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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된다" 우후죽순 요양병원… 폐업 도미노에 환자들 내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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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된다" 우후죽순 요양병원… 폐업 도미노에 환자들 내몰려

입력
2023.03.06 04: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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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된다" 얘기에 10년 새 두 배 늘어나
포화상태에 코로나로 작년 100곳 문 닫아
"내일 폐업하니 오늘 옮겨라" 황당 통보도
"총량제 등 병상수급계획 등 보완책 필요"

지난달 6일 인천 연수구 한 요양병원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환직 기자

지난달 6일 인천 연수구 한 요양병원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환직 기자

인천 부평구의 한 요양병원은 지난해 12월 30일 환자들에게 폐업을 통보했다. 세밑에 예상치 못한 통보를 받은 120명이 넘는 환자 보호자들은 부랴부랴 다른 요양병원을 알아보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80대 부친을 해당 병원에 입원시켰던 A(61)씨는 "아버지가 코로나에 감염돼 격리 중이었는데, 갑자기 '다음날 폐업하니 오늘 중으로 병원을 옮겨달라'고 통보해 황당했다"며 "병원에서 소개해준 곳이 집에서 너무 멀어 수소문 끝에 집 가까운 병원에 겨우 모셨다"고 말했다. 해당 요양병원이 1월 31일 운영을 종료하면서 보호자들은 한 달 만에 주변 요양병원 5곳으로 환자들을 다시 입원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인천에선 지난해 12월 29일에도 연수구의 한 요양병원이 폐업을 통보하면서 환자 109명이 미추홀구 요양병원 2곳으로 흩어졌다.

지난해 100개 이상 폐업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하거나 인력을 감축하는 요양병원이 늘고 있다. "돈이 된다"는 얘기에 최근 10년간 두 배 이상 급증했지만, 2020년을 정점으로 급속히 줄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 우려 등으로 환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출혈 경쟁 여파까지 겹친 탓이다. 정부 차원의 병상수급계획이 마련돼야 환자나 보호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전국 요양병원은 2010년 867개에서 2020년 1,582개로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2021년 1,464개로 100개 이상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1,435개로 감소세가 이어졌고 지난달까지는 1,431개로 집계됐다. 대한요양병원협회 측은 "코로나19가 감소세에 영향을 줬다"며 "2021년 3월 의료법 개정에 따라 정신병원이 요양병원에서 제외된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는 감염에 취약한 노인성·만성 질환자와 다인실 비중이 절대적인 요양병원에 큰 타격을 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3일 기준으로 국내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3만4,014명으로, 이 중 59.6%(2만286명)가 80세 이상 노인이다. 70대(7,718명·22.7%)와 60대(3,864명·11.4%)를 포함하면 전체 사망자의 93.8%가 60대 이상에 집중됐다. 전체 사망자 중 요양병원 사망자 비율은 28.6%(7,613명) 정도였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에게

요양병원 경영 위축은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 상황과 각종 정부 규제, 코로나19 사태가 맞물린 탓으로 분석된다.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대표는 "코로나19로 장기입원을 꺼리는 분위기가 생긴 데다 금융권 신규 대출도 막혀 자금 압박이 커졌다"고 말했다. 경북도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병원 인증평가가 날로 강화되면서 중소 규모 요양병원은 버티기가 어려워졌다"며 "경주의 한 대학 법인 분원도 시설 문제로 작년 3월에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요양병원이 갑자기 폐업하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온다. 하지만 환자들 피해를 막을 규정은 마땅치 않다. 수도권의 한 구청보건소 관계자는 "병원 운영을 갑자기 종료해놓고 법에서 정한 기한(30일) 이후로 폐업 신고하면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과열 경쟁도 경영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환자 유치를 위해 의료실비보험료 중 10% 정도 되는 자부담 비용을 환자들에게 돌려주는 '페이백' 요양병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 대표는 "환자들이 먼저 페이백을 요구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병원들이 폐업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진전 없는 병상총량제...정부 직무유기"

정부가 그동안 병상 관리에 소홀했던 것도 문제를 키운 부분이다. 의료법상 보건복지부는 병상 공급과 배치 등 수급·관리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에 따라 시도지사가 병원 개설을 허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병상수급계획은 의료계 반발에 부딪쳐 2007년 이후 손을 못대고 있다.

2018년 특정 지역에서 병상이 넘쳐나는 문제를 막고자 '병상총량제'를 시행하려고 했지만, 5년째 답보 상태다. 당시 공급·수요를 맞추기 위해 지역별로 병상총량을 정하고 이를 넘길 경우 복지부 장관 허가를 받도록 해 병상 수를 제한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요양병원 병상 수는 2012년 15만2,438개에서 지난해 27만3,616개로 급증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법을 만들고 병상수급 계획이 수립돼야 실행이 가능하다"며 "정부가 직무유기를 하면서 병상 관리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이에 "올해 안에 병상 수급계획을 마련하고자 논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요양병원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심평원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이혜진 교수팀은 "요양병원은 지나치게 다양한 환자를 보고 있으며 요양원과 역할도 겹친다"면서 "만성질환 등 관리가 필요한 환자를 위한 의료요양원 설립과 장기요양으로의 이관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천 부평구 모 요양병원 폐업 공지. 홈페이지 캡처

인천 부평구 모 요양병원 폐업 공지. 홈페이지 캡처


이환직 기자
류호 기자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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