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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위원장 "차별 행정에 맞서 1187일 만에 시민성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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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위원장 "차별 행정에 맞서 1187일 만에 시민성 획득"

입력
2023.02.19 14:00
수정
2023.02.20 11:58
23면
0 0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인터뷰]
2019년 창립 총회 후 서울시에 법인 신청
불허 결정 등 곡절 끝 4년 만에 등기 허가
"性소수자 혐오 타파, 차별 행정 규탄 지속"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서울 마포구 조직위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서울 마포구 조직위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퀴어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1969년 미국 뉴욕의 작은 게이바 ‘스톤월 인’에서 성(性)소수자들이 경찰의 과도한 단속에 맞서 시위를 한 게 시초다. 이후 반세기 넘게 전 세계 성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억압에 저항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주목할 만한 투쟁의 결과물이 나왔다. 대표적 성소수자 인권단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지난달 18일 비영리 사단법인 등기를 마친 것이다. 법인 설립이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을 알면 수긍이 간다. 서울시의 불허 방침을 극복하고 1,187일 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13일 서울 마포구 조직위 사무실에서 만난 양선우 위원장은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사회적 시민성을 획득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0년 열린 제1회 퀴어문화축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2000년 열린 제1회 퀴어문화축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2000년 만들어진 조직위는 20여 년간 민간단체로 활동했다.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활동 범위가 넓어지자 공신력 있는 운영을 위해 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법인이 돼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되면 조직위 이름으로 영수증을 발행해 후원자에게 세제 혜택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법인격을 부여받는다는 의미가 컸다.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2019년 10월 20일 창립총회 후 곧바로 서울시에 법인 신청을 냈으나 소관부서 지정에만 1년이 걸렸다. 이후 시는 두 차례 보완 요청 끝에 2021년 8월 불허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7월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3회 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지난해 7월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3회 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시가 문제 삼은 건 조직위의 대표 사업인 ‘퀴어문화축제’였다. 2000년 시작한 퀴어축제는 국내 최대 규모 성소수자 행사다. 2015년부터는 매년 여름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열린 지난해 축제 땐 폭우에도 13만 명 이상 참가했다. 시는 축제 참여자들의 과다한 노출과 성기 묘사 제품 전시 등이 법 위반 소지가 있고, 반대단체 집회 등 사회적 갈등에 따른 행정력 투입이 크다는 점을 불허 이유로 들었다. 양 위원장은 “법인 설립은 요건만 갖추면 허가가 원칙인데 명백한 차별 행정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가 납득하기 힘든 논리로 허가를 거부하자 더 오기가 생겼다. 법인 설립을 준비하는 또 다른 퀴어 단체들을 생각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조직위는 2021년 10월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국내외 시민단체와 17개 대사관의 지지 서한이 쏟아졌다. 지난해 6월 권익위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불허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 결국 서울시도 지난해 12월 29일 법인 설립을 허가했다. 양 위원장은 “속전속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7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7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쾌거임이 분명하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과다 노출, 성인용품 전시ㆍ판매 등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ㆍ감독을 소홀히 하면 설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부 허가여서다. 이는 시가 퀴어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내줄 때마다 내거는 단서 조항이기도 하다. 양 위원장은 “성소수자 혐오에 늘 동원되는 문구를 지자체가 아무 근거도 없이 내세운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직위는 올해를 성소수자 혐오의 역사를 기록하는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다. “우리가 어떤 혐오를 받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모아 기록하고 보여주는 ‘혐오 아카이빙’을 기획 중이에요. 정부나 지자체의 차별적 행정도 당연히 포함될 겁니다.”

양 위원장과 조직위의 투쟁은 진행형이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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