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전국경제인연합회
커뮤니케이션본부장
지난 1월 30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감염취약시설, 대중교통수단 등 일부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상에서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마스크 없는 삶’이 재개되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여러모로 바꿔 놓았다. 급속도로 진행된 비대면화는 소비패턴의 변화와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을 가속화시켰고, 이러한 변화 속에 디지털 헬스케어, 배달, 플랫폼 산업 등 신산업이 성장하기도 했다.
한편, 팬데믹 극복을 위해 각국이 쏟아 부었던 막대한 유동성은 물가 급등으로 돌아왔고, 주요국 금리 인상에 따른 수요 위축,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이 겹치며, 전 세계 경제는 새로운 위기의 문턱에 서 있다. 최근 세계은행은 올해 전 세계 경제가 1.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지난해 6월 전망치였던 3.0%에서 1.3%p나 낮아진 수치다. 우리나라도 올해에는 1%대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며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하반기부터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는 기업 실적은 올해 부진의 골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사면초가’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지난해부터 주요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전 세계적 공급망 위기와 물류비·원가 상승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절박한 위기 상황이지만 우리 기업들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와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불황기에 투자를 축소하다가 기술 경쟁력 약화로 시장에서 도태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1990년대 말 AMD는 업계 1위인 인텔보다 약 3배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인텔을 턱 밑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닷컴버블’이 터지며 CPU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인텔은 투자 확대, AMD는 투자 축소라는 정반대의 전략을 들고 나왔다. 그 결과 위기 회복 국면에서 인텔과 AMD의 격차는 다시 벌어졌고, AMD는 오랜 기간 인텔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삼성, SK, 현대차 등 주요 그룹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신산업에 2026년까지 약 1,000조원 규모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혁신을 위한 우리 기업들의 노력은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CES 2023에서도 드러났다. 세계 각국에서 약 3,000여 개의 기업이 CES 2023에 참여했는데, 이 중 한국 기업은 550개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얼마나 매진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혁신동력은 상대적으로 뒤쳐진 것으로 나타났다. CES를 주최한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의 글로벌 혁신지수 순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다양성(D), 세제친화도(C) 등에서 특히 낮은 평가를 받으며, 70개국 중 26위로 선두권과 격차를 보였다.
혁신을 위한 ‘다양성’이란 기술과 산업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얼마나 자유롭게 이루어지는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해관계자와의 대립과 규제로 인해 새로운 시도가 빛을 보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일이 부지기수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차량공유서비스가 택시업계의 반발과 ‘타다금지법’의 도입으로 무산되었고, 지금도 부동산중개, 법률서비스, 미용의료 등 여러 분야에 진출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기존 이해관계자들과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규제 시스템도 문제다. 일단 모든 것을 규제하고 일부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현행 ‘열거주의’ 방식에서는 새로운 ‘신규 아이디어’가 잠재적 불법행위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 신규 아이디어 개발과 혁신을 장려하려면 규제 시스템부터 법에서 금지하는 일부 사항 외에 모든 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포괄주의’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높은 법인세율’도 혁신기업 유치를 위해 반드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2023년은 코로나19 이후 새 시대가 개막하는 원년이다. 비록 세계경제가 위기의 터널 앞에 직면해 있지만, 터널 너머에는 새로운 기회의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업들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는 규제개혁, 법인세 인하, R&D 투자 지원 등 기업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해 대한민국이 위기의 터널 끝에 펼쳐질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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