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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교문 밖에서 분투한 아이들... 그중 누군가에게 팬데믹은 기회였다

입력
2023.03.07 04:30
수정
2023.03.07 22: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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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②-1]
조손가정 지후와 강남키즈 윤재의 엇갈린 경험

편집자주

“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 소설 ‘피터팬’의 첫 문장입니다. 어쩌면 한국엔 여느 아이들처럼 제때 자라지 못한 ‘피터팬 세대’ 가 출현할 지 모릅니다. 길었던 거리두기, 비대면수업 탓에 정서·사회적 발달이 더뎌진 ‘코로나 키즈’ 말입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아이들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상실을 방치하면, 소중한 미래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그 회복에 필요한 어른들의 노력을 함께 짚어 봅니다.


팬데믹 기간 비대면 수업 전환으로 교육의 주도권은 완벽하게 ‘학교’에서 ‘가정’으로 이양됐다. 개별 가정의 경제·사회적 여건에 따라 아이들의 생활환경과 학습 여건은 천양지차였다. 부모와 조부모의 든든한 지원하에 등교 공백의 2년간 도리어 ‘축적의 시간’을 보낸 윤재(왼쪽)와 자신만의 공부방도 공부할 책상도 없어서 침대 위에 밥상을 펴놓고 원격수업을 들었던 지후. 최주연 기자

팬데믹 기간 비대면 수업 전환으로 교육의 주도권은 완벽하게 ‘학교’에서 ‘가정’으로 이양됐다. 개별 가정의 경제·사회적 여건에 따라 아이들의 생활환경과 학습 여건은 천양지차였다. 부모와 조부모의 든든한 지원하에 등교 공백의 2년간 도리어 ‘축적의 시간’을 보낸 윤재(왼쪽)와 자신만의 공부방도 공부할 책상도 없어서 침대 위에 밥상을 펴놓고 원격수업을 들었던 지후. 최주연 기자


코로나 때 좋았어요, 학교를 안 가니까요.

(초등학교 4학년 지후에게 코로나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온라인 개학과 함께 덜컥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후(10·가명)는 2년의 '등교 공백'을 떠올리며 "쉴 수 있어 좋았다"고 회상했다.

정말 좋았을까? 비대면 수업 기간에 있었던 지후의 경험을 들어봤다. 지후네 집은 조손가정. 할머니·할아버지와 셋이 산다. 책상이 없어 작은 나무 밥상을 침대 위에 펴놓고 원격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선생님 보살핌을 못 받는 비대면 수업이었기에 학부모 역할이 필수적이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겐 지후 학습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할아버지(72)는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 가장인 할머니(68)는 아침에 일을 나설 때마다 혼자 놓고 가는 손주가 늘 눈에 밟혔다. "집에 공부 봐줄 사람도 없고, 내가 일 나가면 공부하는지 지켜볼 사람도 없으니 1·2학년은 건너뛴 거라고 봐야죠."

지후는 그렇게 학교도 학원도 없이 2년을 홀로 버텼다. 지후에게 학교는 스마트폰 속 줌 어플에서나 존재하는 곳이었다. 또래들과 어울릴 기회는 없었고, 핸드폰이 유일한 벗이었다. 할머니는 "난 그런 거(디지털) 잘 모르는데, 애가 혼자 연결해서 수업도 듣더라”고 대견해하면서도 “맨날 게임만 하고 집에서 생전 공부하는 걸 못 봤다”며 답답해했다.


핸드폰 벗 삼은 '집콕 소년'에게 등교는 시련

교실보다 줌이 익숙한 지후에게, 지난해 찾아온 전면 등교는 '기쁨'이 아닌 '시련'이었다. 갑자기 닥친 단체생활은 벅찼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지만은 않았다.

저는 멍청해요. 친구도 없어요.

(지후가 평가하는 자신의 모습)

지후는 아픈 말도 스스로에게 툭툭 내뱉었다. 뭔가를 이뤄본 적 없는 지후는, 그래서 자존감도 많이 깎여나간 상태였다.

