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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이 모자라’.. 지진 피해 동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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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이 모자라’.. 지진 피해 동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람들

입력
2023.02.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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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지진 피해를 온몸으로 겪는 동물들의 사연

지넷 파탄 수의사가 튀르키예 남부 도시 안타키아의 야전 동물병원에서 구조된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알자지라 캡처

지넷 파탄 수의사가 튀르키예 남부 도시 안타키아의 야전 동물병원에서 구조된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알자지라 캡처

튀르키예 남부 도시 안타키아(Antakya). 최근 발생한 대지진의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이곳의 한 공원에 마련된 작은 야전 텐트는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각종 진통제와 항생제, 붕대가 준비된 야전 텐트에 이송된 것은 다친 고양이 한 마리였습니다.

이 고양이는 이번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혀 있었습니다. 무려 2주 만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발견된 고양이는 뒷다리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저체온증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고양이를 살펴본 지넷 파탄(Zinnet Patan∙49) 수의사는 일단 응급처치를 한 뒤 재난 지역 밖 동물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이곳의 동물들은 오랫동안 잔해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뼈가 부러진 상태로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야전 텐트에서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라 응급처치만 하고 다른 동물병원으로 옮기곤 합니다.

지넷 파탄 수의사, 알자지라와의 인터뷰

파탄 수의사는 이스탄불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진 소식을 듣고 자신이 할 일을 찾아 안타키아까지 오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 거주하는 수의사들도 있지만,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동물을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그들을 대신해 피해를 입은 동물들을 돕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비둘기까지 돌보고 있습니다. 하루에 약 100마리 동물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고 하네요.

튀르키예 지진 현장을 수습하면서 동물을 구조하는 단체 '헤이탭'의 모습. 알자지라 캡처

튀르키예 지진 현장을 수습하면서 동물을 구조하는 단체 '헤이탭'의 모습. 알자지라 캡처


이곳에 ‘야전 동물병원’을 세운 이들은 현지 동물보호단체 ‘헤이탭’(Haytap)입니다. 헤이탭은 지진 발생 직후 지역 내 동물들을 구조하고, 구조된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응급 동물의료센터를 구상했습니다. 헤이탭은 과거에도 지진 및 산불 피해 지역에서 동물을 구조하고 돌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원봉사자들과 해외 구호대의 인력 분배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동물을 돌볼 인력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파탄 수의사도 처음에는 4일만 이곳에서 봉사를 한 뒤 이스탄불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이 끊임없이 야전 텐트로 밀려드는 까닭에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파탄 수의사는 “지금 거의 24시간 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밤에 자다가도 동물 환자가 생기면 벌떡 일어나 돌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안타키아가 포함된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 주는 거의 대부분 지진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하타이 주 전역을 돌고 있는 헤이탭 구조대들은 트럭에 동물들을 싣기 바빴습니다. 구조대에 따르면 지진으로 고립된 동물들은 자기의 배설물을 먹는 등 극한의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낯선 구조대를 발견하면서 두려움에 동요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이들은 동물들이 부상을 입은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이 심하다고도 전했다. 알자지라 캡처

현장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이들은 동물들이 부상을 입은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이 심하다고도 전했다. 알자지라 캡처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고, 구조하려는 이를 할퀴거나 물어뜯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진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듯합니다.

헤이탭 하타이 구조대 메멧 구르칸 토클루루,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동물을 구조한 뒤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튀르키예 부르사에서 구호대로 참여한 외메르 세미 셀릭 씨는 “구조된 동물들 중 보호자가 지진으로 목숨을 잃거나, 재산을 모두 잃은 상태라 더 이상 동물을 보호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도 많다”며 장기 보호가 필요한 동물들이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파탄 수의사의 야전 텐트에는 지진으로 다친 동물이 아닌데도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이 줄을 섰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온 구호대에 소속된 탐지견 한 마리가 쓰러져 그의 텐트로 실려온 겁니다. 벨지안 쉽독 품종의 12세 탐지견은 생존자를 찾던 도중 뇌출혈로 쓰려져 결국 치료 이틀 만에 목숨을 잃었다고 해요.

직접 피해를 입은 동물뿐 아니라 이재민들의 반려동물 건강을 돌보는 일도 현장의 몫이다. 알자지라 캡처

직접 피해를 입은 동물뿐 아니라 이재민들의 반려동물 건강을 돌보는 일도 현장의 몫이다. 알자지라 캡처

생존자와 함께 탈출했지만, 지속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한 생존자는 매일 호흡 장애를 겪는 몰티즈 품종 반려견을 야전 텐트에 데려오고 있습니다. 이 생존자는 이번 지진으로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반려견에게 더 의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전히 튀르키예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물들이 많습니다. 헤이탭 관계자는 “구호물품으로 반려동물의 사료가 오곤 하지만, 개와 고양이 사료들이 대부분”이라며 “다른 동물들을 위한 먹을거리도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라며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부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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