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몸담고 있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삼성생명, 교보생명을 비롯한 주요 생명보험 회사가 설립한 공익법인이다. 지난 15년 동안 출연금액이 1,560억 원에 달하며 생명존중 문화확산을 위한 활동을 진정성 있게 이어가고 있다.
한강 다리에 설치한 SOS 생명의 전화, 농약안전보관함 보급, 자살위험군 및 고령화극복 지원 사업 등은 생명 존중의 가치를 실현시킨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간 재단의 사업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노령화와 인구감소 여파로 생명보험 시장이 위축되면서 보험사의 수익이 감소하고 이와 연동된 기부금액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의 손꼽히는 지원군인 교보생명이 주주 간 분쟁에 장기간 휘말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34%)과 주요주주인 외국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컨소시엄(24%) 간 '풋옵션(주식을 되팔 권리)' 행사 가격을 둘러싼 지루한 분쟁이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상장으로 자본을 확대하고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사업다각화가 시급한 상황임에도 주주 간 분쟁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국제중재소송에서 "어피니티가 제시한 주당 41만 원에 신 회장이 되사 줄 의무가 없다"고 신 회장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어피니티는 또다시 2차 국제중재 소송을 걸어 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주 간 분쟁 탓에 교보생명은 상장이 지연되고 이미지 훼손, 평판 리스크 제기 등 타격을 받고 있다. 창립 때부터 진정성을 보여온 사회공헌사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사모펀드 입김이 거세지면 회원수 1,800만 명의 '국민책방' 교보문고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의 100% 자회사다. 교보문고가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교보생명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교육과 인재로 나라를 세운다'는 교보생명의 창립이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모펀드의 경영권 간섭이 노골화된다면 창업 이래로 회사를 지탱해 온 경영철학이나 사회공헌 정신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냉혹한 금융자본이 산업계를 지배한다면 기업경영의 최선은 단기이익 극대화가 될 것이며, 사회공헌 사업은 기업이 내는 세금으로 정부가 하는 일로 간주되며 사라질 것이다.
본디 기업가 정신과 금융 자본의 모험적 투자는 상호 시너지를 낼 때 비로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단기 이익에 집착한 사모펀드의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된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같은 사례는 기업가 정신의 쇠퇴만을 가져올 뿐이다.
교보생명은 60년 넘게 한 우물만 파면서 오로지 '고객보장'에 충실해 온 토종보험회사여서 최근 사태는 큰 씁쓸함을 자아낸다. 이제라도 회사가 본연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가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업가 정신과 사회공헌 의지를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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