원격수업을 했던 1학년(왼쪽) 시기와 전면 등교를 시작한 3학년 시기 지후의 생활시간표. 작년부터 '학교'와 '샌터(센터)'가 추가됐을 뿐, '놀기'와 '잠'이 전부인 아이의 단조로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주연 기자

원격수업을 했던 1학년(왼쪽) 시기와 전면 등교를 시작한 3학년 시기 지후의 생활시간표. 작년부터 '학교'와 '샌터(센터)'가 추가됐을 뿐, '놀기'와 '잠'이 전부인 아이의 단조로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주연 기자

지후는 작년 5월부터 담임 선생님 소개로 나간 지역아동센터에 다행히도 정을 붙였다. 조금씩 또래와 어울리고, 다정한 '쌤'들과 공부하고 응원받고, 끼니도 잘 챙겨 먹으며, 조금씩 자신만의 속도로 정서적 안정과 기초 학력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이현숙 지역아동센터장은 "지후가 초반에는 '이 동네를 뜨겠다' '센터를 폭파시키겠다'며 험한 말들도 했지만, 지금은 자신감도 생기고 활달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센터에서도 학습 공백을 메우는 일만은 쉽지 않다. 3학년 1학기 성적 통지표에서 지후는 영어는 전 영역, 수학 도형 영역은 '노력 요함(△)'을 받았다.

지난달 19일 지후(가명)가 집 거실 벽에 붙은 한글 공부 벽보와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는 “공부도 공부지만 우리 지후가 친구도 잘 사귀고, 나가서 놀고 그랬으면 좋겠다. 키도 좀 크고...”라며 안타까워했다. 최주연 기자

지난달 19일 지후(가명)가 집 거실 벽에 붙은 한글 공부 벽보와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는 “공부도 공부지만 우리 지후가 친구도 잘 사귀고, 나가서 놀고 그랬으면 좋겠다. 키도 좀 크고...”라며 안타까워했다. 최주연 기자

사실상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도 이대로면 지후가 또래보다 뒤처지고 말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아휴, 학원이고 뭐고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건데. 여유가 없으니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15년째 식당 일을 하는 할머니는 눈시울만 붉힐 뿐이었다.

기자가 다섯 번 물어보면 한 번이나 대답할까 과묵했던 아이 지후. 좋아하는 게임 얘기를 꺼내면 신나서 술술 말하다가도, 학교생활을 물으면 침묵했다. 항상 무표정했던 지후는 할머니와 함께 사진 찍을 때만 부끄러운 듯 수줍은 미소를 드러냈다. 과격한 듯 보여도 집에서 개운죽과 물달팽이 같은 여린 동식물을 기르는 섬세한 아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비대면을 축적의 시간으로 만든 아이

지난달 20일 윤재(가명)가 거실에 있는 본인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원격수업을 듣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윤재는 여느 또래 아이처럼 까불대다가도 공부 얘기가 나올 때만 사뭇 진지해졌다. 기자와 엄마와의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하고 싶은 말, 궁금한 게 많은 듯 눈이 반짝였다. 최주연 기자

지난달 20일 윤재(가명)가 거실에 있는 본인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원격수업을 듣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윤재는 여느 또래 아이처럼 까불대다가도 공부 얘기가 나올 때만 사뭇 진지해졌다. 기자와 엄마와의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하고 싶은 말, 궁금한 게 많은 듯 눈이 반짝였다. 최주연 기자


공교육이 취약했던 지난 2년은 (각자가 알아서 살아야 했던) 각자도생의 시기였어요.

(강남 키즈 윤재 엄마가 본 비대면 수업 시기)

지후와 2013년생 동갑내기인 윤재(10·가명). '강남 키즈'인 윤재는 △부모의 확고한 교육관 △정서·경제적 지원 △조부모 돌봄 덕분에 팬데믹 기간 중 오히려 ‘축적의 시간’을 보냈다.

윤재는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 졸업식과 초등학교 입학식을 못 간 게 아쉽다"면서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가족, 특히 엄마와 얘기할 시간이 늘었고 더욱 친해졌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엄마는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평일엔 돌봄을 위해 외할머니가 항상 집에 계셔서, 윤재는 혼자였던 적이 없다.

