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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권한 무제한 '소왕국'… 농협 조합장들이 '비상임'에 매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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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권한 무제한 '소왕국'… 농협 조합장들이 '비상임'에 매달리는 이유

입력
2023.02.22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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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부터 이틀간 조합장 후보자 등록
최대 10선 도전… 3선 이상 현직 출마자 다수
무제한 연임 '비상임 조합장' 폐해 재연 우려
영구집권 수단 전락에 "국가 차원 개혁 필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후보자 등록 첫날인 21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 조합장 출마자가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후보자 등록 첫날인 21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 조합장 출마자가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뉴시스

3월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21일부터 이틀간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한다. 최대 10선을 노리는 농협 조합장 등 이미 재임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르는 현직 조합장들의 후보 등록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농협법상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 조합장 규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 끊이질 않아 개선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영 전문화 취지 무색… 사실상 상왕 노릇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20여 일 앞둔 15일 경기 수원농수산물시장에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공정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20여 일 앞둔 15일 경기 수원농수산물시장에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공정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제공

21일 농협중앙회 등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대전 원예농협과 충북 제천 봉양농협 조합장은 ‘10선’을 바라보고 있다. 대전 유성농협과 북대전농협 조합장은 각각 7선과 5선, 경기 군포농협 조합장은 4선 도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당선 시 최대 40년, 최소 16년간 조합장 자리를 맡게 된다.

농협법은 자산 규모 2,500억 원 이상 지역조합의 경우, 조합장 지위를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전환하고, 전문경영인인 상임이사에게 조합 운영을 맡기도록 규정한다. 조합장 업무도 대외 교류와 복지, 교육 등 금융ㆍ경제 사업 이외 부문으로 제한돼 있다. 조합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경영 전문성을 강화해 조합원 이익을 증대시키자는 게 애초 법 취지다. 비상임 조합장을 두고 있는 농협은 전체 1,115곳 중 41%인 462곳이다.

하지만 법 취지와 다르게 돌아가는 농협이 태반이다. 일부 지역에선 비상임 조합장이 농산물 유통ㆍ판매부터 금융 사업까지 경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비상임 조합장은 상임이사를 선임하는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하고, 2년마다 경영 실적 평가도 주도한다. 상임이사가 비상임 조합장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조합장 입맛에 맞는 측근이나 친인척을 상임이사로 선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사회에서 비상임 조합장을 “소왕국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책임 없는 권력 사유화… 무제한 연임에 견제 불가

채용 비리와 일감 몰아주기, 특혜성 대출, 연간 30~40건씩 발생하는 횡령 사고 등 각종 폐해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비상임 조합장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상임 조합장은 결재권자가 아니라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실제 충북 한 농협에서는 비상임 조합장이 임금 체불로 피소됐으나, 재판에서 “업무집행 권한이 없는 명예직”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2021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철옹성 같은 비상임 조합장의 권력 테두리 안에서 조합원이 조합장 전횡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제주에서는 2020년 노조활동을 했던 직원들이 다른 농협으로 전출돼 뒷말이 무성했고, 지난해 인천에서는 “조합장에게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어린 딸을 홀로 키우는 여직원을 초등학교도 없는 외딴 섬으로 발령내 ‘보복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직원들은 원직으로 복귀했지만 잡음은 이어졌다.

비상임 조합장을 견제ㆍ감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3선 이상 연임이 제한된 상임 조합장과 달리, 비상임 조합장은 무제한 연임이 허용되지만 이를 제어할 법적 장치가 마땅치 않다. 현재 4선 이상 농협 조합장은 전국에서 110명이 넘는다. 장기 연임 부작용을 우려해 비상임 조합장에게 1회 연임만 허용하는 등 더 엄격하게 규제하는 수협과도 대조된다.

종신직 변질된 비상임 조합장 제도

2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선거관리위원회 입구에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관련 홍보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선거관리위원회 입구에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관련 홍보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3선 조합장들이 비상임 조합장 제도를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초 광주 지역 한 농협은 자격 조건 미달에도 상임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전환해 논란이 됐다. 자산 규모가 1,500억 원 이상이면 조합 자율로 비상임 전환을 결정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을 이용해 ‘자산 증가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조합 정관을 바꿨다. 하지만 당시 해당 조합에서는 “3선 연임 제한에 걸린 조합장의 4선 출마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이용희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무리한 비상임 전환 시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면서 “엄밀히 따져 편법이지 불법은 아니라 제재 방법도 전무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국회에도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해당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대다수 농촌 지역구인 여야 의원들이 표 확장력을 가진 조합장들 눈치를 보면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는 “상임위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 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농협이 민주적 지배 구조를 갖춰야 농민과 농촌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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