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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산다는 개성까지 번진 북한 식량난

입력
2023.02.20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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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남성욱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군 배급까지 줄이는 심각한 북한 식량난
북 정권, 도발 멈추고 국제구호 요청해야
인민 굶기고 무기 과시하는 행태 버려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15일 개최된 강동온실농장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첫삽을 떴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보도했다. 뉴스1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15일 개최된 강동온실농장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첫삽을 떴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보도했다. 뉴스1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났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계절의 변화와는 달리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지난해 10월부터 태국, 베트남 및 인도 주재 북한 공관 등에서 식량을 구매하거나 지원받는 임무를 수행하는 긴박한 움직임이 포착되어 식량 부족 사태가 심각할 것이라는 예측은 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

2월 들어 개성에서 하루 수십 명씩 아사자가 발생하였다. 혹한 피해까지 겹쳐 극심한 생활고로 자살자까지 속출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에서 상대적으로 부촌(富村)으로 꼽힌 개성까지 식량난이 닥치면서 전국적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개성은 6·25전쟁 이전에는 38도선 이남에 있어 전쟁 피해를 덜 받았고, 인근 황해도 연안 배천 평야에서 식량 생산이 활발하던 곳이었다. 대하 사극 드라마 '왕건' 등에서 권력을 잡은 귀족들이 토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기도 하다. 6·25전쟁 이후에 북한 정권은 기존 주민들을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함경도로 소개(疏開)하고 속칭 성분이 좋은(?) 인물로 채웠던 그런대로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 2000년 중반에는 개성공단까지 작동하여 20만 명의 주민들이 매일 간식으로 남측 초코파이를 즐겨 먹었을 정도였다.

개성의 비극은 평양 권부에도 충격을 주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차례 개성으로 간부를 파견해 실상을 파악하면서 일부 식량을 지원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비상식량을 무상 배급하였다. 김정은은 이달부터 국정 가격의 절반에 식량을 공급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 내 전역에 배급량 중 일부를 반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개성의 무상 배급으로 부족해진 전체 식량 비축량을 보충하기 위한 조치다. 북한 매체들은 2, 3일마다 '애국미(米) 헌납운동'을 강조하며 농민에게 식량을 헌납하라고 연일 독촉이다.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지난달 31일 성, 중앙기관 간부가 국가에 양곡을 헌납한 사례를 보도했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 사정은 개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식량 사정이 양호했던 개성이 이런 정도이니 다른 지역은 파악할 것도 없다. 우선 배급 대상으로 '언터처블'이었던 군인들의 식량 배급량까지 줄였다.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군 식량까지 손을 댔으니 갈 때까지 간 것이다. 지난해 말 전원회의 이후 약 두 달 만인 이달 하순 농업 문제를 단일 안건으로 상정해 전원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사태의 엄중함을 시사한다.

통일부는 지난해 12월 농촌진흥청 발표를 인용해 지난해 북한 식량 생산량은 451만 톤(t)이었고, 2021년에는 469만 톤이었다며 지난해 식량 생산량이 전년보다 3.8%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농진청의 추계는 북한의 시기별, 지역별 이상기후와 코로나 봉쇄로 인한 중국의 비료 수입 중단 등의 요인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기계적 추론의 결과로 현실과 거리가 있다. 지난해 북한 식량 생산량은 2021년 대비 25%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기관들의 북한 식량 통계 추정에서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북한은 군사도발을 멈추고 국제사회에 구호를 요청해야 한다. 미사일 개발 비용을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 지원에 투입해야 한다.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튀르키예도 돕는 판국에 동포들이 아사하는 현실을 대한민국이 못 본 체할 수는 없다. 지난 1995~1998년 당시 100만 명 이상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이 재연되어서는 안된다. 단, 전제조건은 고체 연료를 장착한 괴물 ICBM을 앞세우면서 열한 살 어린아이를 4세대 세습 후계자라고 심야 열병식에서 과시하는 기이한 통치 행태를 수정해야 한다. 인민을 굶기면서 백마를 수입하고 무기개발로 치적을 과시하는 통치방식은 종식되어야 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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