원격수업을 했던 1학년(왼쪽) 시기와 전면 등교를 시작한 3학년 시기 윤재의 생활시간표. 코로나가 한창 심하던 2020년에도 피아노 학원, 영어 학원, 수학 공부, 독서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최주연 기자

원격수업을 했던 1학년(왼쪽) 시기와 전면 등교를 시작한 3학년 시기 윤재의 생활시간표. 코로나가 한창 심하던 2020년에도 피아노 학원, 영어 학원, 수학 공부, 독서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최주연 기자

비대면 수업 때도 윤재는 오전 8시 일어나, 9시에 외출복 차림으로 거실 책상에서 ‘40분 수업·10분 휴식’에 맞춰 공부했다. 자기 방은 따로 있지만,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거실이 주 학습 공간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영어·수학 등 교과목뿐만 아니라 음악·체육·미술·코딩 등 여러 학원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거실 공부방과 학원에서 1년을 보내고 2학년에 진학한 후 3월 기초학력 진단평가에서 윤재는 수학에서 100점을 맞았고, 국어는 하나만 틀렸다. 3년 내내 성적표는 '잘함(◎)'이었다.

올해 4학년인 윤재(가명)와 윤재 동생이 주로 학습하는 거실 공부방. 코로나 때도 윤재네는 엄마와 외할머니 등 보호자가 항상 집에 있었다. 다른 집에서라면 TV가 거실 한 쪽을 차지했겠지만, 윤재네 TV는 오른쪽 책장 아래 숨겨져 있다. 평일엔 아이 어른 모두 텔레비전 시청이 금지다. 주말에만 정해진 시간 동안 시청하도록 교육해, 자연스럽게 미디어 과의존을 예방하는 취지라고 윤재 엄마는 설명했다. 최주연 기자

올해 4학년인 윤재(가명)와 윤재 동생이 주로 학습하는 거실 공부방. 코로나 때도 윤재네는 엄마와 외할머니 등 보호자가 항상 집에 있었다. 다른 집에서라면 TV가 거실 한 쪽을 차지했겠지만, 윤재네 TV는 오른쪽 책장 아래 숨겨져 있다. 평일엔 아이 어른 모두 텔레비전 시청이 금지다. 주말에만 정해진 시간 동안 시청하도록 교육해, 자연스럽게 미디어 과의존을 예방하는 취지라고 윤재 엄마는 설명했다. 최주연 기자

윤재 엄마(42)는 아이가 등교하지 못하는 동안 학업성적에 대한 우려는 물론이고 생활습관이 무너지고 사회성 발달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그는 "학교를 가도 '친구 만지지 마라' '대화 말아라' 같은 접촉 차단 방법부터 가르치니, 아이 인성이 어찌 될까 걱정됐다"며 "친구와 싸우고 화해도 하며 사회성이 자라는 건데 그게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아이 학습과 생활습관을 잡아주며 △‘하루 10분 부모님 돕기’ 같은 인성·사회성 교육 △회복탄력성과 자존감 기르기 △예체능·기술(코딩) 교육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팬데믹에 공교육 휘청... 격차는 더 커졌다

뭐든 혼자 해야 했던 지후, 어른들 도움을 받아 부쩍 성장한 윤재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팬데믹 기간 교육의 주도권은 완벽하게 학교에서 가정으로 이양됐다. 비대면 원격수업은 공교육이 지탱하던 ‘보편교육’의 틀을 무너뜨렸고, 공교육이 힘겹게 메워가던 아이들 간의 '기회의 격차'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고 말았다.

