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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건설현장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건설현장의 오랜 관행인 월례비를 '건폭(건설노조의 폭력)'으로 규정하고 '불법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월례비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월례비를 임금의 일부로 인정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와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1일 노동계에 따르면 월례비는 건설현장에서 시공사(하도급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기사 등에게 의례적으로 제공하는 '웃돈'을 의미한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보통 타워크레인 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어 월급을 받는데, 이와는 별도로 시공사로부터 돈이나 금품을 받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내려왔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계약을 맺은 타워크레인 업체에 지급하는 보수에 더해 기사에게 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월례비는 1960~1970년대의 관행이 그대로 굳어진 사례다. 공사 일정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공사가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담배나 현금 등을 조금씩 쥐여주던 것이 시간이 지나 굳어지면서 규모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창 건설경기가 좋을 때는 월례비가 수백만 원대를 넘어 수천만 원에 달하기도 했다. 월례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기사들이 일부러 자재를 천천히 옮기거나 태업하며 공기를 늦추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례비를 지급해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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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왼쪽 세 번째)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원희룡 국토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노동부 차관 등으로부터 건설현장 폭력 현황과 실태를 보고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건설노조 측에선 "잘못된 관행이 맞지만, 다소 억울한 점도 있다"는 입장이다. 건설사가 일부러 월례비를 얹어주면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콘크리트 펌프카나 카고크레인 등 다른 기기가 해야 할 일까지 시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건설노조 측은 "관행이 오래되다 보니 건설사도 비용 절감에 타워크레인 기사를 활용하기도 한다"며 "노조뿐 아니라 건설사도 함께 쇄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관행이 워낙 오랫동안 굳어져온 만큼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임금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16일 광주고법 민사1-3부(부장 박정훈)는 월례비가 부당이득이라는 1심 판결을 깨고 "하청인 철근 콘크리트 업체의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가지게 됐다"며 "(월례비를) 강제로 지급했다고 볼 증거도 없어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월례비를 관행에 따른 임금의 일종으로 인정한 판결은 처음이다.
정부는 월례비 자체를 법으로 금지시킴으로써 법원 판결로 인한 혼란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대책 브리핑에서 "규정과 시행령을 명확히 해 법적인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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