔로지옥2'의 출연자 등장 장면.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연애 예능 '솔로지옥2'의 출연자 등장 장면.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그렇다면 이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보여주지 않는 현재 청춘들의 연애 경험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돈과 섹스라고 생각한다. 돈이 드는 연애를 하기 위해, 그리고 주목 경제의 지점으로서 청춘들이 겪는 지난한 과정은 이런 프로그램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한 번씩 돌출하는 출연자의 사연(예컨대 ‘가난한 연애’를 하기 싫어 헤어졌다는 남자 출연자)이나 관리되지 않는 표정을 카메라에 들키지 않기 위해 화장실이나 이불 속으로 숨는 출연자들의 실루엣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감지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보아야 하는 건 그와는 상관없는 짝짓기라는 방송의 문법에 순응한다. 출연자들이 요즘 ‘핫플’에서 데이트를 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그들이 연출하는 예쁜 ‘그림’ 뒤에 숨어버린다. 이런 면에서는 이성들 앞에서 직업뿐 아니라 소유 부동산까지 ‘까는’ '나는SOLO'가 솔직함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해야 할까. 하긴 '나는SOLO' 출연자들의 목적은 결혼이었지!

연애에서의 섹스 이슈는 이 정도도 누설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들은 연애 관계에서 데이트 코스의 정석인 만나서 영화 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 모텔이나 호텔 가기에서 모텔의 문 앞에서 멈춰 그것을 비추지 않고 돌아선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압박으로 느끼는 남성 파트너의 성적 욕망 충족이나 많은 젊은 남성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성관계의 합의 표시에 대해 이 프로그램들은 시치미를 뚝 뗀다. 이 점에 있어서 서구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해 봄 직 하다. 예컨대 제목부터 '투핫(Too Hot To Handle)'과 같은 서구 특히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대놓고 섹시한 몸을 짝짓기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로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성관계와 관련한 소통, 욕망, 압력의 문제가 다뤄지기보다는 관계와는 동떨어진 몸과 성적 욕망만이 부각된다.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감정과 커플이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온라인에서는 흔히 ‘썸 예능’이라고 불린다) 서구의 그것은 몸과 섹스에 방점을 찍는 식이다. 한국판 '투핫'을 표방한 '솔로지옥'은 막상 까 보니 한국식의 ‘썸 예능’에 가깝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섹시한 몸과 외모에 대한 문화적 압력이 적지는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루려고 한다.

다큐멘터리 '애프터미투' 한 장면. 유튜브 캡처

다큐멘터리 '애프터미투'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누락하는 청춘들의 섹스 문제에 대해서는 몇 달 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애프터미투'를 참고할 만하다. (마침 OTT에 올라와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의 청춘들이 직면한 섹스에서의 난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성적 욕망을 조금이라도 표현한 경우 폭력을 당해도 성폭력 피해자로 간주되지 않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일상에서 고투하고 있는 사례들은 한국 연애 문화 내 성의 위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최근 비동의 간음죄를 둘러싼 격렬한 반응들은 내내 회색지대에 놓여있는 우리의 성문화와 인식을 다시 한 번 드러내면서 지속적인 토론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결국 오늘의 결론은 이거다. 우리에겐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연애 말고 보여주지 않는 연애 경험에 대한 이야기, 재현, 해석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신현경 교수는?

서울여대 교양대학에서 젠더 관점의 역사, 노동, 문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연애의 젠더/섹슈얼리티 문화사, 미디어 산업과 연예인, 한류의 젠더/섹슈얼리티 정치학, 동아시아 냉전과 일본군 ‘위안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글을 쓴다. '왕자가 된 소녀들', '모래',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등 몇 편의 다큐멘터리 기획과 제작에도 참여했다. 쓴 책으로 '이토록 두려운 사랑: 연애불능시대, 더 나은 사랑을 위한 젠더와 섹슈얼리티 공부'(반비, 2018), 함께 쓴 책으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휴머니스트, 2018), '페미니스트 타임워프'(반비, 2019)가 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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