원격수업은 학업과 방역,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라도 잡아보려는 교육당국의 안간힘이었지만, 그 변화의 속도를 혼자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이 많았다. 취재 도중 본보 기자들과 만난 한 취약계층 아이는 "줌 수업 너무 싫었다"며 "휴대폰으로 들으니 연결도 자주 끊기고, 말도 잘 안 들리고, 채팅 치기도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지난 2021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담임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21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담임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 원격수업 준비를 돕고 지켜봐 줄 보호자가 있는지 △PC, 태블릿, 휴대폰 중 무엇으로 원격수업에 접속하는지 △인터넷 연결은 매끄러웠는지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기를 여건이 되는지 △학원·센터처럼 등교 공백을 메워줄 학습 조력자가 있는지 △하다못해 아이만을 위한 공간(방)과 책상이 있는지에 따라 원격 학습의 여건은 천양지차였다.

교실 내 수업이었다면 누구나 같은 인프라를 누리며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겠지만, 학업이 집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되자 가정의 천차만별 경제·사회적 여건이 아이들 수업의 질을 좌우하게 됐다.

코로나발 학력 저하는 이미 현실화

팬데믹 초기부터 예견됐던 기초학력 저하, 학습 격차 증대는 이미 현실 속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매년 중3·고2 학생 일부(3%)를 표집해 실시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코로나 전후 비교 시 중위권은 줄고 최하위권이 늘어나는 추세다. 예컨대 2019~2021년 기초학력 미달(1수준) 비율이 중3 국어는 4.1→6.4→6.0%로, 고2 영어는 3.6→8.6→9.8%로 늘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현장 교사 중심의 기초학력 연구 모임 '좋은교사운동 배움찬찬이 연구회'의 김중훈 대표는 "코로나 이후 대도시 취약계층과 읍면지역을 중심으로 기초학력 저하를 체감하는 현장 교사가 많다"고 말했다. 연구회에서 확보한 '기초학력 진단평가' 일부 결과를 보면, 취약층이 많은 수도권 A초등학교는 수학·영어 미도달 학생 비율이 약 20%에 달하고, 지방 읍면지역 소재 B교육지원청 산하 학교에서도 영어 미도달이 2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난다.

기초학력 진단평가는 매년 새학기 3월, 초1~고1 학생들이 필수적 교과 기본 학습 내용을 갖추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한 것으로 결과는 '도달/미도달'로만 평가된다.

일선 교육·보육 현장에서도 학습결손을 실감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김기선 충북 충주시 두레지역아동센터장은 “학습 구멍이 너무 심각하다"고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특히 (학습 위계가 있는) 수학은 보통 초 2·3학년에 사칙연산은 완성하고 응용문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원격수업 때 저학년이었던 애들이 단순 계산도 어려워하다 보니 기초부터 다시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봄방학 중이던 지난달 20일 인천 동구의 '행복배움학교'(인천형 혁신학교) 서흥초에서 한 저학년 아동이 시니어 교사와 함께 기초학력 보완 캠프 수업을 받고 있다. 최주연 기자

봄방학 중이던 지난달 20일 인천 동구의 '행복배움학교'(인천형 혁신학교) 서흥초에서 한 저학년 아동이 시니어 교사와 함께 기초학력 보완 캠프 수업을 받고 있다. 최주연 기자

전북의 12년차 초등교사는 “코로나 때 유튜브·게임 같은 미디어 노출은 늘고, 사회적 의사소통은 줄어들면서 문해력, 과제·문맥 파악 능력 자체가 떨어졌고, 이게 기초학력 문제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경기 북부 지역에서 일하는 초등 상담교사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 중엔 팬데믹이던 1·2학년 때 조기 발견·개입 없이 방치되다 3학년 때 한글도 못 뗀 채 학교로 돌아온 애들도 꽤 된다”고 전했다.

