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쇼 대성공 이후 드래그 문화 확산
대선 앞둔 보수 정치인, '드래그 반대'
"드래그는 문화 이슈, 선거용 도구 아니다"

미국 MTV가 방영하고 있는 인기 리얼리티 TV쇼 '드래그 레이스' 시즌 15에서 참가자들이 치열하게 경연을 펼치고 있다. 글래드 홈페이지 캡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스테이지에 나타난 그의 화장은 무척 강렬하다.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불분명하다. 묘한 분위기의 주인공 성별부터 궁금해지는 찰나, 무대 공연이 시작된다. 혼을 담은 립싱크와 퍼포먼스의 연속. 그러나 10분쯤 후, 아쉽게도 주인공은 경연에 탈락해 짐을 싼다. 숨 막히게 멋있었던 주인공은 무대 뒤에서 화려한 외관을 지우고 젊은 남성의 모습으로 '쿨'하게 퇴장한다.
지난달 6일 시즌 15 방영이 시작된 미국의 인기 리얼리티 TV쇼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의 전형적인 서사다. 문화계에서 '드래그'(drag)는 현재 '성별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예술 정체성을 발현하는 하나의 문화 장르'를 통칭하는 용어다. 여성의 연극 무대 출연이 금지된 1800년대 여장남자 배우가 무대 바닥에 긴 치마를 '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도서관에서 드래그 퀸들이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악시오스 캡처
한국에선 여전히 낯설지만, 드래그는 미국에서 하나의 문화 예술 영역이 된 지 오래다. 특히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대성공은 2018년 '드래그 퀸의 이야기 시간'(Drag Queen Story Hours)이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확대 발전했다. 미 전역 도서관에선 드래그 퀸으로 불리는 남성들이 지역 아이 및 학부모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사가 진행됐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아이들에게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자."

미국 공화당의 차기 대선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더힐 캡처
그러나 보수 색채가 뚜렷한 미국의 몇몇 지역은 드래그 문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대표 정치인들이 앞장 서서 드래그 문화 유입을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반(反)드래그' 운동의 대표 인물은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다. 실제로 그는 지난 6일 '올란도 필하모닉 플라자' 재단 대표를 직접 고소했다. 재단이 작년 12월 지역 내에서 아이들과 함께 '드래그 퀸 크리스마스' 행사를 진행했다는 이유였다.
공화당의 또 다른 '잠룡'인 세라 허커비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공공기금이 드래그 행사에 후원금으로 지급되는 걸 막기 위한 조례를 준비하고 있다. 아칸소주 의회도 지난달 드래그 관련 활동을 성인 사업(Adult-Oriented Business)으로 못 박았다.

미국의 인기 리얼리티쇼 '루폴의 드레그 레이스' 시즌 15 출연자의 모습. NBC 캡처
15일(현지시간)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 플로리다·아칸소주를 포함, 미국의 15개 주정부가 36개의 반드래그 법안 혹은 규칙을 제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 정치인들이 드래그 이슈로 표심 다지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중도 또는 개혁 성향의 지역은 '관망 모드'다. '드래그 퀸의 이야기 시간' 행사를 이어가기로 결정한 뉴욕·몬태나주 등이 대표적이다. 알래스카주를 비롯, 몇몇 주에선 드래그 문화의 수용 문제를 두고 주민 토론이 한창이다.
에릭 리스 아칸소 휴먼라이츠 국장은 "드래그 퀸과 어린이의 책 읽기 교류는 (성평등) 문화에 대한 수용과 개방성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되는 자리일 뿐"이라며 "드래그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선전과 폭력으로 휘두르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