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끔찍했던 성폭행...가족에게 말해야 할까요

입력
2023.02.27 04:30
24면
0 0

편집자주

‘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기자

일러스트=박구원기자

어릴 적 잊기 힘든 상처가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성폭행을 당했어요.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 달라는 노인의 부탁을 받고 의심 없이 나섰다가 끌려가 성폭력 피해자가 됐어요. 현장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저는 이 사실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가족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마음에 "왜 바보같이 당했냐"는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웠습니다. 2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도 가족은 물론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성장했습니다. 그 일의 영향인지 저는 타인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됐어요. 나의 '생존'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서 '어떤 경우에도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 속에 살았죠.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도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가 어려워요.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고 늘 상대의 의도를 의심합니다. 어린 시절 제가 당한 일이 떠올랐을 때 억울하고 분해서 통곡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껏 울어 본 적 없이 참고 지내 와서일까요. 저에게 그 사건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큰 상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이제는 우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아요.

가족들과는 겉보기엔 문제가 없었지만 속은 곪아 있었어요. 엄마는 엄하고 감정적인 분이었어요. 매사에 화와 짜증을 달고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칭찬이나 격려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학교에서 속상한 일을 겪고 하소연을 하면 엄마는 "네가 그런 일을 당할 만하게 행동해서 그렇다"고 비난했습니다. 학창시절 제가 왕따를 당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죠. 엄마는 온전한 내 편이 아니었어요. 몇 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까지도요.

아빠와는 겉으론 무탈하게 지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집안일을 제가 도맡게 되면서 아빠와의 관계도 금이 갔습니다. 몇 달 전 무더웠던 여름날, 아빠가 해 준 요리가 상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아빠가 속상한 마음에 저에게 화를 내며 잔소리를 하셨죠. 요리를 한 사람은 본인인데 관리를 못한 제 탓으로 돌리며 몰아세우는 아빠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언니도 "네가 참으라"며 거들었어요. 집안일 대부분을 제가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서럽고 억울했습니다. 저의 배려나 희생을 조금도 고맙게 여기지 않는 가족들을 보면서 정이 떨어졌어요.

가족 내에서 저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일이 터지면 어렸을 때 겪은 상처들이 되살아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 저는 아무 존재가 아닌 것만 같아요. 그때마다 애써 잊고 지냈던 그 사건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시원하게 말하고 싶다가도 가족들에게 괜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해요. 20년 전 이야기를 이제와서 해도 될까요. 저야 익숙해져버린 고통이라 이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지만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위로는커녕 왜 이제와서 얘기하냐는 원망을 듣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유리(가명·33·프리랜서)

유리씨가 겪은 사건은 한 사람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매우 심각한 사건입니다. 범죄 가해자는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 당사자는 안전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안타깝게도 유리씨는 어린 나이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도 적절한 회복 과정을 거치지 못했어요. 심지어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조차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지요. 어린 나이에 이 모든 일을 혼자 감내하면서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요. 현재 유리씨가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보기 위해선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이후 성장 과정을 들여다봐야 해요. 사건 자체보다는 유리씨 내면에 집중하는 게 근본적인 도움이 될 거예요.

어린 나이였다 해도 유리씨는 스스로 그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가족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했던 것이죠. 유리씨가 보기엔 부모님이 나의 입장에서 분노하고 상처를 돌봐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과거에 내가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거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유리씨는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에게 당신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을 거예요. 어머니가 자신을 감싸주지 않았다면 아버지, 혹은 언니와의 관계에서도 경험할 수 있을 법했지만 그러지 못했죠. 유리씨가 끔찍한 고통을 너무 쉽게 덮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일이 별일이 아니어서도 아니고, 나보다 가족을 걱정할 만큼 관계가 애틋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자신 외에는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무기력한 상태로 세월이 흘러버렸어요.

유리씨의 인간관계도 무력한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할 수 있었던 건 자기를 지키면서 모든 관계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이었어요. 그런 이유로 성장 과정에서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몸은 성인이 됐지만 내면의 힘을 충분히 기르지 못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가족에게서 독립하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부족한 상태인 것 같아요. 가족을 원망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머물고 싶은 마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몇 달 전 아버지가 당신에게 했던 잔소리는 당신 안의 억눌려 있던 원망을 분출하게 한 계기가 됐지요. 오랜 시간 눌러 왔던 복합적 감정이 이 일을 계기로 다시 활성화된 것이죠. 당시 사건을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고 했지요. 가족 내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무력감과 절망감을 경험하고, 그 반작용으로 가족들에게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무의식적 소망이 담겨 있을 수 있어요.

성폭력 사건을 겪은 당시에 주변으로부터 다친 마음을 위로받고 다시 마음의 힘을 얻는 경험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런 과정이 빠지고, 괴롭지만 덮고 넘어가버렸기 때문에 결국 당신이 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번에 터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무뎌진 것 같지만 실제론 타인에 대한 불신, 가족에 대한 원망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처럼 자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람과의 관계를 꺼리고, 내면에 자리 잡은 억압된 감정을 계속 억누르기만 해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이제 정말 그 감정의 실체를 마주할 때가 왔습니다. 우선 내면의 솔직한 감정을 인정해 주면서 자기와의 일체감을 경험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이나 가족에 대한 원망도 조금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가족을 미워하고 원망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과 있는 그대로 보고 알고 있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들면서도 원망과 분노라는 모순적인 감정이 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평생 가족을 미워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사건에 대해서도, 부모에 대한 원망이 드는 마음도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누구의 자식이나, 누구의 여동생이 아닌 한 사람의 존재로서 감정을 느끼고 집중해야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도, 가족과의 관계도 출발선은 자기입니다. 이제는 당신의 감정만 생각하며 살아도 된다는 얘기를 꼭 해 주고 싶어요.

가족들에게 당시 사건을 알리느냐 마느냐는 실은 부차적인 문제예요. 가족의 지지와 위로가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로 무관심이나 비난을 경험하면 더 상처가 되거든요. 사건 자체보다는 당시 지나쳐버린 자기의 감정을 다시 살피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라는 조언을 하고 싶어요. 내가 이런 사건이나 사람으로부터 이런 영향을 받아 이런 면이 형성됐고, 이런 감정의 토대 위에서 지금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스스로 잘 알고 수용해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복잡한 내면의 문제들을 천천히 매듭을 지어갈 수 있을 거예요.

가족에 대한 강력한 양가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족 이외의 대인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타인에 대한 신뢰감이 없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신뢰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결국 견고한 방어벽을 조금은 낮추고 다가가야 합니다. 가족에게 털어놓는 등의 강력한 한 방으로 이 고통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그럴수록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듬으며 한 발 한 발 다가가길 권유드립니다. 조금씩 유리씨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응원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사이트(https://www.hankookilbo.com/counseling) 또는 아래 바로가기를 통해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바로가기


정리= 손효숙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