위기감을 느낀 일부 교사는 원격수업 때 도움이 필요한 아동을 학교로 불러, 대면 개별지도로 '벌충'에 나서기도 했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박자영(30·가명) 초등교사는 "2020년에는 아이들 간 온라인 과제물 편차가 너무 커, 같은 과제여도 어떤 애는 A4용지를 꽉 채워 내고 어떤 애는 두세 줄 써서 냈다"며 "부모님이 맞벌이인 한 아이는 아예 빈 교실로 불러 제 옆에 앉혀놓고 원격수업을 듣게 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공백' 메우려 고군분투한 지역아동센터

지난달 19일 축구선수가 꿈인 승빈(가명)이가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다. 원격수업 전환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생활습관이 무너지고, 학습에 의욕을 잃던 코로나 시기에 승빈이는 문을 열었던 '지역아동센터'에 꾸준히 다닌 덕분에 큰 타격 없이 이 시간을 지냈다. 최주연 기자

지난달 19일 축구선수가 꿈인 승빈(가명)이가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다. 원격수업 전환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생활습관이 무너지고, 학습에 의욕을 잃던 코로나 시기에 승빈이는 문을 열었던 '지역아동센터'에 꾸준히 다닌 덕분에 큰 타격 없이 이 시간을 지냈다. 최주연 기자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한 학교 대신, 지역아동센터와 아동기관들은 아이들을 지키고 돌보고 가르치는 '최전선'이 되어 고군분투했다. 이현숙 센터장은 "저희는 코로나 때도 쭉 문을 열고 애들이 이 곳에서 스마트폰이나 PC로 수업을 듣게 했다"며 "애들이 집에 혼자 있으면 게임하고 늦잠 자고 줌 수업 안 들어갈 게 뻔히 보이니, 일단 센터 문은 열어둬야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7세부터 해당 센터에 다닌 승빈(11·가명)이는 '열린 센터'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축구선수가 꿈인 승빈이는 "학교 다닐 때도, 센터에서 줌 수업 들을 때도 둘 다 집중을 잘 했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부모인 승빈 아빠(42)는 "혼자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학원 보내는 건 부담이 되는데, 센터가 학습과 생활을 전부 잡아주시니 믿고 일임하고 있다"며 "그 덕에 아이가 큰 타격 없이 코로나를 넘겼다"고 말했다.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구 소재 '바라카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코로나 하면 생각나는 것'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주배경 아동과 보호자를 돕는 이곳에서는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어 기초 잡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김영원 인턴기자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구 소재 '바라카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코로나 하면 생각나는 것'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주배경 아동과 보호자를 돕는 이곳에서는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어 기초 잡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김영원 인턴기자

이주배경 아동을 위한 사랑방이자 공부방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바라카(아랍어로 축복) 작은 도서관'도 팬데믹 동안 교실을 대신했다. 급히 중고 컴퓨터를 후원받고, 자원봉사자도 적극 연계해 '방 하나에 교사 1명·아동 2명' 방역수칙을 지킨 교실 8개가 만들어졌다. 이현경 교사는 "코로나 때 도리어 개별 수업으로 한국어와 수학 기초를 잡아주니 애들 성적도 '보통(○)', '잘함(◎)'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포화 상태였던 여건상, 다른 아동들을 더 받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학교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던 코로나 3년은 역설적으로 '학교가 학업 그 이상의 공간'이라는 점을 여실히 증명했다. 학교 밖 집과 센터에서 고군분투했던 아이들 사이에 벌어진 격차를 시급히 좁혀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유조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별 가정 상황에 따라 많은 결핍과 격차가 초래됐다"며 "학교에 다양한 수준의 학습자가 있음을 인정하고 개별화된 교육 방안을 마련할 때”라고 강조했다.

학습 격차에 비해 눈에 덜 띄는 정서·사회적 관계 격차에도 주목해야 해요. 가족갈등 심한 집, 학대가 있었던 집, 장시간 홀로 지낸 아이들은 학교라는 ‘잠시의 피난처’도 없었거든요. 코로나가 끝났다고 이대로 잊힌다면 우리는 몇 년 후 또 다른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어요.

(유조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조안 교수의 섬뜩한 경고다.

▶코로나 키즈 스트레스 진단, 우리 아이 마음 상태 그림 검사로 읽어보세요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COVIDKids/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게재 순서

<1화: 마음도 몸도 무너진 아이들>

<2화: 느려진 아이들, 벌어진 미래>

<3화: 부모가 아프면, 아이도 아프다>

<4화: 잃어버린 세대 만들지 않으려면>

최나실 기자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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