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스토리, '엘리미날리아' 탐사 보도
범죄 뉴스를 '치와와' 뉴스로 밀어내기
'EU' 도용, 성범죄자 실명 삭제도 성공
나사·CNN 거짓 연동, 6년간 거액 챙겨
#1. 멕시코 거대 마약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 에르난 가브리엘 웨스트만은 머리가 아팠다. 2017년 아르헨티나 수사당국이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해 유죄가 확정된 후, 너무나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골머리를 썩던 중 그는 온라인 평판을 관리해 준다는 한 업체를 소개받았다. '푼돈'인 1만5,000유로(약 2,077만 원)만 내면 자신의 다른 과거 범죄를 다룬 언론 보도도 희석시켜 준다는 솔깃한 제안까지 덤으로 받았다.
#2. 미국의 디자이너인 카터 우스터하우스는 2017년 미국 HGTV가 방영한 리얼리티쇼 '트레이딩 스페이스'를 통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유명세 탓인지 그가 자신의 옛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성폭행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스터하우스는 '평판 관리'를 위해 3,200달러(약 414만 원)를 지출해야 했다.
웨스트만과 우스터하우스가 접촉한 업체는 '엘리미날리아'라는 곳이다. 스페인 국적인 디에고 산체스(30)가 설립한 이 회사는 6개국 언어로 의뢰인의 온라인 평판 관리를 해 준다. 정공법보다는 '꼼수'가 주무기다.
엘리미날리아의 대담하고 화려한, 하지만 변칙적인 수법은 서구권 30개 매체의 공동 탐사보도 프로젝트 '킬링 스토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17일(현지시간) 킬링 스토리에 참여한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엘리미날리아가 '뉴스 밀어내기'와 '거짓 민원'이라는 방법으로 지난 6년간 벌어들인 돈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엘리미날리아는 성공 비결은 '고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웨스트만 사례를 보면, 이 회사는 에콰도르의 한 현지매체를 이용해 강아지 '치와와' 관련 기사, 그리고 축구 관련 기사에 웨스트만의 이름을 반복해 넣는 방식으로 '기사 밀어내기'를 진행했다. 구글 등 웹 검색 시스템이 특정 키워드에 대한 유사 뉴스가 반복 출고될 경우, 해당 부분을 자동으로 페이지 상위에 올라가도록 설정돼 있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수개월 후, 웨스트만의 범죄 기사는 웹 검색 페이지 후순위로 멀찍이 밀려났다.
우스터하우스 사례도 마찬가지다. 엘리미날리아는 2021년 계약 당시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그를 위해 '실명 삭제' 서비스에 집중했다. '브리셀 유럽연합(EU)위원회'라는 엉성한 단체명으로 아마존 등에 "우스터하우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법률 의견서를 수차례 보냈다. 결국 상당수 언론은 관련 뉴스에서 우스터하우스의 이름과 성을 비공개 처리했다.
엘리미날리아의 꼼수는 상상 이상으로 치밀했다. 우선 밀어내기용 가짜뉴스에 미 스탠퍼드대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홈페이지 주소를 연동하는 식이다. 신뢰도 높은 기관이 뉴스와 링크되면 구글 등 주요 검색엔진에 잘 걸리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매체 이름도 교묘했다. 'CNN 뉴스투데이' '런던 뉴타임스' 등과 같이 어딘가 있을 법한 매체명이 이들의 대표 작품이다.
엘리미날리아가 허위 명의로 저작권 침해 민원을 넣은 건수는 최소 2,000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킬링 스토리는 "회사 직원들이 입사 시 '영업비밀을 누설하면 3만 유로(4,155만 원)의 벌금을 낸다'는 계약서를 쓰는 바람에 그동안 이들의 행위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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