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종영한 SBS '트롤리'
박희순의 반전…성범죄법 개선 외친 가해자
피해자를 대하는 세상의 인식 재고

'트롤리'는 과거를 숨긴 채 조용히 살던 국회의원 아내의 비밀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부부가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와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SBS 제공
'트롤리'에는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온다. 이름 없이 스쳐 지나가던 의사마저 자신의 성희롱 피해를 고백할 만큼 이 드라마에서는 성범죄가 주 소재다. '트롤리'가 마냥 보기 편한 드라마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가해자가 수치스럽다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모습은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14일 SBS '트롤리' 마지막 회가 전파를 탔다. 작품은 과거를 숨긴 채 조용히 살던 국회의원 아내의 비밀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부부가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와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다. '스토브리그' '사의 찬미' '홍천기'에 참여한 김문교 감독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집필한 류보리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혜주(김현주)는 남중도(박희순)의 성범죄를 만천하에 알렸다.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수반해야 했던 '남궁솔법'은 개정은 무효화됐다. 남윤서(최명빈)는 엄마인 김혜주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지금껏 성폭행범의 동생으로 살았는데 아버지마저 성폭행범으로 만들어야 하냐고 오열했다. 하지만 김혜주는 초연하게 자신의 선택을 지켰다.
이 가운데 남중도는 돌연 사라졌다. 속초 바다로 찾아간 김혜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던 남중도를 막았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갖고 살면서 벌을 받으라"면서 따졌다. 남중도의 속죄 후 현여진(서정연)은 다시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진승희(류현경)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남편을 떠나보냈다. 김수빈(정수빈)은 김혜주와 함께 가족이 되면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장르가 반전이네
'트롤리'는 중후반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장르가 된다. 초반 미스터리와 멜로를 외쳤던 것이 무색할 만큼 스릴러로 뒤바뀐다. 남중도가 김혜주를 사랑하는, 완벽에 가까운 남편을 연기하는 모습이 사라지고 추악한 범죄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극의 변주가 시작된다. 후반부에서는 인물의 선택과 숨겨뒀던 진실, 심판 등이 강조되면서 멜로는 사라졌다.
남중도를 표현하자면 근래 작품들 중 가장 사악한 부정(父情)의 아버지다. 자신의 성폭행 범죄 이력은 감추고 오히려 아들에게 누명을 씌워 자신의 사익을 도모했다. 흔한 막장드라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다. 여기에 남중도는 과거 아내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공표하면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이혼을 보류하려고 한다. 그간 '마이네임' '모범가족' 등 장르물에서 전성기를 이뤄낸 박희순이 아니었다면 인물의 이중적 면모가 부각되지 못했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목처럼 트롤리의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의 혼란이 배우들의 호연을 통해 제대로 전달됐다. 배우들의 밀도 있는 연기 덕분에 캐릭터들의 지지부진과 전개상의 답답함은 다소 완화됐다.
다만 아쉬움도 있다. 4년 만에 지상파 드라마로 복귀한 김무열의 쓰임새다. 김무열은 극 내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도맡았으나 반전 아닌 반전이 오히려 이 캐릭터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가장 빌런이라고 믿었던 인물이 애매한 악인이었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의 추측을 김 빠지게 했다.
이 가운데 '트롤리'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노골적으로 던졌다. 작품 배경 어디에서도 존재하는 성범죄 피해자와 그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 연대와 저지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방식이 직접적으로 다뤄졌다. 극중 아버지의 성범죄 폭로를 막는 딸, 가해자의 극단적 선택을 피해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추측 하나로 피해자를 꽃뱀이라고 치부하는 이들, 또 자신의 성범죄가 부끄러워 몸을 던지는 이들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롤리'는 해피엔딩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마땅한 처벌을 받았으며 피해자는 살기를 희망하게 됐다. 끝까지 시청하며 악인의 처벌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에겐 좋은 결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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