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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화 반년... 노인·아이 덮친 '참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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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화 반년... 노인·아이 덮친 '참변' 여전했다

입력
2023.02.17 04:00
9면
0 0

올 들어 우선멈춤 안 지킨 사망 사고 잇따라
우회전 사고 피해 64% 교통약자, 중상 84%
법제화 유명무실... "전용 신호등 보급 필요"

'교차로 우회전 일시정지' 3개월 계도기간이 끝나고 단속이 처음 시행된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혜화경찰서 소속 교통경찰관이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차로 우회전 일시정지' 3개월 계도기간이 끝나고 단속이 처음 시행된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혜화경찰서 소속 교통경찰관이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한 삼거리. 25톤 덤프트럭이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몇 초간 잠시 멈췄다가, 이내 우회전을 시도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녹색불이었고, 보행자들은 길을 다 건너지 못한 상황이었다. 트럭은 길을 건너던 70대 여성을 들이받아 피해자는 그 자리서 숨졌다. 사흘 뒤인 13일에도 동작구 대방동 한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여성이 우회전하는 마을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최근 교차로에서 우회전 차량이 보행자를 치어 사망하게 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7월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운전자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횡단보도에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멈춰야 한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물론, 통행 ‘의사’만 보여도 그렇다. 하지만 반 년이 넘은 지금 일시정지 의무는 벌써 잊힌 듯하다. 관련 사고가 여전히 끊이지 않는데 특히 어린이, 노인 등 교통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돼 개선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법 바뀐 지 6개월 지났지만... 준수는 고작 1%

우회전 횡단보도 사고 관련 판결문 분석. 그래픽=강준구 기자

우회전 횡단보도 사고 관련 판결문 분석. 그래픽=강준구 기자

취재진이 16일 오전 1시간 동안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한국방송통신대 방면으로 우회전하는 차량을 지켜봤더니, 일시정지 의무를 지킨 차량은 182대 중 고작 2대(1.1%)뿐이었다. 오전 10시 42분쯤 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60대 여성이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불로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대로 우회전했다. 보행신호가 빨간색 불이어도 횡단보도에 통행 대기자가 보이면 일단 멈춰야 한다. 2분 뒤에는 폐지 리어카를 끄는 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절반쯤 건넜을 때 오토바이가 우회전 통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상황에서 우회전은 절대 금물”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사거리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한 택시는 전방 직진신호가 바뀌어 보행자들이 막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찰나 쏜살같이 우회전해 지나갔다. 60대 여성 박모씨는 “허리통증으로 걸음이 느려 보도를 다 건너기 전에 빨간색 불로 바뀔 때가 있는데, 등 뒤로 차가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우회전 사고는 교통약자에 집중돼 심각성을 더한다. 실제 지난해 7~12월 판결이 확정된 ‘횡단보도 내 우회전’ 사고 109건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가 60세 이상인 경우가 56건(51.4%)으로 절반을 넘었다. 13세 미만 어린이가 피해자인 사고도 13건(11.9%) 있었다. 노인ㆍ어린이를 합치면 전체의 63.3%나 된다. 신체적 방어 능력이 떨어지다보니 피해 정도도 컸다. 전치 3주 이상 중상자와 사망이 각각 72명(66.1%), 19명(17.4%)에 달했다. 무단횡단 등 피해자 과실은 2건(1.8%)에 그쳤다.

운전자들 "횡단보도 위치부터 바꾸라"는데...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구의 한 교차로에서 차량들이 우회전 전용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구의 한 교차로에서 차량들이 우회전 전용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사정이 이렇지만 운전자들도 할 말은 있다. 세종시에 사는 김모(37)씨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다 건널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다”면서도 “이곳은 가뜩이나 도로 대부분이 편도 2차선에 불과한데 교통체증이 더 심해졌다”고 불만을 표했다. 화물차, 버스 등 대형차 운전자들은 “문제의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지적한다. 대형차는 차고가 높고 회전 반경도 커 우측 사각지대가 많다. 여기에 한국은 교차로와 횡단보도 사이 거리마저 짧아 우회전 시 보행자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판결문 분석에서도 화물차ㆍ버스가 가해 차량인 사고도 42건(38.5%)에 달했다. 한 운전자는 “횡단보도를 교차로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통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경찰이 전국 15곳에서 시범 운영 중인 ‘우회전 전용 신호등’을 보급하되, 그 전까지는 운전자들이 일시정지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사고를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설명이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교차로와 횡단보도 이격 거리를 늘리는 건 보행자 불편도 감수해야 해 쉬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우회전 차량이 감속할 수 있게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준석 기자
나광현 기자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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